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더 정겨운 힐링의 길, 세계유산을 품은 소백산자락길

배점호 옆으로 새롭게 데크길을 만들고 개통을 기다리고 있다
배점호 옆으로 새롭게 데크길을 만들고 개통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이 도시의 삶에 상처받고 지쳐 있는 것은 아닐까? 도시는 욕망이다. 나는 그것을 무조건 버리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잠시라도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돌아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특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 서명숙(제주올레 이사장)

아직 자연을 간직한 계곡
아직 자연을 간직한 계곡

소백산자락길은 2009년 문화관광부의 ‘문화생태탐방로’로 지정을 받고, 2011년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된 명품길이다. 소백산을 가운데에 두고 영주·단양·영월·봉화 등 세 도와 네 시군을 돌아간다. 없던 길을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예전의 길을 다시 찾아서 이어주었다.

전체 143km를 소수서원에서 출발하여, 시계방향으로 돌며, 열두 자락으로 나누었다. 시계방향은 파란색, 반대 방향은 빨간색 화살표로 표시하였다. 소수서원에서 죽령으로 가는 방향인 파란색은 선비가 품은 ‘청운의 꿈’을 상징하고, 초암사에서 부석사 방향으로 가는 빨간색 표시는 ‘부처님 세계의 영화로움’을 의미한다.

죽계1곡 금당반석
죽계1곡 금당반석

소백산자락길의 만남

소백산자락길의 첫 자락은 이 길을 대표하는 구간이다. 왜냐하면 여기서부터 소백산자락길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길을 만난 것은 2001년, 퇴계탄신 500년이 되던 해였다. 그 해를 지나면서, 선생에 대한 어떤 일도 한 기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해 9월 30일 선생이 소백산을 오르고 쓴 ‘소백유산록(小白游山錄)’을 들고 선생의 자취를 쫓아 보기로 했다.

“나는 젊어서부터 영주․풍기를 다녔기에 소백산을 바라볼 수도 오를 수도 있었건만, 마음에만 두어온 지가 40년이다. -중략- 4월 신유일, 오랜 비가 개어 산빛이 멱 감은 듯했다. 이에 백운동에 가서 생도들을 보고 나서, 이튿날 드디어 산을 오를 새….”

죽계2곡 청운대
죽계2곡 청운대

선생은 풍기군수로 재직하며 소백산을 오른다. 초암사에서 하룻밤 그리고 석륜사에서 이틀 밤을 숙식하며 곳곳에 이름을 짓는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애정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청년 시절 삼촌의 소개로 공부를 하고, 장가를 들고 후손까지 얻게 한 곳이 아니었던가! 아니 순흥의 학풍을 이어가는 즐거움이 더 크지 않았을까? 그래서 소수서원 운영에 심혈을 기울이고 제자를 가르치고….

그리고 2001년 11월 4일, 2002년 2월 10일, 두 번을 더 걸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달밭골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해 가을, 고을나들이 행사를 이곳으로 정했다. 9월 8일이었다. 시민들의 반응은 “이런 곳도 있었나요!”였다. 그러던 중, 2009년 시청에서 연락이 왔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를 공모 한다고….

달밭골 폭포
달밭골 폭포

유학자들의 소박한 꿈, 죽계구곡

죽계는 영주문화의 중심이다. 낙동강 발원지 중 하나란 자랑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주자학의 성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옛 지식인들은 이곳을 중국의 무이산으로 여기고,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 따 국망봉 아래로 흘러내리는 죽계의 곳곳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기암(奇巖)을 씻어 쏟아져 내리면 폭포가 되고, 좌우의 암벽 사이로 숨바꼭질하듯이 모여서 작은 못을 이루며 흐르는 곳에서 천석(泉石)이 빼어난 아홉 곳을 골라 구곡(九曲)을 정하였다. 그래선지 이름도 다양하다.

