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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 -김수환 밤을 새워 만드는 사과파이에 첩첩이 있지수십 장 종이 같은 마음을 아주 얇게저미고 밀어 만드는 말 못 할 첩첩이 있지 물 마른 진흙 첩첩 비늘도 없는 미꾸라지들이가쁘게 서로의 몸을 휘감는 첩첩이 있고그래도 건널 수 없는 첩첩 마음이 거기 있지 첩첩 모퉁이 돌아 첩첩의 고개가 있고오가는 걸음 첩첩, 얼싸안는 가슴이 첩첩우리가 함께 못하는 그 평생도 첩첩이지 -착착첩첩이 시간을 먹고 착착이 되었습니다. “말 못 할 첩첩”, “건널 수 없는 첩첩”, “얼싸안는 첩첩”이 견디는 동안 쌓인 것들은 얼마나 될까요. 듣는 귀 착착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4.2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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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이은실 할머니는 집 밖으로 나오면바보가 된다핸드폰으로 길 찾는 법도 모르고무인판매기 앞에선항상 사람을 부른다 암만 해봐도 모르겠다며깔깔 웃는 할머니 살기 참 편해졌네세상 참 좋아졌네 거짓말!하나도 안 편하면서하나도 안 좋으면서 -서투른 강점(强點)‘비루빡(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지도 않았는데, 비루빡이 밥해 주는 것까지 보네! 이 무신 일이고?’ 전기밥솥이 처음 나왔을 때 할머니가 했던 말입니다. 보리 찧기부터 평생을 두 손, 두 발로만 먹거리를 장만했던 할머니는, 정작 그 좋다는 밥솥 한 번 사용해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4.1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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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 -김정수 시내에 나간 아내가무료로 나눠준다며무궁화 묘목 열 그루를 들고 왔다 벗겨지지 않도록새끼줄로 얼기설기 동여맨흙 신발을 신고 있었다 낯선 사람 따라가면 안 된다는데 어린데도용케울지 않고 잘 따라왔다 혼자라면 오다가 버려졌거나누군가에게 건네졌거나말라 죽었을지도 모른다 삽을 챙겨아이들과 뒷산에 올라외롭지 않은 간격으로 심고는발로 꾹꾹 눌러 주었다 간밤에 비 내리는 소리 들려왔다 -심지어 무궁화잖아요며칠 전까지 온 나라는 벚꽃 축제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모처럼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이 화려한 호강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식목일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4.1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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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너의 팔에 모두 적어 줄게내가 너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쓴잔을 죄다 마시겠지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한시는 자화상입니다. 나를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4.0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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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쑤며 -이두의 옹골차게 맺혀있는 나를 먼저 허물어야남의 속도 편안하게 풀어 줄 수 있다고퍼지는 밥알의 뜻을 날깃날깃 받는다 Making Porridge So tightly packed with something,I first need to loosen up.Then I might soothe and pacifyeven the minds of other folks.While stirring to loosen the rice grains,I modestly take their meaning. -짧은 시, 긴 생각푹 퍼진 죽 한 그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3.2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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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지은 집 -홍이지민 벽돌도 못도보이지 않아요 손등 위에 모래를 봉긋하게 쌓아놓고‘토닥토닥’ 두들기기만 해요 허물고 두들겨도시끄럽지 않아요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노랫소리만 들려요 아이들 손바닥이 문패처럼‘꾹’ 찍혀 있는 집아이들이 지은 모래집 -마음의 모래성금모래 담뿍 담아 밥을 냠냠 먹는 소꿉놀이가 싫증 난 아이들이 집짓기를 하고 있어요. 모래 속에 손등을 넣고 “벽돌도 못도” 없이 오직 모래만 착착 두드립니다. 흩어지는 속성을 가져 결코 뭉칠 것 같지 않았던 모래알도, 물을 조금 섞어서 두드리고 두드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3.2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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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소반 -이홍섭 절간 외진 방에는 소반 하나가 전부였다늙고 병든 자들의 얼굴이 다녀간 개다리소반 앞에서나는 불을 끄고 반딧불처럼 앉아 있었다 뭘 가지고 왔냐고 묻지만나는 단지 낡은 소반 하나를 거기 두고 왔을 뿐이다 -나는 소반을 두고 소반은 나를 두고되다 만, 스님이었을까요? 되다 만, 보물이었을까요? 사람과 소반이 만나, 사람은 사람대로 소반은 소반대로 웅숭깊은 장면을 자아냅니다. 거기 늘 있는 존재인 듯 아닌 듯, 다 변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불을 끄고 반딧불처럼 앉아 있”는데도 마치 그것에만 조명을 비춘 듯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3.