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생사를 건 선거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과 격동의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엄습해 오고 있다. 유례없는 대승을 거둔 야권은 윤석열 정권을 확실하게 심판하겠다고 우는 사자처럼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고, 참패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권에서는 비록 적은 의석수이지만 전열을 재정비해 거센 파도와 같은 야권의 공격에 대비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야권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그야말로 살판났고, 여권을 지지한 사람들은 온갖 죽상을 다 짓고 있다. 영주지역은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보니 여권의 깃발을 거꾸로 꽂아 놓아도 당선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여권 후보가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야권 후보는 비록 낙선했지만, 패배감보다는 오히려 승리감에 도취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체로 선거 후 입후보자들은 시민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뜻의 인사를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 낙선한 야권 후보의 “더 반듯하게, 더 세차게 계속 정진하겠습니다”라는 인사가 이를 방증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지만 정치는 생물이기에 향후 우리 사회의 정치판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비록 야권이 유례없는 승리를 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존재하고 있고 또 조국혁신당 대표는 4·10 총선에서 당선이 확정된 날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할 것으로 예상되는 판사가 결정되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야권이 개헌과 대통령 탄핵을 가능케 하는 200석을 확보했더라면 문제는 달라지겠지만, 만약 야권 대표들이 모두 실형을 받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의회 권력을 상실한 여권이든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야권이든 모두 살얼음판 위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기 때문에 향후 정치적 전망을 속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번 총선은 정치의 본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어떻게 하면 민심을 살 수 있는지 혹은 어떤 이슈를 부각시키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인지 등과 같은 정치공학(political manipulation) 테크닉이 판세를 좌우한 선거였다. 물론 정책적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것마저도 정치공학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래서 여야를 막론하고 이번 총선을 통해 정치인들은 정치의 본질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정치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가는 로빈슨 크루소에게는 정치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존재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무인도에 누구이든 타자(他者)가 등장하게 되면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고, 이 사회적 관계는 다양한 형태의 이해관계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
롤스(J. Rawls)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공동체 속에서는 이해관계의 일치와 대립이 있기 마련이고, 이러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조정하는 이른바 정치적 행위가 정당하게 이루어질 때 가장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공동체가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여기에 정치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시민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궁극적 이유는 다름아닌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소망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는 지금까지 한 번도 현실 속에서 실현된 적이 없었지만,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 즉 정치적 노력은 끊임없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오늘날의 정치 현실처럼 정치인들의 권력 싸움에 시민들이 이용당하는 경우는 없어야겠다. 정치인들은 정치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시민들은 진정으로 바라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바람직한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와 가치는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 원리와 가치가 바르게 작동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