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시인)

                  청혼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 줄게

내가 너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는 자화상입니다. 나를 돌아보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기도 하지요. 내 마음속에서 무심히 크고 있던 겁 없는 거인이기도 하고, 내 뒷모습에 걸쳐진 난쟁이의 슬픔이기도 합니다. “청혼”이란 제목 대신, 어떤 성찰적인 제목을 넣어도 어색하지 않을 시 한 편을 읽어 봅니다. 조금 더 저릿하고 조금 더 깨끗했던 젊은 날의 나를 만난 것처럼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는 일은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의 감동처럼 울컥합니다. 허무맹랑한 언약을 남발하는 시대에 과거에도 미래에도 아첨하지 않는 진솔하고 조심스러운 청혼이, 외롭고 높은 쓸쓸함 대신 들뜸 속 안락한 평화로 와 닿습니다. 그래서 더욱 우직하게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살다 보면 벌처럼 웅성거리는 험담도 있겠죠? 쓴잔을 마시는 실패의 순간도 만나겠죠? 그럴 때면 나를 자라게 했던 익숙하고 순한 골목으로 발길을 돌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어쩌면 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오래된 거리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다 보면, “투명 유리 조각처럼” 위태해도 삶의 명확한 방향은 생길 것도 같으니까요.

결혼의 계절입니다. 새날, 새 꽃들의 아름다운 시작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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