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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미리 짜여인 운명적 관계’의 연속 영주출신의 청년조각가 송동완씨 조각전준비 중 영주와 서울을 오가며 조각을 구상하고 창작하고 있는 청년조각가 송동완(38)씨의 다섯 번째 개인전가 서울 종로에 위치한 영아트(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2층)에서 오는 10월 17일(수)부터 23일(화)까지 일주일간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가 지난 2년간 작업한 대, 중, 소형 작품 20여점이 출품된다. 이번에 발표할 작품들은 그 동안의 그가 추구하던 작품세계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작품들은 작가 송동완이 그동안 추구하던 ‘선을 이용한 공간 드로잉’ 기법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작품제작방식은 여러 형태로 바뀌어 표현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예전에는 원형철선을 용접으로 접합하여 거의 평면에 가까운 설치작품이 주였다면 이번 출품작은 전통 조각이 가진 음양감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작품 이미지를 아크릴판 위에 레이저로 암각한 후 LED조명으로 투영한 것이 이전 작품과는 제작 방법이 크게 바뀐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작품에 세 가지 이상 컬러조명이 들어가 수시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느낌을 주었다. 이번 작품 전반에는 점, 선, 면이라고 하는 세 가지의 조형요소들이 조형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쓰고 있는 것처럼, 작가도 조각의 기본요소인 점과 선, 면을 통하여 그의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그의 조형언어로 빗어진 작품들은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선에서 느끼지는 여유와 자유로움을 연상하게 한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적 선을 공간에 그어 놓고 합치거나 교차하는 형상에서 하늘과 땅, 인간과 신의 ‘관계’를 상상하고 느낄 수 있다. 삼라만상의 모든 일들이 마치, 그가 그어 놓은 저 많은 선들의 방향과 선들이 합쳐지는 점, 선들이 교차하는 점들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미리 정해 놓은 미래를, 시간의 돛단배를 타고 늘 해오던 일상처럼 맞이하는 건 아닐까? 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번 작품들을 통하여 어쩌면 ‘인생은 미리 짜여인 운명적 관계의 연속’라는 웅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청년조각가 송동완은 영주출신으로 영주에서 대영고, 안동으로 유학을 가서 안동대학, 다시 대구로 가 효성가톨릭대학원을 졸업한 인재로, 한국에 몇 명되지 않는 조각공원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청년조각가 송동완 연락처: 011-518-4074, 홈페이지: http://www.jogakpark.co.kr
단체·인물
김수종 기자
2007.09.2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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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에 사무실이 있고, 이웃한 성북구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관계로 인근에 공원과 고궁, 박물관, 미술관, 대학, 병원 등이 많아 아들 연우의 교육에 도움도 되고, 학군도 좋은 편이다. 물론 나도 출퇴근이 편하다.그러나 시골에서 자란 나는 늘 단독주택을 꿈꾸며 살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단독주택에 산다는 것은 나처럼 가난한 사람에게는 꿈도 꾸기 힘든 일이라 늘 고민이 많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서울 근교에 나만의 작지만 아름다운 전원주택을 하나 지어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그러던 중 1년 전쯤 우연히 건축가 박삼호(52)선생을 만났다. 그는 우선 말이 통하는 사람이다. 그도 아파트를 싫어해서 그런 것을 설계하는 것은 꿈도 꾸지 않는다. 주로 종교시설, 기념관, 공원, 박물관을 설계하고 짓는 일에 관심이 많다.종교시설, 기념관, 공원, 박물관 등 공공건물을 많이 설계하는 건축가그래서 인지 국립 5.18 민주묘지, 중산성당, 남양주 농업테마공원, 광화문 지하보도 리모델링, 용인 장애인 전문요양시설 등은 설계하여 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독립기념관 신축 설계와 감리를 맡은 적이 있고, 국립영화제작소, 윤봉길 의사 숭모회관, 국립제주박물관, 부안 종합문화회관, 일본 요코하마 여객선 터미널, 일본 동경의 월드비즈니스센터, 중국의 일송정 성역화 기념관, 분당 이매동 성당, 백남준 미술관, 고양꽃박람회, 백제 역사 민속박물관, 와우정사, 남양주 농업테마공원, 경상대 50주년 국제문화센터, 밀양산업대, 금오공대 도서관, 이집트 박물관, 국세청사 등을 설계했다.학구파인 그는 80년대 후반, 신조건축사사무소의 일본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이라는 책을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그의 번역서는 90년대 초반 대학건축교재로 널리 쓰이기도 했다. 내가 나중에 전원주택을 그에게 맡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그가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를 꿈꾸는 사람이며, 모든 건축물을 조각 작품을 다루듯 설계하고, 노래하는 생활건축, 춤추는 도시를 꿈꾸는 인간미 넘치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전원주택도 주변의 자연환경과 건축주의 사람 됨됨이와 조화를 생각하고, 건축가가 생각하는 설계의 철학과 구상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보통 1-2년 정도 건축주와 만나고 실사하고 대화하면서 철학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라는 말에 감동을 받고서부터이다.사회참여에도 적극적인 아웃사이더 건축가 그래서 나도 전원주택을 짓게 되면 2년 정도 설계를 부탁하고, 2년 정도 집을 지어서 완공하는 것을 계획으로 잡았다. 그러면 그와 자주 만나고, 주변의 산과 강과 어울리는 자연건축 재료를 찾고, 평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집의 모습과 조경 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술도 한두 잔 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아직 돈이 없어서 최소 10년은 지나야 공사가 시작될 것 같다. 건축사 박삼호 선생은 지난 1956년 봉화출생으로 영주에서 중앙초등, 영주중을 졸업하고 대구로 유학을 가서 대구공고 건축과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산업대 건축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외국어대학 정책과학대학원 환경정책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여 졸업논문심사 중에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여러 건축사 사무실에서 설계전문가로 일을 했으며, 2003년 현재의 U&E종합건축사사무소(http://www.unedesign.com)를 설립했다. 건축가 이외에도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그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살면서 지역 활동으로 남양주 왕숙천 시민연대대표, 나눔운동본부장을 맡고 있으며, 민족문제연구소 경기 동부지부 지도위원, 친일파 재산 환수위원회 실행위원,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 실행위원, 친환경조경블록을 만드는 (주)자연과 환경의 경기도 지사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건축가로의 삶과 함께 인간생활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의 사회활동, 친환경 운동을 통하여 역사와 민족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경상도 사람이면서도 광주민주화운동의 성지인 국립 5.18 민주묘지 설계에 공모하여 최우수상을 맡아 묘지 건립사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종이모형을 잘 만드는 나를 보고 당시 대구상고에 다니던 형님이 ‘너는 건축을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라면서 권유한 곳이 대구공고 건축과였다. 그래서 건축을 공부한 것이 대학으로 이어졌고, 현재까지 35년간 건축 일을 하게 된 계기이다.”라며 자신의 이력을 소개했다. 그는 “건축 설계가 내 적성에 맞고, 인간을 중심에 둔 생각하는 건축을 통하여 감동을 주는 된장 냄새나는 건축인이 되고 싶다. 용인의 왕산리 산자락에서 벌레소리, 새소리, 나무소리들과 함께 하얀 밤을 지새우며 사람과 자연을 생각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건축을 24시간 고민하면서 살고 있다.” 자신의 철학과 일상을 말했다. 건축은 예술이며 기회가 주어지면 영주학사관 무료설계를 하고파“건축은 단순한 노가다나 막일을 하는 직업인들과는 구분이 되는 예술이다. 따라서 건축가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모든 건축물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하고 싶다. 그래서 늘 조각을 다루듯이 일을 하고 건축을 통하여 춤추는 도시를 만들고 싶으며, 노래하는 건축을 꿈꾸며 살고 있다.”라고 했다.그래서 인지 그는 미술계의 거장 고호를 사랑하고, APT를 싫어하며 자신만의 꿈과 건축 철학을 추구할 수 있는 공원, 교회, 박물관, 기념관 등의 설계에 온 정력을 다 바치고 있다. 또한 “나중에 기회가 주어지면 재경영주시향우회가 준비 중인 영주학사관 건립에 무료 설계자가 되어 고향에 보답하고 싶다.”는 의지도 밝혔다. 나도 먼 훗날 집을 지을 일이 생기면 그와 함께 전국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그가 설계한 집과 건축물들을 둘러보고 감상하면서 나만의 작지만 그림 같은 집을 그와 함께 설계하여 짓고 싶다. U&E종합건축사사무소(http://www.unedesign.com), U&E도시환경연구소 박삼호 대표건축사 연락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왕산리 산 89번지 한국외국어대학교 창업센터 208호, 전화 031-330-4703, 016-571-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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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기자
