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라는 무한한 가능성의 테이블을 꾸미고 싶어요”

배지현 대표
배지현 대표

우리 고장의 가장 큰 힘은 깨끗한 쉼과 자원

요리사 꿈꾸는 청년, 도움주는 단체로 발돋움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서울로 향해야 하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돈과 사람이 모여드는 곳이니만큼 충분히 나올 법한 말이다. 그러나 옛말이라고 해서 진부하거나 요즘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 아니다.

지방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향이 있는 것만 봐도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지방은 인구 감소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이젠 지역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한때 18만 명을 웃돌던 우리 고장 영주의 인구도 10만 명대 붕괴를 목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자체는 다양한 귀농귀촌 정책을 내놓고 도시민 유치를 통해 인구 증가를 꾀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경북도가 지난해 공모한 ‘경북살이 청년실험실’이다.

이 사업은 프리랜서 청년이 경북에 살면서 지역 활동을 통해 창업과 경력 개발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지역 내 일감을 연계시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이 사업에 우리 고장 영주의 청년단체 ‘다이닝 프로젝트’를 비롯 경산과 성주 등 총 3개의 팀이 선발됐다.

‘다이닝 프로젝트’가 지난 15일 경북살이 청년실험실 2년 차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단체는 로컬푸드를 활용한 레시피 개발과 상품화 지원으로 에프앤비(F&B, 음식․음료 관련 서비스) 분야 취·창업을 꿈꾸는 프리랜서들을 지원하고 있다.

영주의 자원을 알리고 청년의 정착을 지원해 현시대의 가장 크게 대두되고 있는 인구 문제에 앞장서고 있는 ‘다이닝 프로젝트’의 배지현(38) 대표를 만나 영주를 빛낼 수 있는 청년 창업의 다양한 매력과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어반 버스킹 페스티벌' 활동 (2)
'어반 버스킹 페스티벌' 활동
'어반 버스킹 페스티벌' 활동

영주의 첫인상은 ‘힐링 그 자체’

배 대표는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일했다.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나 홈쇼핑, 로컬푸드 브랜드의 메뉴를 컨설팅하거나 푸드 스타일링, 레시피 개발, 촬영 콘셉트 컨설팅을 진행했다. 사실 그녀의 전공은 음식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유아교육학이다.

우연한 기회로 반듯한 테이블 위에 예쁘게 차려진 음식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서 테이블 위를 디자인하는 것에 그야말로 첫눈에 반했다. 그 후 그녀의 인생은 음식으로 가득 차게 됐다. 눈으로 먼저 맛볼 수 있는 음식으로. 그녀는 완벽한 테이블을 위해 숙명여대 전통식생활문화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도 아카데미에서 스타일에 대해 꾸준히 배우고 있다.

서울에서 치열하게 음식을 스타일링 하던 배 대표가 영주로 내려오게 된 계기는 경기도에서 입시학원을 30년간 운영하면서도 매주 주말농장을 찾을 만큼 귀농에 대한 순수한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부모님이 영주로 완전 귀농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사과농장을 열어 농사를 짓고 싶다는 그녀의 부모님은 곧장 영주에 정착했다.

“영주에 처음 왔을 때 느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평화로운 느낌으로 가득 찬, 힐링 그 자체였습니다” 배 대표가 처음 영주에 발을 딛었을 때를 회상하며 한 말이다. 영주에는 자원이 무척이나 풍부했고, 이것이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브랜딩과 함께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그녀는 예측했다.

처음 그녀가 영주에서 시작한 일은 영주 곳곳에 가득 찬 힐링 에너지를 활용하는 일이었다. 자연에서 온전한 쉼을 통해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인 ‘영주네별장’은 그렇게 지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편안함 선사하고 싶어

‘영주네별장’은 아침에 소백산을 바라보며 방문객이 직접 로컬 식재료로 조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꼼꼼하게 준비된 독채 숙소다.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직접 운영하는 숙소인 만큼 디자인에 신경 쓴 식탁보와 그릇을 종류별로 구비했고, 메리골드를 직접 재배해 차로 제작해 웰컴티로 제공하는 등 무엇 하나 허투루 준비한 것이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힐링 시간 또한 놓치고 싶지 않아 이젤을 설치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다양한 즐길 거리로 숙소를 채웠다.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 편안한 마음을 되찾기 위해 종종 찾았고 재방문율이 높은 것은 물론, 장기 투숙을 원하는 이들도 많았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자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많아지기도 했다.

배 대표의 이런 감성적인 별장 운영은 서울에서 진행했던 ‘아늑한피크닉’ 덕분이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의 정기 도서 ‘트렌드코리아’에 피크닉 사업이 처음 언급됐던 것도 바로 그녀의 작품이었다. 그녀는 피크닉 사업을 기반으로 영주에서 별장을 운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쉬고 싶을 때 가서 쉴 수 있는 집’이 주는 힐링을 공유하고 싶은 그녀의 싱그러운 따뜻함이 두드러지는 부분이었다.

