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역 광장에 세 차례 연이어 2천여 명 운집
삭발식·상여 퍼포먼스까지… 절박한 시민 외침
3일 저녁 7시, 영주역 광장이 눈물과 분노, 간절함으로 가득 찼다. ‘영주납공장반대시민대책위’와 ‘낙동강네트워크’ 소속 48개 시민·환경단체를 비롯해 영주시민 2천여 명이 모여 ‘납폐기물 제련공장’ 철회를 요구하는 3차 궐기대회를 열었다.
1차와 2차 궐기대회 때 보다 더 많은 시민이 간절함으로 역 광장을 가득 채웠다. 매주 3차례 2천여 명 내외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한 보기 드문 집회다.
이날 시민들은 “영주를 살려주소”, “납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외치며 생명과 환경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청정도시 영주에 수입산 납폐기물을 들여와 제련하는 공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불안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반경 5㎞ 이내에 아파트, 학교, 어린이집이 밀집한 지역 특성상 시민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 화환 및 영주 특산물 나열 ‘납’ 제사상 “이게 영주시 장례다”
낙동강네트워크는 이날 무대에 올라 입장문을 내고, 낙동강 상류인 영주에 납폐기물 제련공장을 건립하는 것은 영남권 1천300만 시민의 식수원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납은 소량으로도 치명적인 중금속이며, 낙동강 생태계와 시민 건강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네트워크는 공장 건립 전면 철회와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집회의 하이라이트는 삭발식과 상여 퍼포먼스였다. 삭발식에 참여한 일반시민 3명은 당당하게 단상에 올랐다. 60년 넘게 이 지역에서 살아온 김주동 씨는 “지금 이대로 가면 우리 모두가 납에 중독돼 병들고 죽는다”며, 또 다른 시민 이재희 씨는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지만 생명은 그렇지 않다”고 울먹이며 “납공장을 몰아내자”고 외쳤다.
마지막 참여자 유태환 씨는 “농사꾼으로 절실한 마음으로 임했다”며 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어 상복을 입은 시민 장준석 씨가 대통령과 부시장을 향해 상여소리를 내자 광장은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한 시민은 “이게 바로 영주시 장례다. 납공장이 들어서면 미래도, 건강도 다 썩는다”고 말했다.
광장 한쪽에서는 “영주시는 나몰라라, 다 같이 죽자 한다”, “납공장에 침묵한 시의원들 낙선운동 하자”는 현수막이 내걸리기도 했다. 특히 납공장이 가동된다면 주민들은 “이름 모를 병으로 사람이 죽어 나간다”며 불안을 호소했다.
▲“대법원 패소? 불허 사유는 충분하다”…하승수 변호사 발언
이날 현장에 참석한 공익법률센터 농본의 하승수 변호사는 “영주시가 납공장 불허를 선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한 번 패소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베어링 국가산단이 납공장보다 후에 들어선 점, 반경 5㎞ 안에 새로운 주거지가 들어섰고 학교가 존재하는 점 등을 새롭게 불허 사유로 제시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납은 안전기준치가 없는 독성 물질이며, 대법원 판례를 보면 두 번, 세 번 불허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또 “이런 공장이 서울 강남에 들어간다면 가능하겠느냐”며 “시골이라고 차별해선 안 된다. 납공장은 본질적으로 시골 탄압”이라고 강조했다.
하 변호사는 이날 집회 직전 영주시청 관계자들과 납공장 불허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공감대도 이뤄졌다는 전언이다.
▲“이건 생존의 문제”…시민들 분노의 외침 이어져
시민들은 이번 집회를 단순한 반대 운동이 아니라 생존권 사수로 규정했다. 풍기읍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풍기 인삼을 누가 납공장 옆에서 재배한 걸 사겠느냐. 농민 다 죽으라는 거다”고 성토했다. 수도권에서 내려온 시민도 있었다. “은퇴 후 고향에 돌아와 살려 했는데 납공장이 웬말이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현장에서 만난 보건의료계 인사 구자익 씨는 “납중독은 역치가 없다. 미국 플린트시처럼 수돗물 납중독 사태가 영주에서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주시는 오는 9일까지 공장 설립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해야 한다. 시민들의 외침이 행정 판단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