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 이 시대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그리며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영주 출신의 소설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51) 선생이 지난 17일 4년 만에 발표한 10번째 신작 장편소설 <가족>(도서출판 자음과 모음)은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족의 사랑과 운명을 그리고 있다.

가족의 주인공 광수는 자신의 아들로부터 “삼류, 양아치, 싸구려 인생”이라고 무시당하고 경멸받아가며 살면서도 자식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버지다.

▲ 영주출신의 소설가 김정현 선생
상처 입고 붕괴된 바로 그 자리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용서와 화해를 이끌어 낸 우리 시대 가족의 부활을 상징하는 거대한 울림! 가족은 처연한 아버지들의 뒷모습을 관통할 만큼, 섬뜩하도록 섬세한 감각을 선보였던 작가의 날선 시선이 종국에 머무른 곳은 역시 가족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해 주는 작품이다.

<가족>은 아버지들의 위상 침몰, 부모 자식 간의 소통 불능, 가족 구성원 간의 단절과 소외가 가족의 붕괴와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이 시대 가족의 현주소를 솔직 담백하게 묘사하고 있다.

무식하고 가진 것 없이 삼류 인생을 살아 내는 아버지 광수와 그런 아버지와 애증관계인 아들 준걸, 방황하는 아들과 목석같은 남편 곁을 묵묵히 지키는 어머니, 가장이라는 무거운 굴레를 짊어진 아들을 훨씬 더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아버지의 아버지.

▲ 영주출신의 소설가 김정현 선생
<가족>의 주인공 광수는 정상적인 학교교육도 받지 못했고, 재산도 전혀 없다. 창녀촌의 포주들 밑에서 자가용 불법영업, 사채업 등으로 생계를 잇고 있는 아버지 광수를 아들 준걸 또한 너무 싫어한다.

광수는 스스로는 비루한 인생을 살면서도 아들에게는 고급 운동화를 사주고, 미국유학을 보내주는 것이 자신만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성장한 준걸은 미국 유학 도중 마약이라는 악마의 유혹에 빠져든다.

<가족>은 울타리 안에서 생채기 나고 무너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하여 사연 많고 신산스런 우리네 삶의 이면과 어느새 동일화되고,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깊은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자아내게 된다.

이처럼 가족은 가족 구성원 간의 단절과 소외가 가족 해체와 붕괴로 치닫는 이 시대 가족의 위태로운 자화상을 성공적으로 구현해 내면서, 상처받은 가족을 치유할 수 있는 마지막 묘약 역시 가족뿐이라는 소중한 메시지를 강렬하게 내뿜고 있다.

“아들을 향한 애정 어린 말들이 그 애에게 쉰내 나는 잔소리가 되어 갈 즈음… 나는 그만 입을 닫아 버렸고, 아들은 마음을 닫아 버린 듯했습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이 가족을 위해 떳떳하지 못한 일로 돈을 버는 아버지, 약육강식의 생존 본능을 보이며 비루하게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아버지. 그런 그가 뜻하지 않게 조폭들의 이해관계에 연루되면서 위태위태했던 가족의 일상에 균열이 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의 위기와 부당한 압력보다 아버지를 더 견딜 수 없게 하는 건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잘 꾸려 나가고 있다고 믿었던 아들의 마약 복용 소식이었다. 늘 자신을 경멸하며 차갑게 대했던 아들이지만, 그래서 어느 날부터 그 자신도 그만 아들에게 입을 다물어 버렸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을 비롯한 가족을 생각하며 삶의 한 줄기 위안과 용기를 얻곤 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도무지 알지 못했던 아버지. 그런 그에게 아들의 마약 복용과 가족에게까지 손을 뻗치는 조폭들의 위협은 그의 숨통을 점점 조여 오기 시작한다.

“내가 원한 건 나이키 신발도 해외 유학도 아니었다고요. 정직하고 다정한 당신, 따뜻한 말 한마디와 눈빛이면 충분했을 겁니다…… 아버지!”

아들은 아버지를 ‘삼류, 양아치, 싸구려 인생’이라고 비난한다. 무식하고, 무뚝뚝하고, 간혹 자신과 엄마에게 내뱉는 말은 잔소리 아니면, 일방적인 통보다. 그것도 언성을 높이거나 때로는 욕지거리도 서슴지 않는다.