2007.09.1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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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가 살길은 홍보, 마케팅에 주력하는 것 김수종이 만난 고향사람(54) 중앙대학교 산업경제학과 이정희 교수지난 7월 중순 영주JC특우회가 영주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중동부내륙 물류거점 개발전망과 과제’라는 주제로 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 오랜만에 귀향하여 주제발표를 한 중앙대(http://www.cau.ac.kr)이정희(49)교수는 단연 주목을 받았다. 영광중학교 동기생인 경북전문대 박봉진 학교기업본부장의 초청으로 포럼에 참석한 이 교수는 봉화읍 도촌 출신으로 영주중앙초등과 영광중을 거쳐 서울의 한성고와 중앙대학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롯데제과에 입사하여 2년간 근무를 한 다음 미국으로 건너가 미 중부의 오클라호마주립대학(http://osu.okstate.edu)에서 응용경제학을 전공하여 석,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 중북부의 노스다코타주립대학(http://www.ndsu.nodak.edu)에서 연구교수로 1년 6개월 동안 연구하다가 귀국하여 한국식품연구원 식품경제부의 선임연구원으로 1년간 근무했다. 나중에 모교에 자리가 생겨 95년부터 중앙대학에 부임했다. 현재는 안성캠퍼스에서 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대학원 강의가 있는 날에는 흑석동 캠퍼스에 와서 강의를 하고 있기도 하다. 이 교수를 이번에 만난 가장 큰 이유는 영주발전방안에 대한 고민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 번 영주변화에 대한 포럼에서 “지방도시와 농축산물 브랜드의 성패는 마케팅에서 온다.”며 “일본과 미국은 30년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우리는 지금 유통에 눈을 뜨고 있어 따라가기에도 정신이 없다”고 홍보, 마케팅, 유통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또한 “대형마트나 편의점의 발 빠른 대응으로 소매점이나 재래시장은 침체되고 있고 사람들은 대형 유통업체로 몰리고 있어 향후 재래시장이나 영세 소매점들의 고전은 심화 될 것”이라며 “영세 농민도 애써 지은 농산물을 팔 곳이 신통치 않아 판로가 절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힘을 합쳐 경쟁력을 키워 세계화하는 방안도 모색할 만한 전략”이라고 주장했다.그는 이를 위해 “중앙 정부를 설득시켜 영주지역 농식품 클러스트 특화사업도 바람직하며, 기업 유치를 위해 필요 부지를 30만원 내외로 낮게 분양하는 것도 기업유치 비결의 하나이다. 애써 유치한 기업도 사후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하며 노벨리스코리아 같은 기업도 물류비 절감 차원에서 철도연결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이 교수의 이 같은 주장의 근거와 내용을 좀 더 알기 위해서 그를 만나자 마자 영주가 살길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우선 “영주라고 하는 농업 및 관광도시를 중앙정부와 연계하여 홍보하는 것이 시급하며, 이는 지역 공무원들의 마케팅 능력에도 좌우된다.”라고 했다. “예를 들자면 순창의 고추장, 임실의 치즈, 안동의 간고등어처럼 지역 농축산물을 하나의 클러스트를 만들어 전략적으로 홍보하는 것인데, 영주도 사과, 인삼, 포도, 한우의 클러스트를 만들고 생산과 가공, 판매를 일원화하거나 대기업의 농축산물가공공장을 유치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했다.두 번째는 “외부의 시각으로 영주를 볼 수 있게 지역경제자문위원회에 외부전문가를 위촉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전남 진도의 경우 토속주와 국악이 유명한데, 진도 군수가 진도출신은 아니지만 국악인인 중앙대 총장님을 토속주 보존과 발전위원회 회장으로 위촉을 하고는 중앙대와 MOU를 체결하는 등 지역문제를 중앙대와 상의하고 있다. 영주시도 지역출신의 인사들과 지역대학에만 매몰되지 말고 보다 멀리보고 많은 인사들과 접촉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또한 “현재의 영주브랜드는 ‘선비’라는 말로 대변되는 얼굴도 이름도 없는 영주브랜드로 구성된 느낌이 든다. 바다가 없는 안동이 간고등어를 팔고, 사과 생산량도 많지 않은 안동이 안동사과를 팔고 있다. 하회마을을 홍보하기 위해 경기고속 버스에 광고를 싣고, 영국여왕과 부시 전 대통령을 안동에 초청하기도 했다. 영주도 영주의 인적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여 홍보, 마케팅에 주력해야 한다.” 라고 말했다.아울러 "인삼에 있어 세계제일을 자랑하는 영주에 금산보다 더 큰 인삼축제를 열지 못하고, 가공, 판매 공장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안동이 먼저, 금산이 먼저 선수를 쳤다고 원망만 하지 말고, 영주도 다양한 명분을 만들어 영주와 영주의 농축산물을 알릴 홍보 전략과 마케팅 계획안을 만들어야 한다. 자체의 힘이 부족하다면 외부에도 구원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고 강력히 주장했다. “우선 시급한 과제는 안동을 이길 수 있는 새로운 브랜드와 상품 개발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소백산맑은샘물’ 같은 경우도 영주를 더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소백산맑은영주샘물’이나 ‘소백산영주샘물’로 영주를 부각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며, 청정 소백산의 이미지를 영주와 연결하는 일과 ‘선비’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영주의 농축산물 브랜드도 새로운 CI, BI 작업이 절실하다. 그 동안의 성과를 날리는 일이 있더라도,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결단을 내릴 필요와 시기가 된 것 같다.”라고 했다.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운수업을 하시던 부모님이 강원도로 사업장을 옮겼다가 서울로 올라온 관계로 영주에 갈 일이 거의 없었다는 이 교수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지만, 영주에 대한 애정에는 변함이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에서 간혹 만나는 영광중학교 동창들과 중앙대 동문들의 영주인 모임에서 만나는 영주선후배들을 제외하곤 영주를 잊고 살았지만, 중학교 동기생인 경북전문대 박봉진 학교기업본부장의 도움으로 오랜 만에 고향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기회가 되어 기뻤다.”라고 포럼 참가의 변을 남겼다.마지막으로 “고향 문제라면 언제든 자문을 하고 싶다. 또한 누구든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정희 교수 연락처: 중앙대(http://www.cau.ac.kr)산업과학대학 산업경제학과,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내리 72-1번지, 연구실 전화 031-670-3048, 휴대전화 011-9089-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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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기자
2007.09.0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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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하여 전통문화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하는 작가 홍익대 미대 신현대 교수 8번째 개인전 준비 중봉화출신의 동양화가 신현대(47)화백은 홍익대학을 졸업하고 10여 년간은 역사와 관련된 우리고유의 문화를 소재로 하여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작품으로 표현하려 하였으며, 한국화의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기도 했다. 뒤이어 7년간은 ‘자아 찾기’에서 시작된 채색풍경 위주의 작품으로 한국의 산천 풍경을 그리는 ‘자연에 대한 애착’을 가지면서, 전통 채색 기법연구에 몰두하고 있다.신현대 교수는 봉화군 물야면 수식리 출신으로 영주동부초등, 대영중, 영광고를 졸업하였으며, 홍익대학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대학 미술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고 현재는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지난 20여 년간을 작가로서 작품 활동과 강의에 전념하고 있는 중견작가이다. 현재 모교인 홍익대학을 비롯하여 강남대, 고려대, 울산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제7회 국전에 입선하였으며,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중앙미술대전에도 입선하여 한국화단의 주목을 받았다.이후 한국수채화협회가 주관하는 수채화 공모전에 입선과 특선을 하였으며, 경인미술대전에서도 특선을 하여 동양화가로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또한 2004년에는 제3회 춘추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1987년부터 현재까지 140여 차례의 단체전과 기획전 및 해외 전시에 출품하였고, 1997년부터 일곱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이번이 8번째다. 그는 오는 9월 4일(화)부터 9월 10일(월)까지 청담동의 가산화랑(서울 강남구 청담2동 9-2번지 가산빌딩, 전화 02-516-8888, http://www.gasan.co.kr)에서 8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최근 그의 작품을 보면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나무나 스텐레스, 아크릴 등의 소재들을 작품에 도입하여 기존의 자기 스타일과 한국화의 고정된 틀을 깨고 한국화의 영역을 확대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그가 그동안 주변과 자기 자신으로부터 억 메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굴레로부터 해방’을 위한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는 자신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제2의 창작을 위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전통의 회화와 전각을 토대로 터득한 화면구성은 독특하고 단순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그만의 화면경영을 엿볼 수 있다. 솟대를 만들어 작품 속에 반영하여 회화에 3차원인 조소의 개념을 접목하고 사각의 틀을 벗어나 공간 자체를 여백으로 삼으려는 새로운 시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전통예술에 바탕을 두고 이를 현대화하여 오늘날의 국제 시각에 알맞게 미의식 전환을 꽤하려고 한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철저하게 솟대나 여백을 통하여 우리의 전통성을 고집하고, 나약한 인간과 절대자의 관계를 이어주는 솟대를 통하여 과거에 선조들의 생각을 현대인의 삶속으로 연결하고, 우리들의 내면에 내재된 심성도 함께 표현하려는 그의 의도를 읽을 수가 있다. (동양화가 홍익대 신현대 교수 연락처 016-301-7578)
단체·인물
김수종 기자
2007.08.1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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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거수 실장 얼마 전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김수종 선배님” “예, 김수종입니다. 누구시죠” “예, 저는 영주 출신이고 영광고 후배인 김거수라고 합니다.” “후배라! 무슨 일로” “강남에서 디자인회사를 하고 있는데, 기회가 되시면 한번 뵙고 싶어서.&r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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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기자
