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율 (동양대학교 교수)

지역소멸(地域消滅)이라는 말이 화두(話頭)로 떠오른 지 꽤 여러 해가 지났으나 여전히 이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 방안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어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대체로 두 가지 측면에서 이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하나는 고향을 떠난 이향인(離鄕人) 내지는 출향인(出鄕人)들의 귀향(歸鄕)에 해당하는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이 고향이 아닌 사람들의 귀촌(歸村)에 관한 측면이다.

먼저 귀향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올해로 제5회를 맞는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행사가 지난 4월 13일 금요일 경복궁을 출발하여 현재 도산을 향하여 한창 걷고 있다. 4월 22일 월요일 저녁 무렵에는 풍기 관아가 있던 현재의 풍기초등학교 은행나무 아래에 도착할 예정이다.

퇴계 선생이 1569년 음력 3월 3일 선조로부터 그토록 소원하던 귀향에 대한 반허락(半許諾)을 받은 지 450주년이 되던 2019년 4월에 도산서원(陶山書院)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 주관하는 귀향길 행사가 시작되었는데 그간 코로나로 인해 1번 쉬었으나 계속 행사를 진행하여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더군다나 영주에 있는 풍기는 퇴계 선생이 군수를 역임하였고 이산서원(伊山書院)은 퇴계 선생이 서원 명칭과 건물 이름, 기문(記文)과 서원 원규(院規)를 직접 짓는 등 본격적인 서원 운동의 출발이라는 의미가 담긴 곳이다. 풍기와 이산서원을 경유하는 귀향길 재현단(再現團)이 우리 영주를 통과하는 즈음에 영주시민들이 나서서 열렬히 성원해 주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퇴계 선생의 귀향길 행사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막연히 고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퇴계는 당시 69세의 노인으로 어린 선조가 그렇게 자기 곁에 모셔두고 배우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간청을 한 끝에 다시 한양으로 올라오는 조건으로 반허락을 받아 귀향길에 오른다. 퇴계 선생은 단순히 만년을 고향에 돌아와 인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귀향하려 했다기보다 일평생 학문연구에 몰두하여 터득한 진리를 총정리하여 집대성(集大成)하고 이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또한 현실정치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시위소찬(尸位素餐)으로 인생 말년을 보낸다는 것은 퇴계 선생의 처지에서는 더욱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보다는 귀향하여 후진을 양성하며 향풍(鄕風)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더욱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귀향길을 서둘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퇴계 선생의 귀향은 생각보다 큰 함의(含意)를 가진다고 하겠고 후인들에게도 하나의 모범이 될 수 있겠다. 또한 출향(出鄕)하여 성공한 뒤로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서울이나 외지에 머물러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고향이 무엇인지? 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깊이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고 하겠다.

귀향과는 다른 귀촌(歸村)이 있다. 귀촌은 지역에 고향을 두지 않은 사람들이 지역으로 내려오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나 귀촌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실제로 귀촌했다가 다시 귀도(歸都)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지역에서 귀촌하는 사람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소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자세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귀촌하는 사람들의 지역에의 적응 노력이 부족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런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가는 지역이나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 마음을 열고 그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인식과 자세의 전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인종과 말씨가 다른 외국인들도 받아들이기 위해 이민청(移民廳) 설립을 적극 검토하는 마당에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라면 지역소멸은 자연스럽고도 명약관화(明若觀火)한 현실이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향인과 출향인, 내국인과 외국인을 구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려는 자세만이 지역소멸을 방지하고 대한민국을 존립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겨야 할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선비의 고장을 표방하는 우리 영주는 이런 사람들을 기꺼이 포용할 수 있는 개방적 사고와 자세를 선제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현상은 어찌 보면 자업자득(自業自得)이고 자모자벌(自侮自伐)의 근시안적(近視眼的) 태도가 낳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스스로가 출산율에 상당한 기간 무신경(無神經)하고 안일(安逸)하게 대처해 온 결과이다. 그러나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할 시간도 없을 만큼 절박하다.

오래전부터 초등학교가 문을 닫기 시작하여 지금은 대학이 위험하고 지자체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 초래한 이즈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발 벗고 나서서 무엇이라도 해야 할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을 절박하게 가져야 할 것이다. 존립하고 생존한 바탕 위에 다른 논의나 논쟁이 가능한 것이다. 존립이나 생존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다. 우리 세대의 안일함과 근시안이 이런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존립과 생존의 바탕을 만들어야 한다.

퇴계 선생 귀향길 행사를 계기로 귀농과 귀촌 문제를 생각해 보고 이제는 이향인과 출향인, 내국인과 외국인을 구별하지 말고 지역으로 오려는 의사를 조금이라도 내비친다면 무조건 따뜻하게 맞이하여 자랑스러운 우리 지역의 존립과 생존을 가능하게 합시다. 그 길만이 각 지자체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이라는 자랑스러운 국호(國號)를 세상에 영원히 드날리면서 살아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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