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고드름

                                -남연우

 

호수를 건너는 다리 난간에

위험한 시도가 매달렸다

뛰어내릴까

말까

 

밤새 고민한 흔적을 말해주듯

신발을 벗어 놓은

발부리 끝이 뾰족하다

 

방울 방울지는

투명한 펜촉으로 써 내려간

유서를

자필서명, 햇살이 받아적는다

 

쨍한 서릿발 눈빛

송곳으로 후빈 아픔

용서해달라

 

뛰어내린 그 자리에

마르지 않은 눈물이 떨어진다

 

혼탁한 생의 한복판

급소를 찌른

얼음칼,

고름이 튀었다

 

-서늘한 생존

‘수정 고드름 따다가 각시방 영창에 달아’놓을 정도로 여렸던 감성이, “뛰어내릴까/ 말까”하는 “위험한 시도”로 보일 만큼 많이도 변했어요. 시선도, 정서도요. 살아보겠다고 누려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견뎌온 세월에 치여 삭막한 마음이 돼 버린 걸까요? 처마 밑에 정겹게 달렸던 고드름이 다리 난간으로 옮긴 건 다 이유가 있겠지요.

“혼탁한 생의 한복판”에서 뛰어내리거나 녹아내리거나 사라지는 건 마찬가지지만, 핏물보다 아픈 투명이 아슬한 생존처럼 도도합니다. “급소를 찌”를 “얼음칼”은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어, “고름이 튀”는 상상만으로 비명에서 깨어납니다. 그전에 녹아 버리던가요.

날카로움과 유연함 사이, 흑암과 투명 사이에도 틈새를 메울 겨를과 질서는 있습니다. 이 시에 장착된 은유적 변신처럼, “햇살이 받아 적”은 내 이름 석 자를 위하여 한 번 더 견뎌냅니다. 한파 두서넛만 지나면 따스할 봄도 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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