2007.08.0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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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씨니어연합 부설 노인복지센터 임정이 원장 나도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책을 잡고 공부하는 것 보다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유혹은 가끔씩 나를 짓밟고 지나간다. 그러기에 인생은 번뇌와의 싸움인가 보다. 이번에 만난 사단법인 한국씨니어연합(http://www.seniorleague.or.kr) 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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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기자
2007.07.1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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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출신으로 1981년 영주에서 경북전문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것이 인연이 되어 ‘반쯤은 영주인’이라고 자처하는 김두관(49, http://www.dreamkorea.net)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4일 오전 10시 여의도 대하빌딩 자신의 사무실에서 대선후보 출마선언식을 열었다. ▲ 경북전문대 졸업한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대선
단체·인물
김수종 기자
2007.07.04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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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출신의 시마텍 반원익 회장 태국에서 세계최대의 주차 빌딩 설비공사 수주 한국주차설비공업협동조합 이사장를 역임하기도 했던 영주출신의 기업인 (주)시마텍의 반원익(55) 회장이 중소기업으로서는 수주가 어렵다는 태국의 국립 람캄행대학에서 발주한 세계 최대 규모의 기계식 주차 빌딩 설비공사를 1400만 달러에 따냈다.국내 최고의 자동주차설비 전문업체인 시마텍은 이번 국제 경쟁 입찰에서 세계 1,2위권의 독일과 이탈리아를 비롯해 10여개 대형 자동주차시설 제조업체들과 치열한 경합을 벌여 수주에 성공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이번에 수주한 람칸행대학의 주차빌딩은 높이 30m에 연면적 1만평 크기로, 내부에는 한번에 140대씩 주차할 수 있는 6개의 원통형 주차타워이다. 이는 로봇방식 무인 주차 빌딩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공사는 오는 8월에 착수를 시작하여 내년 연말 완공될 예정이다. 시마텍은 무인자동주차설비 기술에 대해 이미 지난 3월 국내특허를 취득한바 있다.반원익 대표는 "자동주차 속도가 가장 빠르면서도 고장률이 낮고, 가격도 30%가량 저렴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는 그동안 시마텍이 세계 128개 현장에서 보여준 안정적인 사업수행능력과 축적된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결과이다.”라고 수주원인을 설명했다.또한 "360도 회전이 가능한 로봇승강기가 원통 안을 오르내리며 빈 공간을 정확하게 찾아내도록 돼 있다. 모든 과정이 평균 90초 내에 이뤄진다"고 상품의 우수성을 자랑했다.한편 시마텍은 이번 공사 수주로 올해 매출목표 100억 원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이르면 5년 내에 매출 1000억 원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보여 진다. 시마텍 반원익 회장은 안정면 출신으로 풍기초등, 영광중고, 고려대를 졸업하였으며, 오랫동안 삼익건설에서 일했다. 나이 마흔 셋에 계열사 ‘심익리빙’ 대표로 취임해 분사 직후 자신의 모든 자산을 투자하면서까지 회사를 일으켰고, 다음 해에 이탈리아의 유명승강기 회사인 ‘시마파크’를 인수해 주차장 첨단 자동화의 세계적인 메이커로 성장시켰다. 또한 마흔 다섯에 한국주차설비공업협동조합 이사장에 취임해 3대, 4대, 5대 회장을 연임하고 있으며, 마흔 일곱에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사단법인 ITS Korea 이사, 중소기업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 중소기업진흥재단 이사, 공정거래 위원회 하도급 자문위원, 중소기업 금융지원점검단 위원, 벤처기업 특별위원회 위원, 풍우회 부회장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교회 장로로도 시무하고 있기도 하다. (시마텍 반원익 회장 연락처 011-496-8980)
단체·인물
김수종 기자
2007.06.2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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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의 첫 번째 몽골 방문기, 마지막 편 "한국에 몽골문화예술마을이 만들어졌으면..." 5월 26일 자정이 다 되어서 칭기스칸국제공항에 도착했다. 27일 01시 30분에 인천국제공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준비할 일이 많았다. 자리 배정을 마친 이후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임영자 한몽교류진흥협회(http://www.komex.or.kr)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나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몽골에 대해 많은 공부가 되었다”는 말을 했다. 임 이사장은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왜 한몽교류진흥협회에서 일하게 되었는지와 협회의 활동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간호대학을 졸업한 문학소녀였던 나는 여고 시절에는 도민체전에서 우승까지 한 정구선수로 글쓰기와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회장으로 활동을 하면서 팔방미인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거의 고학이나 다름없이 어렵게 학교를 마쳤다”라고 했다.아울러 “대학을 졸업하여 간호사가 된 이후,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해외생활과 국제교류, 교육 사업, 영어공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간호사 일과 건설업에 종사하던 남편의 일을 돕기도 하면서 상당한 돈을 벌었다”라고 말했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 다시 시를 쓰게 되어 등단을 하게 되었고, 사우디아라비아에 갈 때부터 친분이 있어온 한국국제협력단의 직원들과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국제협력단(http://www.koica.go.kr)퇴직자들의 제의로 몽골에 대한 교류협력, 문화증진, 교육진흥, NGO활동 등을 지원하는 한몽교류진흥협회의 이사장직을 수락하면서 민간외교관으로 봉사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했다.그는 “건국 800주년을 맞고 있는 몽골은 현재 국민총생산이 1000불 정도로 1970년대의 한국의 경제 환경과 비슷한 수준의 나라이다. 하지만 광활한 영토와 세계 5대 자원 보유국이며, 한민족과 정서적으로나, 가장 가까운 유전자 구조를 가지고 있는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은 아시아 국가 중에 한 곳이다”라고 몽골을 소개했다. 또한 “21세기 한국이 함께할 수 있는 나라 중에 분명 몽골이 으뜸이 될 것 같다. 몽골과 한국은 필요한 것이 서로 상반되는 특이한 나라이다. 한국은 인구가 많고, 땅은 좁고 지하자원도 거의 없다. 하지만 기술력과 자금은 있다. 몽골의 반대로 인구는 적고, 땅을 넓고, 지하자원은 많다. 하지만 기술력이나 자금이 부족하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으며, 같은 몽골인종이라는 특징으로 유사한 점도 많다”라고 말했다. 임영자 이사장은 “몽골과의 교류는 단순히 경제, 문화적인 상호협력의 의미를 떠나서, 장기적으로는 21세기 사회 문화 경제 공동체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개인적인 소망은 한국에 몽골을 제대로 알리고 홍보할 수 있는 ‘몽골문화예술마을’을 연건평 5-6만평 규모로 만드는 것이다. 땅값이 비싼 관계로 서울, 경기지역에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지방 시군의 후원을 받아 몽골의 음악, 미술, 공예, 기예, 승마, 연극 등을 전반적으로 전시하고 공연하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 곳에 상시적으로 몽골예술인 50-100명 정도를 초청하여 몽골인들의 생활양식과 문화예술분야의 모든 것들을 한국에서 보여줌으로서 한국에 몽골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하고 싶다”는 미래의 꿈을 밝히기도 했다.그러면서 “기회가 되면 자주 몽골에도 가보고 한몽교류진흥협회를 적극 후원해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3박4일의 여행 기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몽골이라고 하는 생소한 나라에도 우리와 정말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과 그들이 우리의 손길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막이 많고, 나무가 많지 않은 곳이지만, 인간이 노력만 하면 충분히 울창한 숲을 만들 수 있고, 계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고비사막정도는 충분히 강물이 흐르고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만들 수 있는 것 같다는 판단도 들었다. 아울러 수많은 한국인들이 몽골의 가능성을 보고 있으며, 또한 그 가능성을 바탕으로 사회, 문화, 경제적인 투자와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러시아, 중국, 일본이 주로 몽골에 대한 투자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도 그 노력을 증대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곳곳에 한국인이 건축한 교회와 대학, 호텔, 골프장, 식당 등이 보였고, 최근에는 양돈사업과 양계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건설과 건축 분야에도 투자는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몽골의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는 광업 분야에 대한 지원과 정유사 설립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 같았다. 사람은 역시 책으로만 모든 정보를 파악하기는 힘이 든 것 같다. 그동안 몇 권의 책으로 몽골을 보아왔지만, 이번 여행은 몽골을 다시 공부하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책에서 보지 못했던 몽골의 울창한 삼림을 보고 온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마지막으로 임영자 이사장의 꿈처럼 한국에 5-6만평 규모의 ‘몽골문화예술마을’이 한몽교류진흥협회의 주도하에 지방 시군의 도움으로 건립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비행기는 한밤중에 인천국제공항으로 출발하여 새벽 5시 30분 도착했다. 출국장을 나와 6시에 모두 해산을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차, 임영자 이사장과 너무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니 칭기스칸국제공항의 면세점에 들르지 못해 아들 연우에게 줄 선물을 사지 못했다.
