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한 명 한 명의 빛을 찾아주는 ‘작은 학교’ 온도는 36.5°

작지만 깊이 있는 교육, 모두가 서로를 아는 공동체 학교

‘책날개 입학식’부터 ‘어린이 시집’까지, 글로 피어나는 아이들

 

다문화 수용과 지역 연계 활동으로 확장되는 교육 공간

기계보다 마음, AI시대에도 지켜내는 아날로그 감성교육의 힘

아이들의 웃음이 교정을 깨우고, 책이 아이를 키우는 학교가 있다.

소백산 자락 아래 영주시 풍기읍에 자리한 풍기북부초등학교(교장 오영철)는 36명 남짓한 학생들이 다니는 ‘작은 학교’지만, 세상 그 어떤 곳보다 크고 단단한 배움의 기운이 흐르는 곳이다.

1963년에 문을 연 풍기북부초는 병설유치원(원생 5명)과 함께 2020년부터 자유학구제로 운영되고 있다. 학교는 소백산을 배경으로 공기 맑은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아이들이 꿈의 지도를 그리며 자라날 수 있도록 창의적인 교육과정을 실천하고, 소통을 통해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재미있어야 해요. 공부보다 먼저 웃고 즐기는 게 교육의 시작이죠”

2022년 부임해 4년째 교무를 맡고 있는 송명원 교사는 작은 학교 출신이다. 골짜기 시골 학교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스스로를 ‘글 쓰는 교사’라고 소개했다.

송 교사는 네 권의 동시집과 여러 편의 아동문학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글과 책을 매개로 아이들에게 세상을 읽게 하는 사람으로, 영주의 풍경을 담은 전통시장 이야기 <시장의 법칙>을 집필해 주목을 받았다. 특히 작년에는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내 별명은 윤배추>라는 어린이 시집을 펴낼 정도로 열정이 대단하다.

송명원 교사
'내 별명은 윤배추' 책을 들고 있는 아이들 모습
'내 별명은 윤배추' 책을 들고 있는 아이들 모습

# 작지만 단단한, 아이 한 명 한 명이 전교생

“작은 학교의 장점은 아이 한 명 한 명을 다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누가 웃었는지, 누가 오늘 조금 힘든지도 다 느껴집니다”

그는 20년 가까이 봉화와 영주 일대의 작은 학교에서 근무해 왔다. 아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도 ‘작은 학교 교육’에 대한 그의 확신은 단단했다.

경제 논리로 보면 작은 학교는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이곳에서 아이들이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경험과 실질적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도, 돈으로 살 수도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게 작은 학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예요”

그는 현재 풍기북부초에서 함께 근무하는 교사 9명과 교직원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에게 결코 작지 않은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2년부터는 소백산 생태탐방원과 MOU를 맺고, 매년 식목일마다 나무심기, 생태탐방, 환경 OX퀴즈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 오고 있다. 또 지역 문화시설과 연계한 체험 활동도 꾸준히 이어간다.

풍물단도 정식으로 운영하며 지역 예술·문화 행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올해는 선비문화축제와 인삼축제 등에 3학년부터 6학년 아이들이 무대에 서는 경험도 가졌다. 아이들의 생활은 마을과 함께 이어지고, 교육은 지역 안에서 자라고 있다.

나무심기 행사 후 
나무심기 행사 후 
가을운동회 모습
가을운동회 모습

# 책으로 시작하는 입학식, 시로 마무리하는 졸업식

풍기북부초의 입학식은 조금 색다르다. 이곳에서는 매년 ‘책날개 입학식’이 열린다. 작가 사인본 책을 선물하고, 교장 및 담임 교사가 책을 읽어주며, 작가가 보낸 영상을 함께 본다. 책 속에서 시작하는 첫 학교생활은 이제 이 학교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작은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고 즐길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합니다. 작은 행사 하나라도 아이들에게 추억이 되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입학식, 어린이날, 체육대회, 졸업식 등을 조금씩 다르게 꾸며요”

학부모와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지리적 여건상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적고, 타 지역으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가정도 있어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를 마련해 준다.

어린이날에는 학부모와 함께 소백산탐방원에서 환경 퀴즈를 풀고 점심도 뷔페로 나눴으며, 학교 행사에서는 학부모회의 도움으로 행사를 열기도 한다.

스승의 날에는 학생들이 직접 편지를 써 교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도 마련한다. 요즘 점점 잊혀가는 ‘감사의 소중함’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올해 농어촌청소년문예공모전에서는 초등부 대상, 우수상, 장려상 2명, 지도교사상까지 수상했다. 2022년부터 시울림학교를 운영하며 동시 쓰기를 지속한 결과, 풍기북부초 아이들이 빛을 본 셈이다.