배 대표가 처음 영주에서 사업을 시작했을 때 내건 슬로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이었다. 그녀는 여행과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는 취미 부자로 1년에 서너 차례는 꼭 해외로 떠나고, 여의치 않을 때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고 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면 많은 것을 습득하고 담으려고 하는 직업병이 있다고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함께 여행하는 친구도 말릴 정도라고. 그런 그녀가 인적이 드물고 인터넷도 제대로 안 되는 일본의 시골 마을을 방문했을 때, 이른바 디지털 디톡스(일정 기간 전자기기의 사용을 멈추는 것)를 제대로 했다며 그때의 여행을 회상했다. 그녀는 이 여행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굳건하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다이닝 프로젝트' 활동
'다이닝 프로젝트' 활동
'다이닝 프로젝트' 회의
'다이닝 프로젝트' 회의

‘다이닝 프로젝트’가 걸어온 길

감성숙소의 1세대라 불리는 ‘영주네별장’은 1년 전 휴식기에 들어가 현재 체험농장으로 새롭게 오픈 예정이다. 배 대표는 끊임없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했고, 무엇인가를 예쁘게 만들어 콘텐츠로 승화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재 별장은 건물이 한 채밖에 없어 많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고 판단해 도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다 탁 트인 마당을 생각해 냈다. 이른바 ‘공유뜰’이라고 했다. 반려견과 함께 뛰어놀고, 피크닉을 즐길 수도 있으며 자연과 함께하는 모든 활동을 가능케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도시가 원하는 힐링이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자 배 대표는 품질 좋은 영주의 자원을 홍보하는 일로 눈길을 돌렸다. 그 연구의 산물인 비영리사업 ‘다이닝 프로젝트’는 경북형 청년 마을이라고 볼 수 있다. 배 대표는 “경북에 살아본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갑자기 정착을 결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 경북에 잠시 머무르며 관계 인구가 먼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배 대표와 함께 요리와 푸드 스타일링을 담당하고 있는 정선아 씨, F&B전문가인 이성용 씨,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를 겸해 일하고 있는 배일도 씨, 푸드 스타일링과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정지원 씨가 발 벗고 열심히 뛰고 있다.

이들은 모두 배 대표가 서울에서부터 함께 일해왔던 오래되고 끈끈한 직장 동료들로, 오로지 서로 간의 신뢰와 영주의 가능성만 보고서 내려왔다고 한다. 배 대표는 팀원들을 소개하며 “서울에서 하는 일을 포기하고 귀촌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믿고 따라와 줘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농가에서 힘들게 농사를 짓지만, 질 좋은 상품을 생산해도 판매를 어려워하는 부모님을 보고 브랜딩 마케팅의 필요성과 가치를 느낀 배 대표는 시야가 넓어지면서 소외된 지역에서 창업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어려움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땐 문어와 한우를 활용한 푸드 클래스를 열었고, 경주에 위치한 호텔 라한셀렉트에서 열린 청년의 날 기념식 행사에 참여해 이벤트 팝업 부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영주에서 ‘어반 버스킹 페스티벌’을 열어 젊음으로 가득 찬 행사를 시민들과 함께 즐겼고, ‘영주 할머니집’이라는 이름으로 선비세상에서 한옥 팝업스토어도 열었다.

영주에 악어가 나타나 한동안 이슈였던 것을 활용해 ‘악어트레일’이라는 이름으로 영주의 유휴부지, 트레일과 로컬 식재료를 접목해 참여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큰 결과는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메뉴 개발과 브랜드 컨설팅을 통해 로컬 식당인 ‘정글밥(영주로 184-18)’과 카페 ‘뷔네(대학로 142)’를 탄탄하게 만든 것이었다.

'악어트레일' 활동
'악어트레일' 활동

우리 고장에서 진정한 힐링과 성장 가능성 발견하다

이제 배 대표는 ‘다이닝 프로젝트’와 함께 올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푸드 스타일링 클래스를 진행하는 것은 물론 푸드 콘텐츠가 필요하고, 배우고, 만들고 싶은 사람들을 모두 모아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제공하는 커뮤니티 ‘로다프 멤버십’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학사골목 내에 위치한 청년창업센터 공간을 활용해 요식업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공유주방을 무료로 대여하고 간판의 역할을 할 플래카드를 제작해 주는 등 청년 예비 창업자들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저는 쉬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단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어딜 가든 새로운 것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일이 다반사였으니까요. 이제는 외부의 자극이 없는 곳에 저를 풀어놓으려고 많이 애씁니다. 요즘은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이 쉽게 쓰일 정도로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넘쳐요. 그렇기에 마음이 쉴 수 있는 콘텐츠를 저도 모르게 계속 만들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고여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증발한다고 해도 흔적을 남긴다. 모든 소도시에서 청년을 끌어들이며 인구 소멸 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흐르는 시간에 함께하지 않고 정체돼 멈춘 도시가 눈에 그려지기 때문 아닐까. 이제는 자원만큼 중요한 것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한 고찰인 듯하다. 신선한 콘텐츠가 무럭무럭 자라날 우리 고장의 푸른 물결들을 응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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