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이사를 했다. 20년 만이다. 짧지 않은 시간, 한곳에 정착해 살면서 어느 것 하나 정이 깃들지 않은 게 없었다. 집안 곳곳에 배어든 손때 묻은 정성은 살아온 날의 흔적으로, 시간을 읽고 쓰며 다짐한 기록이었다. 그 기록은 삶을 꿈꾸며 일군 한 가정의 서사이기도 했다. 크고 작은 사연이 더해질 때마다 존재의 이유는 분명했다.
이사를 하면서 챙겨야 할 것과 내다 버릴 것의 경계가 모호했다. 언젠가는 필요한 물건일 테지만, 지금 당장 사용하지 않기에 정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망설여졌다. 쌓이는 물건만큼 영역이 협소해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기에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살림살이가 비대해질 것 같았다. 삶이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움과 채움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어느 한 공간이 채워지는 만큼 다른 한쪽은 비워내야 균형된 삶을 이룰 터, 비움이 채움을 따르지 못하면 살림살이는 군살처럼 비대해지기 마련이다.
지금껏 간섭과 구속까지 삶의 부분이라 여기며 울타리를 만들었다. 나름 주변을 정리하며 살아왔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버릴 물건이 많았다. 집착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유일 테다. 버릴 결심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미 마음으로는 내 품을 떠날 물건임을 인정했기에 미련까지도 떼어낼 용기가 생겼다. 결국 불필요한 감정을 버림으로써 온전한 자유를 만나게 된 것이다. 버려야만 얻게 될 자유였다.
수년 전부터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리라 다짐했건만, 만족할 만큼 행하지 못했다.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미니멀 라이프, 늘 입버릇처럼 맹세했음에도 결과는 제자리였다. 적게 가짐으로써 삶의 중요한 부분에 더 집중할 기회를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채우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미련과 집착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쌓여가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달라지지 않는 현실 앞, 감정의 소모만 커질 뿐이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집착하는 순간, 관계는 틀어지기 마련이다. 애정과 구속을 구분 짓지 못하고 경계가 허물어지다 보면 균열은 생길 수밖에 없다. 물건에 집착하는 것도 사람에게 집착하는 것도 순간의 판단일 뿐, 지나고 나면 모두가 허상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어떤 상황에서도 소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내 사람으로 만들고자 지나칠 정도로 정성을 기울이는 것도 불필요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 개인은 그 존재만으로도 세상과의 화합이며 소통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존중받아 마땅하다.
언제부턴가 좋은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고자 건강한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사람에게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좋은 관계를 더 오래도록 유지하고픈 필자만의 처방이었다. 침해하거나 간섭받을 일 없이 적당히 자유로우며 적당히 간섭하는 관계, 딱 그만큼만 관계를 맺으면 사람으로 인해 상처 받을 일도, 상처 줄 일도 없을 테다.
우리는 간혹 관계의 밀착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틀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가장 잘 알 것 같지만 가장 모를 때가 바로 밀착이 부른 부작용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듯 인간관계에서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유는 밀착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져 판단마저 흐려지기 때문이다. 밀착했을 때 그 사람을 가장 잘 알 것 같지만, 사실 가장 어리석은 판단도 바로 그 순간에 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허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살아오면서 마음에 담아 둔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쌓아둔 게 얼마나 많았던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발설과 참음이 망설여지는 사이, 헛된 감정에 지배당하기를 여러 차례다. 불필요한 감정에서 벗어나 휘둘리지 않을 용기 앞에 우리는 얼마나 자유했던가. 선택과 포기의 경계에서 결정짓지 못하고 망설인 날이 또 얼마나 많았던가. 버리고 비우는 일에 연습이 필요한 건 내면의 공간을 넓힘으로 마음의 짐을 벗는 일이기도 하다. 진정 자유를 원한다면 감정의 비만부터 줄여나가자. 마음의 가벼움을 얻는 일, 버려야만 얻게 될 자유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