기획·특집
김수종 기자
2007.06.2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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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의 첫 번째 몽골 방문기, 8 한국 대단해! 몽골에서도 우리 브랜드의 치킨을... 역사는 끊임없이 순환하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한 점도 많다. 고려 말 우리는 원제국의 지배를 100년 정도 받았다. 물론 사회, 문화적인 교류도 많아서 원나라 황실에서는 고려양, 고려풍이라고 하여 고려의 문화가 유행하기도 했다. 고려 역시도 몽골 문화를 받아들였고, 정치, 경제, 군사적인 지배를 받았다.그러나 700∼80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정부는 물론 민간에서도 몽골에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다. 한국인이 몽골 현지에 대학을 설립하기도 했고, 한몽교류진흥협회(이사장 임영자 http://www.komex.or.kr)와 같은 민간단체가 나무심기, IT지원, 자동차 정비기술 전수, 보석가공학교 설립, 양돈, 양계사업 지도, 건설, 농업, 문화 사업 등을 통한 NGO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 앞으로 10∼20년 후에는 몽골이 다시 아시아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몽골이 한국을 지원하거나 상호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전문가들은 지하자원 부국인 몽골을 두고 '전략적으로 가치가 높은 광산이 10여 개 정도 되며, 이들 광산만 제대로 개발해도 몽골 경제가 10-20년 안에 한국을 추월할 수도 있다'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런 가능성 때문인지 몽골을 두고 '황금을 깔고 사는 가난한 유목국가'라고 한다. 하지만 땅 속의 황금을 언제든 채굴만 하면 돈으로 바뀌는 매력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몽골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몽골의 가능성을 나는 짧은 여행기간 동안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같은 민족인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처럼 몽골에 대한 지원도 같은 '몽골인종'이라는 동질성만으로도 충분히 접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테럴지 국립공원에서 돌아온 이후에 칭기스칸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이후에 일행들 모두는 만찬을 위해 얼마 전에 한몽교류진흥협회의 도움으로 몽골에 진출한 한국의 BBQ패밀리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제너시스 BBQ의 몽골 1호점은 지난 5월 23일 울란바토르시 요지에 문을 열었다. BBQ몽골매장의 1층은 치킨을 파는 패스트푸드 형태로, 2층은 가정의 거실 형태의 식당으로, 3층은 방과 연회실을 갖춘 고급 레스토랑 스타일로 구성되어 있었다. 메뉴는 기존 BBQ치킨요리와 함께 삼계탕, 닭갈비, 햄버거 등도 취급한다. 향후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요리를 추가로 개발할 방침이라고 한다. 또 몽골민에게 신생 BBQ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오토바이 대신 말을 타고 음식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도입하여 눈길을 끌고 있기도 하다. 현재 몽골매장에 사용하는 식재료는 중국 동북 3성에서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몽골BBQ 현지법인은 장기적으로 몽골을 글로벌 소싱의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양계장 및 가공공장을 현지에 마련하는 방안도 추진 중에 있다. 현재 몽골은 세계적인 브랜드인 맥도날드, KFC 등도 발을 붙이지 못한 외식업 불모지로, BBQ가 세계 프랜차이즈 최초로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향후 몽골 내 프랜차이즈 산업의 표준을 제시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5월 19일 저녁 BBQ몽골점 설립과 관련하여 BBQ주관으로 베이비복스, 안재모, 비보이팀 갬블러 등 한국 연예인과 몽골의 유명 연예인들이 참석한 '한 몽골 문화축제 한마당 Big Concert(Korea-Mongolia's Friendship Big Concert 2007)'가 3500석 규모를 자랑하는 울란바토르시 UB-Palace(대콘서트홀)에서 열리기도 했다. 특히 몽골 역대 최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던 드라마 의 주연배우 안재모씨의 참가로 공연은 성황을 이루었다. 아울러 당일 행사는 몽골 최대의 공중파 TV방송인 몽골 TV5, 몽골 TV9는 물론 몽골 UBS(울란바토르 시 방송, 지역방송국), 몽골 C1(케이블, 몽고 전역 방송)에서도 방영되어 주목을 받았다.3층 연회장에 마련된 저녁식사에는 우리 일행과 함께 몽골 임업청 직원들과 칭기스칸국제공항의 부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닭고기 요리는 4-5종류가 나왔고, 볶음밥에 김치 등이 나와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또 채소를 이용한 샐러드와 과일, 음료 등도 충분히 준비되어 오랜만에 배가 부르도록 닭요리를 즐겼다.저녁식사를 마친 일행은 어제의 발마사지를 잊을 수 없어 단체로 마사지 숍으로 이동했다. 15명이나 되는 인원이 입장을 하니 마사지사가 부족하여 두 팀으로 나누어 마사지를 받아야 했다. 인원이 많아서인지, 마사지사가 부족해서인지 어제보다는 시간도 짧고 성의없는 서비스를 받기는 했지만, 저녁식사 이후에 밀려오는 노곤함이 전부 풀리는 듯 기분은 좋았다. 일행 모두는 1시간 30분 정도 만에 마시지를 마치고서 칭기스칸호텔로 돌아왔다.오늘 밤 늦게 공항으로 이동하여 내일 새벽 1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를 포함한 일행 다섯 명은 다시 짐을 챙겨서 버스를 타고 칭기스칸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보슬비는 칭기스칸국제공항까지 가는 길을 환송하는 듯 점점 세차게 내기기 시작했다.
기획·특집
김수종 기자
2007.06.2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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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6년 이 시대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그리며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영주 출신의 소설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51) 선생이 지난 17일 4년 만에 발표한 10번째 신작 장편소설 <가족>(도서출판 자음과 모음)은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족의 사랑과 운명을 그리고 있다.가족의 주인공 광수는 자신의 아들로부터 “삼류, 양
단체·인물
김수종 기자
2007.06.1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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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의 첫 번째 몽골 방문기, 7 몽골의 울울창창한 국립공원 한국으로 돌아와 지난주 15일(금) 서울시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한몽교류진흥협회(http://www.komex.or.kr)의 임영자 이사장을 만나러 갔다. “몽골 방문기를 잘 보고 있다”는 격려와 함께, 얼마 전 몽골 국방대학 총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컴퓨터 200대를 기증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아는 전자회사가 있으면 소개를 해 달라”고 했다.‘거리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시킨 이후에 몽골군에 입대를 시키고 싶다’는 국방대학 총장의 말에 임 이사장이 감동하여 여러 전자회사에 섭외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에는 몽골 관련 단체가 20여개 정도 된다. 15개 정도는 이름만 걸어놓은 상태이고, 나머지 5개 정도의 단체가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나마 5개의 단체 중에 한몽교류진흥협회를 제외하고는 특화된 사업만을 하는 부분단체라, 몽골에 대한 전반적인 지원을 하는 곳은 우리협회가 유일하기 때문인지 너무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몽골을 둘러보고 와서 임영자 이사장을 포함한 한몽교류진흥협회가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기회가 되면 어떤 형식으로든 일조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우선 급한 컴퓨터 200대를 구해보자! 몽골의 건설부 방문 이후,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은 전부 버스를 타고 울란바토로에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테럴지 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마치 말을 타고 달리는 기분’이었다. 포장도로를 달리기는 했지만, 노면상태가 좋지 않아 허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시내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판자촌과 몽골식 게르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무도 없는 거대한 초록 평원에 간간히 방목되는 염소와 양들이 보이기도 하고, 풍장이 많은 몽골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공동묘지도 보였다. 사람 사는 곳은 모두 똑같은가 보다. 몽골의 시골 풍경은 한국의 60~70년대를 연상하게 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경상도 시골에서 본 농가, 상점, 관청들을 보는 것 같았다. 과거로의 여행이 좋아서 인지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몽골여행을 한 번 하고 나면 또 다시 찾게 된다고 한다. 그래도 발전 속도는 매우 빠른 나라인가 보다. 일행 중 여러 번 몽골에 온 이동식야외화장실을 생산하는 에이치앤지(http://www.toilet21c.co.kr)이영호 대표는 “중국에 가끔 가면 올림픽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6개월에 한 번씩 변화 발전하는 모습이 느껴지는데, 몽골 역시도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3년 전에 허허벌판에 지어졌던 올림픽센터가 이제는 부도심에 위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무튼 거친 도로를 한 시간쯤 달려 테럴지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매표소에서 몽골인은 300투그릭(Tg, 원화로 270원)을 받았고, 외국인에게는 3000투그릭(Tg, 원화로 2700원)를 받고 있었다. 외국인에게는 약간 비싸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매표소를 통과하고도 30분은 더 달려간 것 같다. 국립공원 안에는 나무도 많고, 물이 흐르는 강도 보이고, 산도 좋았다. 푸른 초원에 나무 하나 없을 것 같은 종전의 몽골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몽골의 북서부는 나무가 아주 많다고 하니, 이곳 보다 더 울창할 것 같았다. 산불 예방을 위해 간벌을 하여 나무 수출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나무가 없고, 풀밭이 주로 인 유목국가로 장기적으로는 식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표소를 통과하여 가장 먼저 간 곳은 한국인이 만들었다는 칭기스칸 골프장이다. 풀밭에 아무런 시설도 하지 않고 깃발과 구멍만 만들어 골프장을 만들어둔 것 같았다. 중간 중간에 인조잔디를 깔아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골프인구가 별로 없어서 인지 그린피가 7만 투그릭(Tg)이라고 했다. 입이 벌어졌다. 몽골 노동자의 한 달 월급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한국도 골프장이 처음 만들어질 무렵에는 상당히 비쌌다고 들었다.인근에 일본인이 만들었다는 골프장이 하나 더 있다고 해서 차를 타고 가 보았지만, 시설이나 규모는 비슷한 것 같았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이기는 했지만, 당일은 바람이 많이 불어 서 있기조차 힘이 들어 구경만 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만족을 했다.주마간산으로 공원의 산과 강, 나무들을 둘러보고는 차를 돌려 테럴지 국립공원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거북바위를 보러 갔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살아있는 거북이 육지로 올라온 것처럼 웅장하고 당당했다.국립공원 내에 간혹 보이는 집과 숙박시설들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나무 하나 없는 몽골의 산과 들판을 보다가, 너무 나무가 울창한 공원 내부를 둘러보고는 노력만 하면 몽골도 삼림왕국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바람이 많이 불러 몽골에 오는 관광객이면 누구나 즐긴다는 말을 타는 것도 불가능하여, 차로 드라이브를 충분히 즐기고는 칭기스칸 호텔로 돌아왔다.