여름에도 손이 시린 계곡물
여름에도 손이 시린 계곡물

이화동(梨花洞), 목욕담(沐浴潭), 용추(龍湫), 청운대(靑雲臺), 금당반석(金堂盤石)…. 이름과 풍광을 비교하며 구곡을 감상하다 보니 벌써 초암사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판길을 포장한 차도를 걸었는데, 이젠 옛길을 찾아서 물가 곁으로 길을 내며, 군데군데 데크까지 깔아 걷기에 참 편하다. 배점저수지 건너편에 만들고 있는 물가 데크길까지 완성이 되면 소수서원에서 여기까지도 걷는 맛이 날 것 같다.

뱀눈으로 세상보기
뱀눈으로 세상보기

의상대사는 이 길을 몇 번이나 걸었을까?

죽계교를 지나, 초암사 쪽 오르막을 오르다가 왼쪽을 보면 큰 바위가 보인다. 청운대(靑雲臺)라고 새겨져 있다. 죽계2곡이다. 주세붕이 이곳을 백운대(白雲臺)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황이 소수서원의 백운동과 구별을 확실히 하기 위해 청운대로 바꾸었다 한다.

초암사는 의상대사가 소백산 아래 첫발을 디딘 곳이다. 소수서원에서 소백산자락길 따라 10리쯤 가면 된다. 지금은 작은 절이지만, 우람한 바위로 쌓은 축대와 경내에 널려있는 주춧돌․석탑․부도를 보면 지난날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피톤치드 마시기
피톤치드 마시기

옥녀봉(玉女峯)과 원적봉(圓寂峯)이 감싸고 있는 법당 앞으로 죽계가 흐른다. 죽계를 따라 산속으로 100m쯤 가다 보면 죽계구곡 중 첫 번째인 제1곡을 만날 수 있다. 너럭바위 위로 물이 예쁘게 흘러 금당반석(金堂盤石)이라고 한다. 물길이 언덕을 만나면 폭포가 되고, 또 폭포는 소(沼)를 만든다. 물에 발을 담근다.

여름인데도 발이 시리다. 시린 발을 옮기다가 반석 위로 서성거리는 의상의 모습을 본다. 이 바위 위에 앉았다가, 물길 속으로 발을 담갔다가, 건너편 언덕 아래에 서서 허공에 글자를 새기고 있다. 그의 손끝으로 어떤 글을 썼을까?

화엄(華嚴)? 고구려, 백제 아니 신라? 의상이 이곳에 온 것은 왕명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이곳에 화엄종찰을 만들고, 그 절을 중심으로 백제와 고구려의 고토에 화엄십찰(華嚴十刹)을 세워, 모든 백성을 하나로 끌어안는다는 큰 뜻이었다고 한다. 결국 삼국의 격전지였던 소백산에 들어와 초막을 얽고 소백산 자락을 살피다가, 마침내 봉황산 기슭에 부석사를 짓게 된다.

달밭골을 지나는 자락꾼
달밭골을 지나는 자락꾼
산 속 작은 음악회
산 속 작은 음악회

소백산의 가슴 같은 달밭골

국망봉 쪽으로 몇 걸음 옮기다가 왼쪽 계곡으로 들어서면 달밭골이다. 소백산의 가슴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그 속살은 부드럽고 푸근하다. 이 골에서 시작한 물길은 항상 필요한 만큼 흘러 낙동강을 마르지 않게 한다. 달밭골의 ‘달’은 원래 산의 고어 “ ”에서 유래한다. 또 밭은 ‘바깥’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산의 바깥 골짜기’란 의미이다.

호랑이처럼 걷기
호랑이처럼 걷기

길을 개발하며 ○○대학교에 생태계 조사를 의뢰했었다. 그런데 연구원 중 하나가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교수님, 저는 상습적으로 코피를 흘리는데, 1주일 동안 코피가 안 났어요.” 부랴부랴 음이온 측정을 의뢰하였는데, 그 수치가 전국 최고의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에 오면 늘 활갯짓을 더 크게 한다. 더 많은 음이온을 받으려고.

달밭길을 걸으면서 나뭇잎 사이로 햇살을 본다. 피톤치드가 막 흐르는 것 같다. 그리고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함께 듣는다. 이 길은 이 맛이다. 그래서 여름이 더 좋다.

김덕우 작가

잣나무 숲에서 힐링
잣나무 숲에서 힐링
암반 위로 흐르는 물
암반 위로 흐르는 물
족욕
족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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