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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도시의 삶에 상처받고 지쳐 있는 것은 아닐까? 도시는 욕망이다. 나는 그것을 무조건 버리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잠시라도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돌아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특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 서명숙(제주올레 이사장)소백산자락길은 2009년 문화관광부의 ‘문화생태탐방로’로 지정을 받고, 2011년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된 명품길이다. 소백산을 가운데에 두고 영주·단양·영월·봉화 등 세 도와 네 시군을 돌아간다. 없던 길을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예전의 길을 다시 찾아서 이어주었다.전체 143k
길 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1.07.3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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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오형제 문과급제 시킨 유연당 김대현, 영의정에 추증된 장현광최초 영주지 편찬한 이여빈, 예안현감 박선장, 영남유림 대표 곽진금광 입향조 장여화, 흥해군수 지낸 김선, 호란 때 태학 지킨 나이준소수서원 입원록 1권은 창건 이후 1543년에서부터 1672년까지 130년 동안 수학한 유생들의 이름을 적은 명부이다. 그런데 그 입원록이 소수서원에 없다. 병술(1886)년 도산서원에서 ‘서얼(庶孼) 변무 사건의 증빙자료로 쓴다’면서 빌려 간 뒤 반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최근(2021.7.11-13) 언론에 도산서원은 “입원록은 소수서원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1.07.2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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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오룡 극일·수일·명일·성일·복일 5형제 학문 연마백암 김륵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도 안집사, 안동부사 지냄성오당 이개립은 임진왜란 때 의병, 정유재란 때 향병대장만취당 김개국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충청도사, 옥천군수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1495~1554)은 1541년(중종36) 6월 풍기군수로 부임, 3일 만에 회헌의 고향 순흥을 찾았다. 신재는 그 길에 순흥읍터에서 북쪽으로 약 3리쯤에 있는 숙수사지(宿水寺址)에 들렀다. 신재는 이날 백운동에서 서원 설립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소수서원은 중종 38년(1543년)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1.07.0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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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공부란 성인을 배움이다. 성인을 배운다는 것은 성인과 같아지려 하는 것인데, 배움에 성인을 표준으로 하지 않고 그 말이나 모양에 그친다면 성현의 가르침을 배운 보람이 없다. - 정산 김동진의상로(義相路)는 상망동 ‘상망교차로’에서 부석면 ‘소천사거리’까지 가는 935번 도로이다.롯데시네마에서 시내 원도심 거리를 지나온 광복로가 ‘상망교차로’에서 봉화 통로인 파인토피아로와 갈라져 영광고등학교 앞을 지나 부석 쪽으로 간다. 그리고 진우(眞友), 감곡(甘谷), 상석(上石), 우곡(牛谷)을 지나 부석면 소재지인 소천리에 도달한다.의
길 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1.07.0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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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입원자 3인, 박승건(순흥)·신원록(의성)·김팔원(안동)민시원·민응기 부자, 퇴계 1549년 소백산 오를 때 수행장수희, 퇴계가 ‘최락당’ 써 준 첫 제자, 이산서원 설립 주역좌의정 지낸 ‘정탁’, 미래 예고한 ‘남사고’, 소수서원 원장 ‘안구’소수서원 입원록소수서원은 주세붕 풍기군수(1541.5-1546.3)에 의해 창건되고, 유경장 군수(1546-1548)에 의해 경상도관찰사 안현, 차사원 황준량 등과 결의하여 운영방침이 수립됐다.군수 이황 (1548-1549)은 짧은 재임 기간에도 소수서원의 사액을 이끌어내 우리나라 효시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1.07.0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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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지키는데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만이 자유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 - 더글러스 맥아더평은로는 예전 평은면을 지나 예고개까지 가던 국도5호선이었다. 하지만 예전 평은면 소재지였던 기프실을 지나던 평은로는 볼 수가 없다.영주댐 건설로 물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제 영주호 건너편에 새로 조성한 평은면 소재지에서 예고개까지 길을 평은로라고 새로 명명했고, 옛길 위쪽에 만든 운문교차로에서 강동교(江東橋)까지의 길을 금강로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국도5호선은 영주·안동간 자동차전용도로인 경북대로가 그 몫을 다하고 있다.내성천교와 경