기획·특집
김수종 기자
2007.06.1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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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의 첫 번째 몽골 방문기, 6 몽골, 주택건설 사업에 한국과 절대적 협력 필요 여행 삼 일째인 토요일(5월 26일) 아침이다. 칭기즈칸호텔(http://www.chinggis-hotel.com)은 창은 넓고 전망이 좋았다.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산책하기에 좋은 맑은 날씨와 상큼한 공기에 반해 밖으로 나왔다. 호텔을 중심으로 크기 원을 그리며 한 바퀴 돌았다. 이국의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과 싱그러운 아침공기를 마시면서, 한국에서 묻어온 묵은 때를 벗기는 기분이 들었다. 부드러운 몽골의 공기에 영혼을 맡기고 호텔로 돌아왔다.아침부터 전직 몽골 국무총리를 지냈고, 현재 한몽친선의원연맹 회장 겸 몽골의 건설 사업을 총지휘하고 있는 나라자자랄트(NARANTSATSRALT) 건설부장관과 북몽친선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라챠르 다담담딘 국회의원이 참석하는 조찬모임이 열렸다. 호텔 1층의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식당에서 그들을 만났다. 나자라자발트 장관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길에 한국의 건축 산업을 제대로 배우고자 '2007 경향하우징페어' 행사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온 일행을 만나서인지 건설부장관은 "지난번 한국의 경향하우징페어는 몽골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전시회였다"면서 "건설 분야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고, 양국 건설자재 업체들이 연결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국방문 성과를 먼저 설명했다. 일행 중에 건설업을 하는 e∼스타코(http://www.starco.co.kr)의 이석주 사장이 "몽골 정부가 추진 중인 4만 세대 주택건설 사업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자, 그는 "현재 한국의 업체들이 중요한 제안을 많이 해 준 상태이며, 이제까지 몽골의 건설 분야는 러시아와 중국과만 협력을 해 왔는데 앞으로는 한국과도 적극 협력하고 싶다"라고 밝혔다.이어 그는 "앞으로 몽골에 진출하고자 하는 많은 한국 건설기업들은 한몽교류진흥협회(이사장 임영자 http://www.komex.or.kr)를 통한 사회 문화 경제적 지원도 부탁한다"고 말했다.아울러 북몽친선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라챠르 다담담딘 의원은 "제가 지난 10여 년간 북을 오가면서 느낌 점은, 과거에는 비슷한 경제 수준이었던 북과 몽골이 현재는 북의 노동자가 달러를 벌기 위해 몽골에 2000여명 이상 와있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라며 "같은 민족인 북을 도와주는 것이 한국의 임무이며, 몽골도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민족통일과 경제연대를 바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호텔 조찬은 장관급 인사가 참여를 했음에도 셀프서비스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눈길을 끌기도 했으며, 몽골의 건설사업과 남북한 및 몽골의 경제우호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시간 넘게 이루어졌다. 조찬을 마치고는 일행들 모두가 나무와 숲, 강이 좋은 테럴지 국립공원으로 곧바로 가려고 했지만, 건설부장관이 "실무책임자인 건설부차관과 울란바토로시 건설국 관리들을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면서 건설부청사에서 이후 약속을 잡아주었다. 이에 식사를 마친 일행 모두는 건설부청사로 이동하여 칸쿠우 건설부차관 이하 실무자들을 만났다. 토요일임에도 장관의 부탁에 청사로 출근한 차관 이하 직원들은 평상복 차림의 자연스러운 복장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칸쿠우 차관은 "장관님의 연락을 받고 급히 나왔다. 몽골 정부는 4만호 주택건설 사업과 관련하여 한국에 거는 기대가 크다"라며 "현재 몽골 정부는 건설기업에는 다양한 세제혜택을 실시하고 있으며, 개인에게는 대출완화 등을 통하여 집을 쉽게 살 수 있도록 돕고 있다"라고 말했다.또 칸쿠우 차관은 "조만간 건설채권을 발행하여 민간 및 외국에 판매할 예정이며, 주택건설과 관련하여 상하수도, 전기, 난방과 관련된 기업에도 지원을 부탁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몽골의 건설부관리 중에는 한국에서 유학한 적이 있는 직원이 있어 통역은 물론 어려운 건설관련 용어를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해 주어, 참석한 모두가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었고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었다.정확하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은 한국의 건설관련 참석자들은 이후에 구체적인 사업담화를 나누기로 하고 청사를 나왔다. 일행은 점심을 위해 시내에 있는 한식당으로 이동을 했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니 울란바토르에는 은행이 엄청 많다는 생각이 들어 안내원에게 물어보았더니, "시중은행이 15개를 넘는다"고 했다. 외자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인지 은행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점심은 한국식으로 비빔밥을 먹었다. 강릉 출신이라는 주인 아주머님은 "몽골의 자연과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10년을 넘게 살았다"며 "모두들 너무 맛있게 먹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서 나오는데 이국근 한몽교류진흥협회 상임이사는 "나도 강원도 춘천사람이라 입맛이 비슷해 가끔 울란바토로에 오면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데, 늘 고향 오빠를 만난 것처럼 대해주는 정이 넘치는 아주머니다"라고 말했다. 주인 아주머님은 우리 버스가 출발하여 보이지 않을 때까지 홀로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고국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마음만은 우리들과 동승하고 싶었나 보다.
기획·특집
김수종 기자
2007.06.1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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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석가탄신일 저녁 인천국제공항에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칭기스칸국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세 시간 조금 넘게 비행기를 타고 가는 길은 그리 지루하지 않고 좋았다. 단, 저녁비행이라 밤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바로 호텔로 직행하는 것이 단조롭기는 했다. 칭기스칸국제공항에 도착하니 한몽교류진흥협회(이사장 임영자 http://www.komex.or.kr)의 NGO활동이 몽골로서는 대단히 중요해서인지 공항의 부사장, 임업청 관리, 몽골주재 한국대사, 한국국제협력단(http://www.koica.go.kr)의 몽골지부장, 대한항공 몽골지사장 등이 마중을 나왔다. 공항의 귀빈실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가 짐을 받은 후, 숙소인 칸팔래스호텔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늦은 시간이라 방 배정을 하고서는 바로 해산했다. 나는 금방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호텔을 한 바퀴 돌아 어렵게 영자신문을 한 부 구해왔다. 샤워를 하고는 신문을 펼쳤다. 몽고에서는 일간신문이 4개 정도 발행되고 있고, 영자신문은 주간으로 2개가 발행된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지역이 넓고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관계로 속보성은 없다고 한다. 영어를 잘하지는 못해서, 주로 제목과 사진을 보고서 판단을 해야 했다. 신문의 톱은 28일부터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며, 방문기간 중에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이다. 두 번째 기사는 러시아 상원의장이 몽골을 방문하고 대통령을 만났다는 소식이었고, 옆에는 한국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몽골인 1만 5천 명이 6월 3일 실시되는 한국어능력시험에 원서를 제출했는데 접수 행렬이 너무 많아 경찰관 600명이 안전요원으로 배치되었다는 기사였다.아울러 일본인들의 진출이 많아서인지 5년 전에 울란바토르에 진출한 일본센터에 대한 소개의 글과 몽골의 도로정비 사업에 일본이 막대한 차관을 지원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외에 작은 뉴스로 환경교육을 강화한다는 기사와 대기오염감소방안을 강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소식도 보였다.아울러 지하 1,000m 이하의 채굴작업이 성공했다는 광산업관련 기사, 몽골관광교류촉진을 위한 심포지엄이 열렸다는 기사, 중국에서 열린 세계 물리학올림피아에 참가한 몽골팀이 동메달을 획득했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또, 몽골 북부에 살고 있는 사향노루가 금값의 4배로 값이 올랐다는 소식과 터키의 도움으로 몽골에 혈액센터를 설립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2008년 스페인, 2010년 상해 엑스포에 몽골이 참가한다는 소식도 보였다.그리고 특이한 것은 라마불교의 영향 때문인지 5월 31일이 몽골의 ‘부처님 오신 날’이라는 뉴스와 6월 1일이 ‘어린이 날’이라는 기사가 시선을 자극했다. 또 교원처우개선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으며 고비사막에 25-20마리 정도의 고비곰이 살고 있다는 뉴스도 재미있었다. 이외에도 새로운 정보기술관련 컴퓨터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학생들에게 보급하기 시작했다는 소식과 사회주의 국가로 국토 전체가 국유지로 되어 있는 몽골 토지제도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기사도 있었다. 유목인구의 감소로 ‘자가 유제품’ 생산이 줄고 있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전반적으로 신문을 보면서 느낀 점은 일본의 원조차관이 많아서인지, 일본인들의 활동이 많아 보였고, 공해와는 상관도 없을 것 같은 나라 유목국가인 몽골에서도 환경교육이 강화되고 있으며, 대기오염감소방안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놀라웠다.또‘코리안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한국행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무려 1만 5천명이 한국어능력시험에 도전하였으며, 원서접수 전날 저녁부터 밤을 세워가며 줄을 만들어 대기하면서 신청을 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기도 했다. 다음 날 만났던 몽골 국회의원이 “한국으로 일하러 가고 싶어 하는 노동자들이 넘쳐나지만, 몽골은 노동력 부족으로 올해 하반기에 북한에서 5,000명 상당의 노동자들을 입국시킬 예정이며, 사전 조율이 끝나면 북의 김영남 위원장과 몽골 대통령이 하반기 상호방문을 할 예정이다”라고 말하니 북은 몽골보다도 사정이 더 어렵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마지막으로 ‘어린이 날’이 한국과 다른 것은 이해하겠지만‘부처님 오신 날’이 한국과 다른 것은 라마불교를 잘 몰라서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었다. 아무튼 나는 몽골에서 첫 날밤을 신문과 함께 보내다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이래서 첫 날밤은 누구에게나 피곤한 밤인가 보다.
