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
악어 구두
-김동관
시계를 삼킨 악어, 구두로 태어났다
째깍째깍 뒷발 들고 먹잇감을 쫓지만
건물주 앞에만 서면 꼬리 끈이 풀린다
수개월 밀린 월세에 구겨진 명품 구두
밑창 터진 실밥이 가시처럼 돋아나
움켜쥔 발가락마다 온통 진흙투성이다
악어새는 날아가고 보증금 바닥나도
질긴 가죽 하나 믿고 버텨온 자존심
구두의 생명은 광택 침 튀겨 닦아본다
-다시, 광택
이 명품 구두의 처음은 어땠을까요? 늪지대에서 최고로 군림했던 악어가 난데없이 포획되어 인간 허영의 제물이 되기 전 말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왕 놀이에 빠져, 보이는 것은 뭐든지 삼켜 버렸던 황홀의 시간이었을까요? 그것이 역전되어 이제는 화자를 꼿꼿이 세워 줄 명품 구두로 재탄생되었고요. 그렇게 교만의 악취를 조금씩 벗으며, 땅과 맞닿은 발바닥 아래서 애면글면 숨이 찬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구두의 생명은 광택”이잖아요. “침 튀겨 닦”으며 화자는 다시, 다 낡은 구두를 생각합니다. 명품 구두와 함께 한 시간은 과연 고개 빳빳이 들 수 있었을까요? 실체가 정확히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화자의 품격은 악어였을 때도 악어 구두를 신었을 때도 아닐 겁니다.
공생이든 기생이든 화자가 푼 품격의 정답은, “악어새는 날아가고 보증금 바닥나도” 송곳 같은 반성을 외면하지 않고 다시 걷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도 명품 구두(이제는 다 낡은)는, 나를 감시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이 시조의 시적 기법은 역설적 꼬집기입니다. 시속에서, 말속에서, 침묵 속에서 역설적인 표현(역설법)을 쓰거나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지혜의 한 방편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