길 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1.06.1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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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입원자 735명 중 사마입격자 301명, 문과급제자(등용자) 83명전국 각지 유생 모여 영천(영주) 171, 풍기 133, 안동 120, 서울 47명병술년 도산서원에서 ‘서얼사건증빙’에 쓴다며 빌려 간 뒤 안 갚아소수서원 입원록지난 5월 22일 소수서원 강학당에서 소수유림 연수회가 열려 동참했다. 이날 뜻밖에도 ‘소수서원 입원록’이 ‘소수서원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산서원에서 빌려 간 뒤 안 갚았다는 것이다. ‘입원록’이란 서원 유생들의 입원 기록이다.소수서원에 있어야 할 소수서원 입원록이 ‘소수서원에 없다?’고 하니 ‘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1.06.1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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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의 현상적 존재치고 어느 하나인들 있는 듯 사라지고, 오는 듯 가버림 아닌 것이 있으랴. 이래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이르거니 ‘길’이라 하여 어찌 그 이법(理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 송지향죽령(竹嶺)은 신라 아달라임금 5년(158년)에 죽죽(竹竹)이 개설하였다 하여 ‘죽령’이라 불리어 왔다. 하지만 1933년 국도5호선이 나고, 1942년 중앙선 철도가 개설되면서 이 길은 사라졌다. 아니 걷지 않는 길이 되었다.그 후 1999년에 영주시가 지역민의 염원으로 다시 길을 살려, 2007년 12월 17일에 ‘국가명승
길 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1.06.0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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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해저 출생, 소수서원 수학, 문수 연화산 남녘 잠들다아들 구 형제와 딸 둘을 두었는데 아들 셋이 문과급제가정의 달 오월에 가족사랑 시(詩)를 찾아봤다.가족을 지극히 사랑하는 주옥같은 한시를 후세에 남긴 류인무(柳仁茂, 1581-1659) 선생은 전주인(全州人)으로 호는 죽곡(竹谷)이요 자는 덕장(德章)이다. 선생은 문수면에 있는 종릉(鍾陵)의 주인이면서 영흥도호부사를 지낸 류빈(柳濱,1370-1448)의 7대손이다.그는 1581년 봉화읍 해저리 절골(寺洞)에서 출생하여 안동 경당(敬堂) 장흥효(張興肴)선생 문하에서 기초를 닦은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1.05.2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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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걸음을 가는 것, 새로운 말을 내뱉는 것,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 도스토예프스키소백로는 예천군 감천면 포리교차로에서 출발하여, 봉현·풍기·순흥·단산·부석을 지나, 봉화군 물야면 오록리로터리까지 가는 길이다.면소재지를 지나는 중심도로인 이 길은 소백산을 곁에 두고, 그 줄기 아래로 달리는 예쁜 길이다. 931번 도로인 이 길은 감천면에서 충효로(28번 도로)와 만나고, 물야면에서 문수로(915번 도로)와 만난다.경상북도 최북단(最北端)의 길소백로는 위도 상으로 경상북도의 가장 북쪽에 있는 길
길 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1.05.2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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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량은 풍기 사람이다. 1517년 현 풍기읍 서부3리에서 태어났다금계를 좋아했던 황준량은 정사(서당)를 지어 강학처로 삼으려 했다승려 행사가 1563년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역사를 완공하고 관리했다퇴계는 풍기군수 조완벽에게 부탁해 이 정사에 면역 혜택을 당부했다금양정사(錦陽精舍) 가는 길‘금양(錦陽)’이란 말만 들어도 아름다운 풍광이 떠오르고, 따사로운 바람이 이마를 스치는 듯하다. 영주에 살면서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선생의 사색 공간으로 알려진 금선정(錦仙亭)은 알면서도 경북도유형문화재 제388호로 지정된 금양정사는 잘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1.05.1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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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바꿔야 한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 - 이건희(2014년 1월 신년사)풍기로는 봉현사거리에서 읍내 중심 오거리까지이다. 남원천교를 지나, 십자로에서 기주로와 만나고, 오거리에서 동성로와 동양대로를 만난다. 성내리 중앙을 지나는 이 길은 풍기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살기 위해 시작한 베짜기풍기로와 이웃한 골목길에 들어서면 어느 골목에서나 들리는 소리가 철꺼덕철꺼덕하는 기계음들이었다.돌담 사이를 또 돌담 너머로 쉼 없이 나는 그 소리는 방직기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돌담을 지날 때면,
길 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1.05.1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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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봉-비로봉 주변 화전촌 사람들은 원시 그대로의 생활명성황후가 백여칸 큰집을 세웠다는 민백이재와 대궐터석륜암-초암사 계곡은 세상 밖 베풀어진 신비의 별유천지『송지향의 소백산탐승기』 1~3회가 연재되는 동안 선생의 지인과 후학들이 선생을 기리는 글을 보내왔다.그중 또 한 사람이 선생의 제자 김인순(풍기 금계) 향토사연구가다. 김 연구가는 『풍기초등학교 100년사』·『일제강점기의 영주』 등 10여 권의 향토사 관련 책을 펴냈고, 『신 풍기지』 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김 연구가는 “선생께서 소백산의 자태를 워낙 특유한 문장으로 표현하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1.04.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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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官)은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는데 여러 폐단 때문에 우리 백성이 살아갈 수 없으니 어떻게 관아라 할 수 있겠느냐”-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금계로는 동양대로와 중앙선이 만나는 삼거리에서 삼가로와 동양대로와 교차하는 사거리와 금선정 앞주차장을 지나 금계저수지(삼가지)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은 1920년대 신작로로 만들어졌는데, 1979년 금계지가 착공하기 전까지 삼가리로 가는 주통로였다.철길이 가른 마을금계로의 끝지점인 삼거리쯤에 풍기읍성의 북문이 있었다. 이 문은 순흥부로 가는 사람들이 주로 드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지