기획·특집
김수종 기자
2007.06.1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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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의 첫 번째 몽골 방문기, 4 몽고가 언제 몽골로 바뀌었지 몽골은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런 세계의 중심인 몽골을 왜 우리는 몽고(蒙古)라고 불러왔을까? 사실 작년 임영자 한몽교류진흥협회(http://www.komex.or.kr) 이사장을 처음 만나기 전까지는 '몽고가 언제 국호를 몽골로 바꾸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몽고라는 말은 중국인들이 주변 국가 중에 한 번도 지배해 보지 못한 강력한 몽골을 무시하기 위해 '무지몽매하다'라는 비꼼에서 출발한 단어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서양인들도 칭기즈칸의 유럽침략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의미에서 다운증후군을 몽골리즘(Mongolism)이라고 하여, 마치 몽골사회가 근친혼이 성행하여 다운증후군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하하고 있다. 아무튼 임영자 한몽교류진흥협회 이사장의 도움으로 이번에 3박 4일 일정으로 몽골여행을 다녀왔다. 갑자기 몽골에 다녀온 이유는 한반도의 7.4배나 된다는 넓은 국토를 보기 위함도 있었지만, 세계최고의 자원 부국 중 하나인 몽골을 보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몽골은 고원국가로서 사막이 전 국토의 40%이며, 북서부의 알타이산맥으로부터 동남부의 평원지대로 펼쳐져 있다. 평균고도 1500m에 건성냉대 기후로 겨울이 길고 추우며, 경제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여름은 짧아 3개월 정도로, 학생은 농번기 방학을 하고 기업은 이때 장기휴가를 준다. 또 1년에 구름이 없는 날이 257일이나 되는 등 맑고 높은 하늘을 항상 볼 수 있다. 날씨는 11월부터 3월까지는 영하를 나타내고 특히 1월∼2월은 영하 20℃가 보통이며, 겨울철 야간에는 영하40℃ 이하까지 내려가는 반면, 여름에는 33∼38℃로 무덥다.인구는 300만 명 정도이고, 언어는 할흐몽골(Khalkh Mongolia)어이다. 종교는 라마불교가 90% 이상이며, 이슬람교와 개신교, 가톨릭 등이 전파되고 있다. 정치는 민주공화제도로 현재 대통령은 남바린 엥흐바야르(Nambaryn Enkhbayar)로 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50세의 영국유학을 한 영어교사 출신의 정치인으로 몽골의 경제발전을 주도하고 있다.대졸자들의 월급은 10만 투그릭(Tg, 한화 대 투그릭의 환율은 1:1.1 정도이다) 정도이며, 1인당 GDP는 1000불을 바라보고 있다. 주요 수출품은 석탄, 동, 금, 형석, 몰리브덴 등의 광물자원과 캐시미어 등 피혁 제품이 많다. 수입품은 기계류, 생필품 등으로 주요 무역상대국은 중국, 러시아, 미국, 한국, 일본 등이다.인구가 적어 산아제한은 없다. 군대는 징병제로 27살이 넘거나, 장애인이면 면제를 받을 수 있고, 공식적으로 80만 투그릭을 주면 면제를 받기도 한다. 군인은 8000명 내외로 바다가 없는 나라임에도 북서부에 경상북도 크기만 한 흡스골(몽골인들은 흡스골을 어머니의 바다라고 부른다)이라고 하는 호수가 있어 해군을 운용하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정부청사가 있는 수흐바타르 광장에는 아직도 레닌(레닌의 할머니가 몽골계인 타타르 인이라는 이유도 있다)의 동상이 남아있으며, 집회와 결사를 보장하지 않아 운동장이 없는 학교가 많은 전형적인 사회주의국가이다.하지만 인근에 증권거래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몽골 대통령이 박정희식 계획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외자유치를 위해 은행이자가 연 20%를 넘는 등 개방과 자본주의 경제제도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국가이다.한국과는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80개 정도 되는 몽골의 대학과 전문대학에는 5개 정도의 한국어학과가 있다. 한국인이 몽골에 투자를 하는 경우 쉽게 비즈니스 비자를 취득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반면 내몽골을 강제로 병합한 중국의 경우에는 관광 이외에는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있으며, 생필품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는 몽골의 사정상 어쩔 수 없는 무역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14대 달라이라마(4대 달라이라마가 몽골인이었다)의 몽골 방문을 허락하는 등 한국 정부와는 다른 대 중국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몽골인들은 자신들을 '몽고'라고 부르는 중국인들을 싫어하며, 여성인구가 많은 몽골의 인구 특성상 국제결혼을 해도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중국인이라고 할 정도로 거부감이 강하다. 그러나 유럽인들과 한국인의 경우에는 절대적인 호감의 대상이다. 몽골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단연 고비사막이며, 나무와 숲, 강이 좋은 테럴지 국립공원과 북서부에 위치한 흡스골 호수가 인기가 높다. 특산물은 양고기이며, 외국인의 경우 몽골염소의 털로 만든 캐시미어가 인기 상품이다. 초원을 누비면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인 '흐미' 가요가 민속 음악으로 인기가 높다.또 한국인의 삶과 비슷한 측면은 우선 생김새가 너무 비슷하며 누구나 아는 몽골반점이 있고, 무속신앙이 남아 있어 성황당인 '어버'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또 무당인 '버'의 영향력이 상당하며, 씨름대회도 자주 열린다. 활과 활을 쏘는 궁술대회의 모습도 너무나 비슷하다. 아울러 아이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손님들을 환대하고, 호방한 성격에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 등이 많이 닮았다.
단체·인물
김수종 기자
2007.06.1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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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영주중학교동문회(회장 김구현) 창립총회 및 한마음체육대회가 지난 9일(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울시 광진구에 위치한 자양고등학교 교정에서 동문 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영주중학교총동문회(회장 이두식)는 지난 1년간 서울지역의 동문들을 하나로 모아 재경동문회 창립을 위한 꾸준한 노력을 해왔다. 작년 7월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서
단체·인물
김수종 기자
2007.06.1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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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으로 돈을 벌었으니 고향에도 투자를 해야지요. 김수종이 만난 고향사람(51) 금강켑스톤 김석동 회장건국대학에서 정식으로 건축공학을 전공한 (주)금강켑스톤(http://www.kcstone.co.kr)의 김석동 회장(45)은 대학 졸업 후 전공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이는 건축용 석재를 수입, 판매, 시공하는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 곳에서 3년 정도 실무를 익힌 그는 91년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창업을 했다.주로 건축용 석재인 화강석과 대리석 같은 돌을 수입하여 건설회사에 납품을 하거나, 일을 수주하여 스스로 시공을 하기도 하고, 사후 A/S도 꾸준하게 실시하고 있다. 현재 금강켑스톤은 석재관련 업체로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큰 규모로 성장하였으며, 남양주시에 본사와 포천시에 석산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전국에 8개의 영업소 망을 통해 경향각지의 건설현장에 석재를 신속 정확하게 공급하고 있다.건축용 석재를 수입, 판매, 시공, A/S 하는 기업인석재회사를 경영하면서 97년 IMF로 잠시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88년부터 20년 동안 꾸준히 석재를 취급하는 일을 하고 있어 실무에 있어서는 박사급이라고 할 정도 건축용 석재 분야에서는 전문가이며, 금강켑스톤을 차입금 없는 내실 있는 중견기업으로 발전시켰다. 국, 내외출장이 많은 그는 “국내에서는 원하는 돌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주로 수입에 의존하는 관계로 중국이나 이태리,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출장이 많기는 하지만, 돌도 구하고 사업 아이템도 구상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즐겁게 다니고 있다.”고 한다. 사업에 바쁘지만, 고향사랑이 남다른 그는 그 동안 번 돈을 모아 영주에 60억 원을 투자하여 투수보도블록 공장을 준비 중에 있는 등 지역 투자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애향인이기도 하다. 현재, 김 회장은 석재 수입과 판매 시공을 담당하는 (주)금강켑스톤과 종합건설사인 (주)백송개발, 입시학원을 경영하는 (주)청호에듀컴, 사우나, 스포츠센터 사업을 주로 하는 (주)아이비 등 4개의 회사를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운영하고 있다. 전체 직원은 70여명에 달하며 연 매출 은 500억을 넘어서고 있다. 봉화군 봉성면 출신의 김 회장은 봉성초등, 봉화중고를 거쳐 건국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건축을 전공한 관계로 졸업할 쯤에는 건설회사에 취업을 하려고 했지만, 지인의 소개로 입사한 석재회사가 마음에 들어 일을 배워 독립을 했다. 늘 사업에 바쁜 그지만 남양주시에 터를 잡은 지 10여년이 지나가는 관계로 지역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덕소 로타리클럽, 경기 동부 상공회의소, 남양주시 장학재단, 남양주시 기업인 협의회, 남양주시 공무원 지원을 위한 활동 등을 하고 있기도 하다. 정직, 용기, 도전, 봉사로 헌신하는 기업인 지역봉사활동을 많이 한다는 말에 “정치에 뜻이 있으냐?”고 물었더니 “주변에서 정치에 뜻을 두고 있다는 소문이 나서 5년 전 분당으로 이사를 갔다. 그랬더니만 정치에 관한 소문이 사라졌다.”며 “정치인 친구나 선후배들이 많이 있지만, 후원이나 지역봉사만 하고 있다. 정치에는 전혀 뜻이 없다.”입장을 명확히 밝히기도 했다. “형제가 9남매이다. 형님들이 공무원으로 많이 활동하신 관계로 나도 봉사에 뜻을 둔 것뿐이다. 건축을 하게 된 것은 3째 형님이 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현장에 오랫동안 근무를 해서 나도 대학에 가면 건축을 전공해야겠다는 뜻을 세우게 된 것 같다.”