남도 아닌, 자기 자식에게. 그리고 가끔 자기 기분이 좋다거나 운이 좋아 한탕 했을 때는 가족의 형편 따위는 아랑곳없이, 저질러 버린다. 나이키 신발을 사 주거나 긴말 없이 해외 유학을 보내 준 것도 스스로 자기만족에 도취된 행위일 뿐이다.

어릴 적 자신이 동네 불량배들에게 당하고 있을 때, 그 애들이 자신이 모시는 삼류 양아치 형님의 아들이라고 그 앞에서 아들을 외면한 비정하고 비겁한 사람. 그게 바로 아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라는 사람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기 위해 지구 반대편 미국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역시 자신은 이방인에 불과하다고 느낀 아들은 공허하고 외로운 마음에 방황하고, 흔들리고, 그리고 마약에 손을 대기에 이른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늘 묵묵히 곁에 있어 준 당신, 당신의 이름은 가족입니다! ‘가족’은 과연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을까?

조폭과 연루된 아버지로 인해 가족의 지붕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지고, 아들의 마약 복용 사실이 조폭들에게 빌미로 제공되면서 가족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지만, 이들 뒤에는 은근하고 속 깊은 사랑으로 가족을 지탱해 가는 아내와 아버지의 아버지가 있었다.

가족의 위기를 맞아 하나씩 풀어헤쳐지는 가족들의 소망과 진짜 속마음,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케케묵은 상처들이 비로소 표면으로 드러나면서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직면하게 된다. 아버지이면서 남편, 동시에 아들이라는 역할을 완수해야 하는 가족들은, 그래서 때로는 버겁고, 무거운 피로감으로 엄습하기도 한다.

<가족>은 이러한 가족의 역동적이고 유기적인 특성을 예리하게 포착해, 어느 한 사람의 시점으로만 스토리를 이끌어 가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 모두의 입장에서 각자의 생각과 감정을 주시하고, 실타래처럼 꼬인 이들의 마음을 투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헝클어진 가족사를 통시하고, 가족들이 서로를 용서하고 마주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나는 책을 읽으면서 가족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단절된 가족의 물꼬를 트는 마법의 열쇠를 선물 받은 것 같다.

“내 아버지 김광수씨. 속물, 무식한 삼류, 건달, 깡패… 한마디로 싸구려 인생 그 자체입니다. 내게 있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쪽팔림으로 시작됩니다.”

“정말이지 그이가 내 아버지라는 사실이 미치도록 싫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라고 잔뜩 위엄을 잡고 훈계라도 하려드는 날에는, 차라리 코미디였습니다…… 비웃지 않은 게 다행이었죠…… 마침내는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숨통이 막혀 죽어 버릴 것 같은 고등학교 시절이 끝나고 저는 떠나는 길을 택했습니다…… 아무렇거나 저는 아버지라는 사람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질 수 있는 곳을 찾아 지구의 반대편 미국을 택했습니다.”

찻잔을 들었다가 맥없이 다시 내려놓은 광수가 소파에서 일어나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허정거리는 걸음걸이에 정순은 가슴 한구석이 못내 아팠다.
‘준걸이도 당신 미워하는 건 아닐 거예요. 아직 어렵고 그래서…….’
멈칫하던 광수가 다시 발걸음을 떼며 등 뒤로 씁쓸한 음성을 흘렸다.
‘난 괜찮아. 아무리 미워해도, 저만한 놈이 내 새끼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독수리, 기러기, 거기에 국내산 기러기 아빠, 엄마까지 있다더군요. 그래서 이처럼 우화의 주인공이 되는데도…… 후회는 없나요? 진정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경하는 법, 간절하게 사랑하는 법, 소중히 사랑받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미움은 스스로의 영혼을 상처 입힌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우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소설가 김정현은 전망의 부재와 과잉 속에서 부유하는 현대인들에게 희망과 재생의 코드로서 가족이라는 해법을 사실적인 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제시하고 있다.

김정현 선생은 1957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1991년 <함정>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1996년 <아버지>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들어섰다. 현재 중국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함정>(전3권) <전야> <무섬신화> <길 없는 사람들>(전3권) <외사랑> <아들아 아들아> <여자> <어머니>가 있으며 에세이<아버지의 편지> <중국 읽기>등이 있다. 

   
 
  ▲ 영주출신의 소설가 김정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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