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두고 온 소반

                                   -이홍섭

 

절간 외진 방에는 소반 하나가 전부였다

늙고 병든 자들의 얼굴이 다녀간 개다리소반 앞에서

나는 불을 끄고 반딧불처럼 앉아 있었다

 

뭘 가지고 왔냐고 묻지만

나는 단지 낡은 소반 하나를 거기 두고 왔을 뿐이다

 

-나는 소반을 두고 소반은 나를 두고

되다 만, 스님이었을까요? 되다 만, 보물이었을까요? 사람과 소반이 만나, 사람은 사람대로 소반은 소반대로 웅숭깊은 장면을 자아냅니다. 거기 늘 있는 존재인 듯 아닌 듯, 다 변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불을 끄고 반딧불처럼 앉아 있”는데도 마치 그것에만 조명을 비춘 듯 우주보다 넓고 환합니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살림의 필수품이었던 소반은, 밥 한 그릇 받아놓거나 책 한 권 올려놓고 사시사철 엎드려만 있습니다. 밥을 먹거나 책을 읽기 위해 정갈히 받쳐 든 소반을 내려놓을 때, 혹은 받아들 때마다 그렇게 공손해도 밥이나 책을 두고 딴짓하면 눈초리가 휘어졌지요. 기다림을 더한 오금이 찌릿찌릿 저릴 지경까지요.

“절간 외진 방”의 소반을 묘사한 짧은 시가, 자신을 모른 채 주저하고 있는 화자의 마음을 기막히게 건져 올립니다. 씹다가 만 환약처럼 쓰기도 하지만, 끝자락 헤아리지 못할 만큼 경이롭고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화자의 자아가 두고 온 “낡은 소반 하나” 대신 세상의 모든 색감을 챙겨 온 봄 덕분에 천지가 다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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