라며 “현재는 석재를 주로 수입 판매 시공하고 있지만, 건설 회사를 겸하고 있는 관계로 전공도 충분히 살리고 있다.”고 말한다.“저는 이제까지 사업을 하면서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남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삶을 살면서 가능한 한 도움을 많이 주고 살자는 인생의 좌우명을 가지고 있다.”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한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라는 사업 방침도 알려 주었다. 그래서 인지 여러 분야의 사업을 많이 벌이고 있었고, 고향에도 투수보도블록 공장을 준비하고 있으며, 멀리 카자흐스탄에서도 동일하이빌의 건축 사업에 뛰어들어 석재 납품과 시공 일을 수주하여 매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봉사와 희생의 뜻이 확고하기에 건축인으로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입시학원을 경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개인적인 차원의 장학 사업은 아니지만, 기회가 주어지고 자금 사정이 좋아진다면 장학회를 설립하여 뜻이 있어도 돈이 없어 공부할 수 없는 재능 있는 인재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또한 사우나와 스포츠센터를 하게 된 이유는 “건축업을 하다 보니 터가 좋은 곳에 건물을 짓게 되는데 2-3년 전에 매입한 터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섰고, 상가와 사우나 스포츠센터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 빌딩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국내 최대의 사우나 경영주로 영주에 투수보도블록 공장 준비 중특히 “사우나의 경우 고급 석재를 많이 쓰는 업종이고, 50톤가량의 엄청난 무게인 돌로 만든 한증막 시설을 위해 특별히 부탁하여 건축설계를 했고, 내부 인테리어도 전부 검은 돌과 유리로만 하여 깔끔한 멋도 유지했다.”라며 “규모나 시설 면에서 제가 경영하고 있는 아이비한증막은 현재 국내 제일이라고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석재와 건축을 모두 알고 있는 김 회장이기에 설계를 특별히 하여 규모도 크고, 비용도 저렴하게 시공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실제로 건물의 내, 외부를 둘러보니 사우나를 준비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를 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이 보다 더 좋은 사우나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규모도 크고 깔끔한 것이 시간이 되면 가족들이 함께 이곳 사우나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살고 있는 김 회장은 충남 서천출신의 부인과의 사이에 여고생, 여중생인 딸을 하나 씩 두고 있다. “2-3년 전 캐나다 벤쿠버로 두 딸이 조기유학을 가서, 출퇴근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다시 남양주시로 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출향기업인으로 석재 분야에 일가를 이룬 금강켑스톤 김석동 회장. 그의 기업이 날로 번창하여 꾸준한 고향 투자와 함께 장학재단설립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주)금강켑스톤(http://www.kcstone.co.kr) 김석동 회장 연락처: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487-1번지 아이비타워 12층, 전화 031-577-6006, 011-763-4085
출향인
김수종 기자
2007.06.0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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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출신의 금나나 씨 '2007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진흥상(FWIS)' 특별상 수상영주출신으로 02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선발되어 활동하기도 했던 금나나(25, 공식 홈페이지 http://www.keumnana.com)씨가 생명과학분야 여성과학자의 발전을 위해 제정한 '2007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진흥상(FWIS)'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로레알코리아(대표 클라우스 파스벤더)는 지난 7일 “일반적으로 연예계를 비롯해 화려한 유명인사의 길이 보장돼 있는 미스코리아 당선자로서, 황금길 대신 과학도로서의 가시밭길을 선택한 결정이 많은 여성과학도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킨 결정이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FWIS는 생명과학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 과학자를 격려하기 위해 2002년 제정됐다.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출전 당시 경북대 의대 재학 중이었던 금 씨는 미국 아이비 리그(미국 동부지역 명문 대학 그룹)대학에 도전하여 2004년 미국 명문 하버드대와 MIT대에 동시 합격하면서 화제를 불러 모았다. 현재는 하버드대 생물학과에 재학 중이다.하버드대에 진학 이후 존하버드 장학생에도 선발됐고, 전미 대학생 중에 선발되는 국가우수학생에도 뽑혔다. 또한 삼성전자에서 주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최우수 성적을 유지하고 있으며,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다.금 씨는 “아직 시작 단계인 제게 FWIS 특별상을 주신데 감사드린다. 여성과학도로 더욱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다른 더욱 뛰어난 젊은 여성과학인들과 함께 과학을 일상 속에 더욱 가깝게 가져오는데 정진하도록 하겠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또 “저를 비롯해, 아직도 실험실에서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동료 여성 과학인 선배님들께 영광을 돌린다.”고 밝혔다. 금 씨는 미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쓴 공부 에 관한 글을 모아 를 2005년, 2004년에 각각 출간하기도 했다.한편 시상식은 오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개최되며, 금 씨는 상금 전액(100만원)을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단체·인물
김수종 기자
2007.06.0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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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거리, 남양주거리, ...몽골의 한류 첫 번째 몽골 방문기 3 임업청의 묘목장에서 식목과 식사를 마친 후 울란바토르 시내로 돌아왔다. 오늘은 몽골 최고의 칭기스칸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어제 묵은 칸팔래스 호텔보다는 시설도 못하고, 조금 작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몽골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이고 전통이 있어서인지 외국인 관광객이나 국빈들이 많은 찾는 곳이라고 한다. 최근 몽골은 개방화가 가속되면서 특급호텔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어제도 인근에 영진호텔이라고 한국인인 건축한 300객실 규모의 특급호텔 개업식이 있었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정문을 한국식 솟을대문으로 만든 영진호텔이 기품 있게 서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 흙투성이 몸을 털고 샤워를 했다. 잠시 TV를 틀었다. 오전의 식목행사를 다루는 뉴스가 나왔다. 한몽교류진흥협회(http://www.komex.or.kr) 임영자 이사장을 중심으로 인터뷰가 3분 정도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민간NGO단체의 활동을 긴 시간을 배정하여 다루는 것을 보면, 몽골이 얼마나 많은 외부의 손길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임영자 이사장의 표현을 빌자면, 몽골을 방문할 때마다 만나는 엥흐바야르(Enkhbayar) 몽골 대통령은 ‘한국의 박정희식 경제개발 모델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또한 ‘한국과는 민족적 동질감도 가지고 있으므로 정치, 경제적인 유대를 확대하고 싶다’는 뜻도 밝히고 있다고 했다. 흔히 몽골을 석탄, 동, 금, 형석, 몰리브덴 등의 광물자원이 넘치는 땅으로 ‘황금을 깔고 앉아 살고 있지만 가난한 유목국가’라고 말한다. 몽골이 많은 광물자원을 개발하고 싶어하고, 지하자원을 토대로 투자를 받고 싶어한다. 그 투자와 개발의 중심에 한국에 서주길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 쉰 다음 산책을 하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왔다. 호텔 왼편에 위치한 한국비즈니스센타를 향했다. 한국인 지었다는 센타 건물과 뒤편에 위치한 두 동의 아파트는 50-100평 내외의 몽골 최고급 아파트로 3년 전 분양가격이 100평 기준으로 한화 3억 원을 호가했다고 한다. 몽골의 전임 대통령이 처음으로 입주한 이후 올란바토르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과 외국상사 주재원, 외교관들이 많이 입주하여 살고 있다고 한다. 인근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나 호텔, 잡화점, 미용실 등이 눈에 띄었다.오전 식목행사장에서 만난 재몽골한인회 김명기 회장은 “현재 몽골에는 한국인 거주자는 3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대부분 관광,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인정보지 2종이 발행되고 있다”라고 한다. 또한 “최근에는 건축업이나 호텔업을 하기 위한 한국인들의 투자가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호텔 주변을 둘러 본 후, 호텔 뒤편에 위치한 백화점으로 갔다. 1-2층 규모의 작은 백화점으로 주로 한국, 일본, 중국의 물품들이 많았다. 직원에게 “몽골의 특산품으로 선물용으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더니 “몽골에 오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선물은 몽골 산 캐시미어(cashmere, 염소의 연한 털을 사용하여 가늘게 짠 능직으로 만든 것으로, 촉감이 매우 부드럽고, 보온성이 크며 가벼운 고급 방모직물)다”라고 대답했다.