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산비탈 골짜기에 자리 잡고 산 지 15년째다. 동남쪽으로 비탈진 산전에 집을 지었으니 살면서 성가신 일이 많다.
집 주변이 경사가 급한 사면이다. 등나무 넝쿨이 뒤엉키고 잡풀이 우거지면 위태롭게 다니며 예취기질을 해야 한다. 비가 좀 많이 오는 날이면 산에서 토사가 무너질까 불안하다. 작년 여름에는 경사지 여러 곳이 허물어져 토사가 밭을 덮쳤다. 들깨밭 한쪽이 해변 백사장처럼 모래에 덮였고, 해마다 도롱뇽이 새끼를 치던 미나리 연못도 토사에 메워졌다. 집 좌우 산은 낙엽송 조림지다. 아침저녁으로 그늘을 드리우니 밭들은 볕이 부족하다.
생활은 또 어떤가. 태풍으로 나뭇가지라도 부러지면 전기와 전화가 끊긴다. 수도를 못 쓰고 우물을 파서 써야 하고, 눈이 내리면 200미터가 넘는 경사진 진입로를 모두 쓸어야 하니 눈이 내릴 것 같으면 차를 내려다 놓아야 안전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곳은 험지다.
본래 이곳은 산전이었다. 처음 여기를 보러 왔을 때, 봄볕 노곤한 풀밭에서 고라니가 쉬는 아늑한 골짜기였다. 적당히 넓기도 하고 동남향으로 집을 지으면 겨울에 아침 해가 집안 깊숙이 들어 따듯하리라 여겼다. 여름에는 오전에는 동편이 그늘지고 오후에는 서편이 그늘지니 밭일을 해도 늘 산그늘 시원한 곳에서 즐기듯 일할 수 있다.
봄이면 산벚나무 꽃 피고 진달래와 복사꽃이 붉고 나면 가침박달과 조팝나무 순백의 군락이 볼만하다. 마을에서 보면 골짜기 입구를 가리고 서 있는 오래된 아그배나무 너머로 얼핏 지붕만 보이는 신비로운 곳이기도 하다.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소나무를 심어 그늘 밭을 만들었는데 곰취와 곤달비를 심으니 최적지다. 집 가까운 곳에는 부지깽이나물, 참나물, 잔대, 참취 등을 심고 멀리 있는 밭에는 독활을 심었다. 볕 좋은 밭에 두메부추를 심으면 한 해 만에 열 배로 는다.
이것을 숲 가상에 심으면 약부추가 된다. 밭에 서 있는 상수리나무를 베어 표고를 심고 우거진 등나무는 한번 베어내고 옥수수를 심어 제어했다. 등나무가 세력이 약해져 올해는 독활을 심을 생각이다. 독활 그늘에서는 등나무도 맥을 못 춘다. 낙엽을 덮으면 보라색 땃두릅 싹 대가 탐스럽겠다.
집으로 오르는 산길에 벌개미취를 심었다. 장마철에 대궁이를 뽑아다 묻으면 가을에 꽃이 피고 이듬해 봄에 뿌리가 퍼져 빽빽하게 자란다. 초가을에 보라색 꽃이 한 달이나 곱게 핀다. 작년에 잡초 우거진 비탈에 벌개미취 대궁이를 심어 꽃을 보았는데 봄에 보니 달맞이꽃 개망초 사이에서 잘 퍼지고 있다.
올해 김매기 한번 해주면 벌개미취 군락이 될 것이다. 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개복숭아 나무를 가로수처럼 심었다. 봄마다 골짜기가 복사꽃 진한 물이 들 것이다.
험지에 터를 잡고 십 년 넘게 살다 보니 꾀가 늘었다. 평평한 밭에 독활을 심었으니 그 밭은 이제 갈지 않아도 된다. 봄에 싹을 수확하고 여름에 한 번 허리 자르기 해주면 끝이다. 거름이나 농약은 필요 없다. 해마다 되는 대로 비탈진 곳에도 독활을 심으면 풀치는 일이 줄 것이다. 우리 집 험지는 독활과 벌개미취가 전담하게 할 요량이다.
선거에서 당선되기 어려운 곳을 험지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영주는 아나 떡이다. 4.10 총선에서 여당은 지역구를 개편해가며 영주 봉화 영양 지역구에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제2차장을 단수 공천해 당선시켰다.
임종득은 작년 여름 수해 때 예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다 숨진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의 수사 과정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있는 인물이다. 채 상병 수사외압사건은 대통령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보호하기 위해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해 수사를 방해하고 박정훈 대령을 항명죄로 몰아 터무니없이 기소한 사건이다. 그로 인해 정작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는 시작도 못 하고 있다.
사냥을 마치고 개에게 살점을 베어 던져주듯이 영주가 입막음 살점이 된 것이다. 햇볕 따사로운 봄날, 무성하게 솟구치는 울화를 삭힐 수가 없다. 등나무처럼 뒤엉킨 뿌리 깊은 절망의 먹구름은 올여름 또 얼마나 많은 폭우를 뿌릴까.
험지에 터를 잡고 나물을 먹고 사는 나는 초록 똥을 싼다. 사욕에 눈이 멀어 나라의 미래를 짓밟고 생활을 도탄에 빠뜨린 범죄집단의 수괴와 그 개들은 피똥 싸게 될 거다. 영주를 사냥감처럼 베어 개에게 던져주고 받아먹은 자들이 어찌 누런 똥을 싸길 바라겠는가.
험지에 터를 잡고 비탈에 무성한 풀을 뽑는다. 봄볕은 험지에 골고루 따사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