길 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1.04.2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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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곡 울리며 쾅쾅 떨어지는 희방폭포 소리 온몸에 소름폭포 옆 백인단애(백길 벼랑)를 등반(登攀)하여 희방사에 도달희방사 소장 훈민정음, 월인천강곡 판본·경판은 이 절의 보물유계일기(영주문화유산보존회, 2016) 서문(序文)을 쓴 금장태(琴章泰) 서울대 명예교수는 “1990년 가을 학생들을 인솔하여 경북지역 답사를 가는 길에 학생들에게 선생의 높은 인품과 식견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금계동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난 선생은 학생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물 흐르듯 설명하실 때 그 해박함과 자상함에 학생들은 깊은 인상을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1.04.1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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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 헬렌 켈러기주로의 기주(基州)는 고려 시대 풍기의 옛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길은 백리교차로에서 출발하여 풍기약초시장 앞에서 소백로와 만나는 풍기의 중심길이다.그리고 동성로는 동부리와 성내리를 지나는 길이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풍기청년회의소 앞 인삼로에서 출발하여 동양대로와 풍기로와 만나는 오거리를 지나 성심요양병원 앞에서 소백로와 만난다. 관문도시(關門都市) 풍기경상도는 죽령(竹嶺)과 조령(鳥嶺) 두 고개의 남쪽에 있으므로 영남(嶺南)이라
길 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1.04.0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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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정상 산신당에 안개자욱, 만학천봉 내려다보며 벤또 헤쳐 점심불그레한 금빛노을 보며 죽령에 도착, 여사(旅舍)에 행장 풀고 1박도솔정상-밀림지대-면양목장-죽령1박-신작로-수철리-차도-희방계곡지난호에 나간 ‘송지향의 소백산탐승기’를 읽고, 시인이며 안동문화원향토사연구위원·문화원부원장인 정광영 선생이 짧은 글을 보내왔다. “송지향 선생은 영주 출신이지만 안동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늘 한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고 자주색 가방을 들고 다니는 단정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안동에는 조선 중기에 발간한 『영가지』와 『선성지』가 있지만 당시의 생활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1.04.0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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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중요한 일을 할 때에는 그것이 현실이냐 비현실이냐를 따지기보다는 먼저 그 일이 바른 길이냐 어긋난 길이냐를 따져서 결정하라. - 김구희방사 가는 길은 풍기소방서에서 죽령로를 따라 풍기에서 죽령으로 향해 가다가 창락리를 지나, 희방삼거리에서 죽령로 1720번길로 접어들면 된다. 버스를 이용할 때는 풍기역 앞에서 희방사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서 희방삼거리에서 내리면 된다.우리들의 첫 여행지어릴 적 ‘희방사 가는 길’은 희방사역에서부터였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에 한 번 쯤은 희방사로 소풍을 갔다. 영주역에서 희방사행 기차를 탔다.
길 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1.04.0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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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6월 19일부터 22일까지 3박 4일 동안 소백산 탐승기“소백산은 천혜의 성산(聖山)인 동시에 장엄과 신비의 극치”풍기-전구-옥동-송림-별유천지-10리반석-도솔봉 정상 도착 송지향은?송지향(宋志香. 礪山人, 1918-2004, 호:幽溪)은 평북 박천 종달골 출신으로 1929년 12살 때 풍기로 옮겨 금계리에 정착했다. 1940년 조선일보 풍기지국을 운영할 때 ‘무슨 답사기’ ‘무슨 탐방기’ 등 다른 신문지국이 못하는 특종기사를 해서 송지향에 대한 인식이 차츰 달라지고 구독자도 늘어났다.23살 청년 송지향은 탐사대(9명)를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1.03.1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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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 헬렌 켈러중앙선 새 철로는 영주역과 풍기역 주변과 시가지는 그 자리이지만, 다른 곳은 많이 변경되었다.귀내에서 창진으로 휘청 꺾어져 일원, 안심 마을 앞을 지나 풍기로 향하던 철길은 창진동 마을 뒷산을 뚫고, 고바우마을로 나와, 안심과 오계의 중간쯤인 전지골을 지나, 옹암리와 산법리 앞을 지나 풍기역으로 간다.풍기역에서도 백리 입구에서 백신리 앞을 지나 희방사로 가던 철길이 창락에서 땅 속으로 들어간다. 산 아래를 지나던 길이 들판 한가운데로 지
길 따라 세월산책
김덕우
2021.03.12 1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