그래서 집사람과 친구들에게 선물할 캐시미어 목도리 9개를 샀다. 개당 30달러 정도로 비싼 편은 아니었다. 한국의 백화점에서 구매를 하면 개당 10~12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비싼 항공료를 번다는 의미에서 사왔다. 목도리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식사를 위해 단체로 버스를 타고 울란바토 르 시내의 남양주거리로 갔다. 남양주회관 옆에 위치한 한식당에서 양고기를 위주로 식사를 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라 그런지 양고기를 한국식으로 양념을 하여 맛이 좋았다. 맥주와 칭기스칸 보트카를 한잔씩 했다. 몽골에서는 최고의 상품에만 칭기스칸이라고 명한다고 한다. 칭기스칸 공항, 칭기스칸 호텔, 칭기스칸 골프장, 칭기스칸 보트카 등등. 생각보다 맥주와 보트카는 잘 넘어갔다. 즐겁게 저녁식사를 하고는 호텔로 돌아가려고 했더니, 임영자 이사장이 “모두들 마사지 받으러가자” 라고 했다. “한 시간에 15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솜씨도 좋고, 하루의 피로를 전부 풀 수 있다”기에 모두들 길을 나섰다.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달려서 마사지 숍으로 갔다. 커다란 방안에 일행 모두가 입장을 하여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정말 시원하게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한 시간을 조금 넘는 마사지 과정은 여독을 풀기에 충분했다.동행했던 여약사신문(http://www.ikwn.co.kr)의 대표인 윤명선 약학박사는 “태국만 마사지를 잘하는 줄 알았더니, 몽골의 마사지 실력도 상당하다”라며 전문가 입장에서 평했다. 마사지가 끝나고 모두들 잠이 들어버려 20-30분을 더 있다가 호텔로 돌아왔다.돌아오는 길에 한국의 BBQ치킨이 프렌차이즈로 진출한 BBQ패밀리레스토랑을 지나치면서 ‘참, 몽골에 한국인들이 많이 진출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몽교류진흥협회 임영자 이사장은 “최근 우리 협회가 지원하여 진출에 성공한 프렌차이즈 첫 작품”이라며 “내일 저녁 식사는 저곳에서 하자”고 했다.호텔에 돌아와서는 잠시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몽골에서는 공중파 방송국이 2-3개 있고 10여개의 케이블 TV방송국이 있다. 호텔에서 볼 수 있는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러시아의 인공위성방송이었고, 몽골 방송의 경우도 자체제작 프로그램은 많지 않은지 주로 외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더빙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한류의 영향 때문인지, 한국의 사극 이 방송되고 있었고, 칭기스칸 호텔 내에도 한국인 경영하는 중식당과 태극기가 높게 게양되어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매년 5만 명 이상 방문한다고 하니 그럴 법도 해 보였다.
단체·인물
김수종 기자
2007.06.0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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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모양이 아름다운 사람이 출세합니다.김수종이 만난 고향사람(50)헤어디자이너 안병진 씨어린 시절 남자아이들은 주로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자르게 된다. 나도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늘 그랬던 것 같다. 초, 중, 고를 다니면서 형님이나 동생과 함께 이발소에 가던 생각이 난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유행이 변하고, 자유로운 머리를 만들어주는 미장원을 찾기 시작했다. 아마도 대학시절부터인 것 같다. 학교 인근의 미장원이나, 친구들과 함께 도심에 위치한 테라스가 멋지고 창이 넓은 미용실을 찾으면서 이제는 거기에 길들려진 것 같다.요즘에는 초등학생이 된 아들과 함께 집 근처의 미용실을 자주 찾는다. 남자야 주로 머리를 자르는 것에 그치지만, 여자 미용사가 잘라주는 머리는 이쁘고 멋있는 경우가 많다. 흔히 ‘남자는 남자가 보면 알고 여자는 여자가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한다.그래서인지 남자미용사들은 여자 손님에게 인기가 좋고, 여자미용사들은 남자 손님들에게 인기가 높다. 아들과 나는 여자 미용사가 잘라주는 머리모양이 좋아서 인지 자연스럽게 미용실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만난 영주출신의 남자 미용사얼마 전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경기도 군포시의 산본동에 간 적이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금정역 인근에 위치한 관계로 교통이 편리한 곳이었다. 저녁시간 볼일이 있어서 갔는데,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1시간 정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미용실에 들렸다.금정역전의 더원헤어(THE ONE HAIR)라고 하는 미용실이었다. 여자미용사 5명 정도와 남자미용사 한사람이 일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여자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기고는 잠이 들었다. 15분 정도 머리를 다듬고서 샴푸를 했다. 돈을 지불하고 나오려는데, 때 마침 창밖에는 억수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 미용실에서 제공한 커피를 한잔 마셨다. 잠시 앉아서 책을 보다보니 남자미용사가 다가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투가 비슷해 고향을 물어보았다. 영주시 안정면 출신으로 영주공고 화공과를 졸업하고 10년 넘게 미용사로 일하고 있는 안병진(32)원장. 그는 안정농협조합장을 지낸 안용희 씨의 삼남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이내 군에 입대했다. 군에서 우연한 기회에 이발병으로 복무한 것이 계기가 되어 헤어디자이너를 직업으로 택했다. 군대를 제대하고는 미용학원에 등록하여 미용사자격을 취득했다. 미용사 자격을 취득했지만 견습미용사로 서울의 강남에서 4년 넘게 박봉을 받아가며 일했다. 그리고 중급 헤어디자이너로 승급하여 4년 넘게 일하면서 어느 정도 수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2005년 평촌에서 개업했다.군 복무시절까지 포함하여 이발 일을 시작한지 10년 만에 스스로 창업을 한 것이다. 평촌에서 개업을 하고 있을 당시에는 유명 TV탤런트 홍요섭 씨가 단골로 찾아주어 일약 유명 미용실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10년을 고생하여 정상급 헤어디자이너로 연봉 1억의 꿈을 이뤄컷트와 염색을 잘하는 안 원장은 탤런트 머리를 잘 자르는 디자이너로 인기를 얻으면서 지역의 젊은 남성은 물론 아가씨들과 아주머니들이 무더기로 찾아오는 미용실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잘 생긴 외모에 수염까지 기르고 다녀 항상 주목받는 헤어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던 중 작년 하반기 현재의 금정역전에 40평 규모의 큰 매장이 나와서 직원들을 이끌고 이전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역전이라 위치도 좋고, 건물도 깨끗하여 최근에는 손님도 늘고 있으며, 지역에서 머리를 잘하는 집으로 소문이 난 것 같다.”고 한다. 현재 여자미용사 5명과 함께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는 관계로 수입도 상당한 것 같았다. 서울지역의 프로헤어디자이너들이 연봉 1억대를 달리는 것을 보면 그도 그 반열에 올라서 있는 것 같았다. “수입이 좋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10년 정도 수습과 초급 디자이너로 박봉으로 일하는 관계로 현재의 수입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단, 고생한 만큼의 보람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안 원장의 동생도 전문대학에서 미용학과를 졸업했지만, 수습만 3년 정도하고는 포기를 했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미용실에서 수습디자이너는 보통 월급으로 50만원을 가져가기 힘들다.”고 한다. “미용사라는 직업은 새로운 미용기술을 끊임없이 연구해야하고 일은 많지만 보수는 박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루면 정년 없이 평생이 보장되는 것 같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미용분야에도 남성 대졸자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시대인지라 미용분야에도 남녀의 성역을 넘어서 남자들도 넘치고 있는 것이다. 그도 10년간의 고생으로 이제는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룬 것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하는 미용사의 길 “결혼을 했냐?”고 물었더니 “정말 돈이 없어 아직은 못했지만, 조만간 하고 싶다.”라며 “이쁘고 착한 여자 있으면 소개를 해 달라.”고 했다. 비가 그쳐 나오려고 했더니 용인에 살면서 지하철 분당선의 철도기관사를 하고 있는 형 안재환(37)이 왔다며 인사를 시켰다.안 원장은 “정말 형님이 저 보다 100배는 대단합니다.”라며 “매일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고, 생활비도 보내드리는 효자이고, 매일 열심히 공부하여 철도청에 입사한지 2년 만에 부기관사에서 기관사가 되었고, 11년 만에 기관사 지도팀장이 되어 관리자가 되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라며 최근에는 “모범직원으로 철도공사 사장상을 받기도 했다.”며 자랑을 했다.정말 대단해 보였다. ‘시골에서 올라온 두 형제가 정말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직업이든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자신만의 삶을 열심히 살면 된다는 것도 느끼었다. 돌아서 나오는데 안 원장이 “머리모양이 아름다운 사람이 출세한다.”라며 “오늘 아주 머리를 잘 자른 것 같다.”며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오랜 만에 고향사람을 만나서 반가웠다.”라며 샴푸와 린스를 한통씩 봉투에 담아주어 집으로 가져왔다. 요즘도 아들과 함께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으면서 두 형제를 생각하면 저절로 환한 웃음이 나온다. 더원헤어(THE ONE HAIR)미용실 안병진 원장: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266-19번지 동서프라자 2층, 전화 031-396-4876, 017-365-6004
출향인
김수종 기자
2007.06.05 1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