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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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꽃 -이은봉 농협 창고 뒤편 후미진 고샅, 웬 낯빛 뽀얀 계집애 쪼그리고 앉아 오줌 누고 있다이 계집애, 더러는 샛노랗게 웃기도 한다 연초록 치맛자락 펼쳐 아랫도리 살짝 가린 채왼편 둔덕 위에서는 살구꽃 꽃진 자리, 열매들 파랗게 크고 있다눈 내리뜨면 낮은 둔덕 아래, 계집애의 엄니를 닮은 깨어진 사금파리 하나, 반짝반짝 빛나고 있고. -그러니 마음껏 피어도 좋다다중인격을 가진 것 같은 3월입니다. 눈으로 푹푹 주저앉았다가, 살얼음 낀 바람으로 앙앙하였다가, 살방살방 햇살 줄기를 부려 놓기도 합니다. 그 변덕이 부끄러워질 즈음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3.0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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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손톱깎이 -서숙희 손톱깎이라는 도구를 평생 써본 적이 없다 그 한 몸 그 한평생논일 밭일 들일 산일 칠남매 자식들까지 모두가 손톱깎이였다 뒤틀리고 주저앉은 아흔 살 손톱을잘 드는 금속성으로 깎아드려 보려는데 돌처럼 굳은 손톱에튕겨나간 쓰리세븐* *손톱깎이 제품명 -비애를 먹는 시간얼굴보다 손을 통해, 손 한 번 쓰다듬어 보는 것이 그 사람의 속사정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얼굴은 거짓말을 해도 손은 거짓말을 못 한다는 뜻이겠지요. 손이 들려줄 이야기는 넘치고도 넘칩니다. 그런데 왜 손일까요? 왜 다 닳아 버린 손톱일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2.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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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컴의 면도날 -김 승 아침마다 덥수룩하게 자란 생각을 잘라냅니다 밤새 웃자란 생각은 쉽게 잘리지만고정된 관념은 쉽게 잘리지 않네요 그제는 먼지처럼 구석에 쌓여있던 책을 버렸습니다눈이 맞아 신혼집에 데려와 각주까지 사랑하던 어제는 옷과 신발 서류 가방을 버렸고오늘은 일기장과 필기구를 버리겠습니다마침표를 찍기 위한 한 자루 붉은 펜만 남기고 여분의 옷도 가져가지 말라시던 그분의 말씀 따라생각도 웃자라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르고표정도 말도 면도하겠습니다 옹이처럼 굳은 신념을 제거하기 위해조용히 머리를 내밀고 기다리겠습니다내일은 -나직한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2.2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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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키스, 키스 -신현림 떠드는 말이 부딪혀 상처와 이별을 만들고따듯한 수증기로 스미면 마음의 키스가 되지키스, 키스, 키스! 번역해서 뽀뽀는 얼마나 이쁜 말이니삶이 아프지 않게 시원하게말은 사려 깊은 타월이 돼야지 매순간 모든 이로부터 버려질 쓰레기까지뽀뽀하는 마음으로“네 일은 잘 될 거야 네 가슴은 봄 바다니까”인사하는 바로 그것삶이 꽃다발처럼 환한 시작이야 -서로가 끌리는 동안만이라도내가 지금 당신에게 건네는 말은 “사려 깊은 타월이” 되고 있을까요? 문득 아찔해집니다.서글픔으로 가득 차 있는 게 삶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2.1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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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주인공도 자란다 -장석순 작년에 봤던어린 왕자. 다시 읽었더니그때와는느낌이 다르다. 그동안감추었던 마음하지 못한 말내게 털어놓는 어린 왕자. 못 본 사이어린 왕자가훌쩍 자랐다. -그 봄날로 돌아 가팽팽한 긴장으로 옷깃의 매무새를 점검하며 살다가, 브레이크 타임에 마시는 한 잔 희망처럼 낙낙해집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꽁무니를 남기고 눈물이라는 증거도 없이 사라졌지만, 마냥 어리게만 보였던 어린 왕자가 다 자란 어른이 되어 어깨를 내어 주네요. 별채처럼, 사랑방처럼요.돌아선 친구 대신, 토라진 동료 대신 “그동안/ 감추었던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2.0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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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 -남연우 호수를 건너는 다리 난간에위험한 시도가 매달렸다뛰어내릴까말까 밤새 고민한 흔적을 말해주듯신발을 벗어 놓은발부리 끝이 뾰족하다 방울 방울지는투명한 펜촉으로 써 내려간유서를자필서명, 햇살이 받아적는다 쨍한 서릿발 눈빛송곳으로 후빈 아픔용서해달라 뛰어내린 그 자리에마르지 않은 눈물이 떨어진다 혼탁한 생의 한복판급소를 찌른얼음칼,고름이 튀었다 -서늘한 생존‘수정 고드름 따다가 각시방 영창에 달아’놓을 정도로 여렸던 감성이, “뛰어내릴까/ 말까”하는 “위험한 시도”로 보일 만큼 많이도 변했어요. 시선도, 정서도요. 