8월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행사를 열어 아이들이 스스로에게 엽서를 쓰고, 크리스마스에 선물과 함께 받아보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아이들에게 ‘기다림’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잖아요. 디지털 시대를 오가다 보니 아날로그의 소중함을 놓치고 살 때가 많아요. 그래서 시작했어요. 감성교육의 하나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롯데월드 방문
부모님과 함께 롯데월드 방문
송명원 교사 동시집 작품들
송명원 교사 동시집 작품들

# 글과 책으로 키우는 아이들의 생각

풍기북부초는 ‘글쓰기’로 유명하다. 교사는 매주 전교생을 대상으로 ‘시 쓰기 시간’을 열고, 그 안에서 나온 작품을 모아 각종 대회에 출전한다. 해마다 서너 차례 ‘푸른 아동청소년문학회’ 작가들을 초청해 ‘인문학 놀이터’ 수업도 연다.

‘다섯 작가와 함께하는 인문학 놀이터’는 올해로 4회를 맞았다. 서울과 대구에서 활동 중인 동시 작가들이 방문해 1~6학년 수준에 맞는 독서 활동을 진행한다.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눈 뒤, 짧은 시를 쓰며 생각을 표현하는 활동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매년 자신들이 쓴 시를 모아 ‘어린이 시집’을 출간한다.

“시집 출판기념회는 마을 잔치가 됩니다. 작년에는 그 수익금 일부를 학교 발전기금으로 기부했죠. 아이들이 만든 책으로 학교를 돕는다는 게 참 의미 있잖아요. 잘 따라와 주고 있고, 그 마음들이 고맙고 예쁩니다”

송 교사는 “상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즐거움을 배운 것”이라며 ‘함께 만드는 학교, 함께 자라는 아이들’이 풍기북부초의 또 다른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풍기북부초는 올해 학교 운영의 주제를 ‘함께해요’로 정했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모두 교육의 주체라는 의미다. 학부모 독서동아리는 올해로 2년째를 맞았다.

“부모님이 책을 읽어야 아이도 책을 읽습니다. 핸드폰을 손에 든 부모 앞에서 아이에게 독서를 말할 수는 없어요”

학부모들은 학교 행사와 체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물놀이·바비큐 행사에서는 음식을 직접 준비하고, 체육대회에서는 심판과 응원단으로 나선다.

매년 11월에는 ‘아나바다 장터’도 열린다. 평소 학교에서 진행된 ‘인사 잘하기’, ‘친구 돕기’ 등의 실천 활동으로 모은 ‘칭찬돈’을 사용해 물건을 사고, 남은 물품은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한다.

“아이들이 기부의 기쁨을 배우죠. 작지만 실천 중심 교육의 일환이에요. 경제 관념도 익히고, 돈의 가치와 흐름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됩니다”

'아나바다 장터' 일부 모습
'아나바다 장터' 일부 모습

# 다문화와 함께 자라는 학교

풍기북부초 학생 중 30~40%는 다문화가정 자녀다. 하지만 이곳에서 다문화는 특별한 구분이 아니다. 오히려 다문화가 시골 학교를 살리고 있다.

“서로 다른 배경이 아이들에게 다양성을 가르쳐줍니다. 세계화가 일찍부터 이뤄지는 셈이죠. 작은 학교지만 넓은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식견이 생깁니다”

한국어가 서툰 학생들에게는 방과 후 개별 지도가 이뤄지고, 지역 가족센터와 연계한 언어·문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학교는 이러한 다양성을 ‘차이’가 아닌 ‘힘’으로 전환하고 있다.

모두가 다르지만, 모두가 ‘우리 반 친구’라는 사실. 이것이 풍기북부초의 가장 큰 자랑이다. AI(인공지능)보다 먼저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가정과 학교에서 ‘함께’ 나아가야 할 때라고, 풍기북부초는 강조한다.

‘기계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송 교사는 “AI교육과 디지털 수업이 강조되는 요즘, 아이들이 AI를 배우기 전에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배려’”라며 “AI는 도구일 뿐이며,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마음’은 교류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에는 태블릿과 VR 장비도 구비돼 있지만, 풍기북부초는 여전히 공책과 연필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책장을 넘기며 느끼는 질감,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진짜 ‘책임교육’이라는 사실을 이 학교는 잊지 않는다.

# 아이들의 웃음이 마을의 희망이 된다

“협곡열차 타볼까”라는 말 한마디에 바로 실천으로 옮긴 송 교사는, 지역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기차를 아이들과 함께 타보는 시간을 최근에 가졌다.

또한 지역 특산물과 옛날 뽑기 등 추억을 담아줄 수 있는 이벤트도 기획했다. 풍기북부초의 교정에는 오늘도 아이들의 글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고, 9월 한 달 동안에는 책을 읽은 후 도서실 한쪽에 학생들이 기부한 책 50권이 쌓였다.

YMCA 아동들을 위한 기부도 이어졌고, 우수 참가 학생들과 함께 현장 답사도 다녀왔다. 급식실에서는 조리사 선생님이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교사는 하교 버스에 오르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작고 따뜻한 시골 학교의 일상이 흐르고 있다.

“작은 학교는 가족 같아요. 아이들이 이곳에서 따뜻한 추억과 마음을 하나라도 품고 자라준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내년이면 다른 학교로 떠날 예정이라는 그는 “이 작은 학교의 ‘함께하는 문화’만큼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은 학교의 빛은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거예요. 그 빛이 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풍기북부초등학교 전경
풍기북부초등학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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