살아보겠다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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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황유원 꿈에 누가 내 시를표절한 시를 보았다개소리라는 거 알지만세 편 모두 그랬다그는 내 시의 문장들을 교묘하게 줄이거나변형시켜 놓았는데일차적인 감정은 분노와 억울함이었으며이차적인 감정은 어떤 문장은 차라리 내 것보다 신선했다는 것이었다그것이 그의 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시간이 좀 걸렸지만결국 인정하기로 했다용서하기로 했다 어느 파리 날리는 옛 시골 다방거기 그의 시가 액자 속에 담겨 있을 것만 같다누가 그에게서나를 읽고 갈 것만 같다그가 나를 표절했다라고 하지 않고누가 와서 그에게서나를 읽고 갔다라고 하니 내가늘어나는구나내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1.1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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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구두 -김동관 시계를 삼킨 악어, 구두로 태어났다째깍째깍 뒷발 들고 먹잇감을 쫓지만건물주 앞에만 서면 꼬리 끈이 풀린다 수개월 밀린 월세에 구겨진 명품 구두밑창 터진 실밥이 가시처럼 돋아나움켜쥔 발가락마다 온통 진흙투성이다 악어새는 날아가고 보증금 바닥나도질긴 가죽 하나 믿고 버텨온 자존심구두의 생명은 광택 침 튀겨 닦아본다 -다시, 광택이 명품 구두의 처음은 어땠을까요? 늪지대에서 최고로 군림했던 악어가 난데없이 포획되어 인간 허영의 제물이 되기 전 말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왕 놀이에 빠져, 보이는 것은 뭐든지 삼켜 버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1.1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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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실조 -이훤 오늘따라 유독 허기가 졌다 황홀을먹고 싶었다 낭만 실조에 걸린 것 같았다 날 보고, 네가 웃었다 포만감에 숨 쉬지 못했다 -새해 첫 기적날 보고 웃는 ‘네’는 누구일까요? 무엇일까요? 아기, 희망, 연인, 승진, 합격, 되찾은 건강, 갓 결혼한 신혼부부, 화합… 마음 거룩히 띄울 단어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지요. 또 각자의 취향, 환경마다 다르겠고요. 무엇이든지 우리를 들뜨게 하고 설레게 한다는 공통점에 닿아있네요. 나를 보고 웃는 너와 눈 맞추며 살아가는 것은 얼마만 한 행복이 될까요?맥과 흐름만 지킨다면, 시도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4.01.0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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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눈 -김광규겨울밤노천 역에서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안으로 들어가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눈이 내려도바람이 불어도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한사코 ‘바깥’“서로의 집이 되”려고, “따스한 방이 되”려고, 한사코 “바깥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춥고 을씨년스러운, 바람과 눈까지 덮친, 기다리는 전동차까지 오지 않아 온몸이 알알한 겨울밤에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겨울밤의 짧은 순간조차(체감상으로는 꽤 긴), 서로를 위한 바깥이 되려고 합니다.시간을 두드려 깰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3.12.2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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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앞에서 콜라의 기분을 생각했어 -박기린동전이 딸각 들어가면제일 인기 있는 걸 알면서도콜라는 조마조마할 것 같았어 내가 반장 선거 나갔을 때처럼사이다에 밀리면 어쩌지물은 맹탕인데 설마 아니겠지 걱정이 뽀글뽀글 올라와속이 새카맣게 탈 것 같았어 철컥! 자판기에서 콜라가 뽑혔어짜릿한 맛이 어디서 오는지 알겠어 -들키길 바란 마음‘마침내 내 차례인가?’ 설레며 대기하던 콜라가 깜짝 놀랐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다가와 음료를 꺼내 먹어도 본인이 마실 음료의 입장이 되어 준 걸 본 적은 없었거든요. 무심히 동전을 넣고 원하던 음료만 꺼내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3.12.2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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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백 -오광수남은 달력 한 장이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한 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내년에는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3.12.1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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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이종욱 그래, 잉크를 깨끗한 잉크를 넣어주마그래, 너의 푸른 피를 닮은 시를 쓰마그래, 하늘의 뜻을 푸르게 푸르게 펼치마그래, 너와 함께 긴 밤도 짧게 불 밝히며 새우마그래, 가냘픈 힘줄이나마 곳곳의 진창에 흙을 퍼 나르마그래, 서러운 비가 와서 해가 없는 날 너를 찾으마그래, 젖은 가슴 모두 양지바른 처마 밑에 데려가마 -내일도 푸르게 박히게 될뭐든지 빠르고 기계화된 시대에, 오래된 감성 같은 시 ‘만년필’ 한 자루를 소환해 봅니다. 시인은 양처럼 순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뭇 시인들의 어떤 시보다 견고하고 강직하게 느껴집
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
영주시민신문
2023.12.08 1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