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납 폐기물 제련공장 허가 논란

폐납 제련공장
폐납 제련공장

시민 대책위, 반대 집회 열며 법정소송 준비 중
사업주 측, 해명자료 내고 ‘완벽한’ 시설 여론전

납은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든 매우 위험한 중금속 물질이다. 어린이 장난감 등 생활 환경에서 접하게 되는 저농도의 납성분도 인체에 영향을 준다는 게 밝혀져 더욱 더 엄격하게 납의 사용을 규제하고 납이 든 제품의 사용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납 폐기물 제련공장이 지역에 들어온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거부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납폐기물제련공장 건립 소식에 지역 내 26개 시민사회단체가 ‘영주납폐기물제련공장 반대대책위(이하 반대 대책위)’를 구성하고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유다.

촛불문화제
촛불문화제

납폐기물 제련공장의 규모와 현재 진행 상태

영주 적서동 일반공업지역에 신축 중인 납 폐기물 재활용 공장은 15만여㎡의 부지에 1.7㎥/h 규모의 용선로와 보관시설 1기, 방지시설 등을 갖추고 납이 함유된 폐기물을 녹여 하루 40톤의 연괴(납 덩어리)를 제조하는 공장이다. 사업주는 경남 함안에 주사업장을 두고 있는 자원재활용업체인 ‘(주)바이원’이라는 회사다.

이 회사 대표는 “함안공장에서 폐금속의 회수와 수집, 분류, 해체, 선별 등 자원화가 가능한 제품만 확정해 영주공장으로 가져와서 융융 등 제조과정을 거쳐 연괴(납덩어리)를 생산할 계획”이라며 “시설 투자규모는 110억원이고 연간 매출규모는 400억원을 내다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주민동의서
주민동의서

하지만 영주공장은 공장설립단계에서부터 순조롭지 않다. 현재 공장신축이 마무리 단계인 이 공장은 지난달 23일 영주시로부터 건축법 등의 관련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이 업체 대표와 시공사가 수사기관에 고발당한 데 이어 공사 중지 및 시정 명령을 받았다. 뒤늦게 진행 중이던 공장설립승인 신청서류 일체도 반려됐다. 시의 이같은 조치는 공작물(굴뚝) 설치신고 미이행 등 관련 규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건축공사 착공 전 공장설립 승인 신청 절차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업체 측은 “건축공사 착공 전 공장설립승인 신청이 빠진 것은 폐기물 처리 사업계획서를 통해 적정 통보를 받아 이를 공장 설립 승인으로 봤고 공작물 설치 신고 미이행은 신축 공장이 제조시설이 아니라 방재 시설이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했다”며 “허가관청에서 확실한 행정지도가 없어 부득이 이러한 사태가 일어난 것으로 향후 진행되는 인허가 과정은 법적 절차를 준수해 나겠다”고 해명했다.

시는 폐기물(납) 재활용에 따른 환경오염 우려와 관련, 사업자가 제출한 폐기물처리사업계획서 환경오염 방지시설 적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전문기관(업체) 2곳에 조사를 의뢰해 둔 상태다. 시 관계자는 “사업자가 폐기물 재활용 시설 설치 완료 후 폐기물 최종 재활용 허가 신청 시 관련 지침에 따라 현장실사를 실시해 환경기준 준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대 대책위와 사업주 측의 입장

납폐기물 제련공장에 대해 반대대책위 측은 “납은 우리 몸 조직에 축적되기만 할 뿐 빠져나가지 않는 해독 불가의 독성물질”이라며 “비록 적은 양에 노출된다고 하더라도 장기간 지속하면 반드시 중독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납 중독은 다양한 병증을 일으키는데 특히 신경계를 손상시켜 정신이상을 일으키고 아이들은 학습부진, 문제행동, 정신지체가 나타난다”며 “시민건강과 생명에 심각한 위해뿐만 아니라 낙동강 상류 수질 오염이 예상된다”고 주장하면서 지역농산물의 ‘납 농산물’ 전락을 우려하기도 한다.

특히 “시민 건강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주민 공청회도 없이 허가하고 동의한 영주시에 분노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사업주 측은 “반대대책위 측이 최근 연 제련 공장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기자회견도 자청하고 반박자료도 적극 배포하고 있다.

사업주 측인 바이원은 “연 제련의 전체공정은 폐금속 수거와 수집, 분류, 해체, 선별을 통해 선정된 제품을 뽑고, 이후 용융과정을 거쳐 연괴를 만드는 작업”이라며 “영주공장은 이 중에서 녹이는 공정만 수행할 예정이고 융용 전까지 앞의 공정은 모두 함안에서 진행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반대 대책위 측은 “처음엔 공장 규모가 작고 취급량도 적지만 매입한 공장 부지의 규모로 봐서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납의 유해성을 놓고도 양측이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반대대책위 측은 인체에 매우 유해한 1급 발암물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사업주 측은 “2급 물질이고 그중에서도 급이 낮은 B급”이라고 맞서고 있다.

사업주 측은 또 “고체상태로 창고에 보관해 토양이나 하천유입 가능성도 없으며 용융과정의 굴뚝으로 배출되는 것도 일반 연 제련의 배출시설보다 강화된 설비로 배출 가능성을 차단하도록 설계했다”며 “중력식 집진기, 열교환기, 원심력 집진기, 여과식 집진기, 세정식 집진기 등 6단계에 걸친 방지시설을 통해 오염물질을 철저히 통제·관리하면 납의 유출이나 확산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운송이나 제조공정이 모두 밀폐형 구조여서 비산 유출이 없고 폐수 또한 폐수처리시설이 없이 전량 전문처리업체에 위탁처리를 하기 때문에 내성천 오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책위 측은 “유해물질 배출이 없다는 주장은 대답할 가치가 없다”며 “인근 봉화의 석포제련소는 배출 허용기준의 62배를 상시적으로 초과했는데도 장부에는 이를 낮춰 기록하다 적발된 예가 언론보도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고 맞받았다.

납 유해성의 진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정확히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납의 유해성 유무이다. 이는 이번 논란의 핵심이다.

WHO(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IARC)는 발암물질을 4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있다. ‘그룹1’의 지정조건은, 문제의 물질이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분명하고 충분한 역학자료가 있는 경우다. ‘그룹2’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그룹2A’는 ‘제한된 인체 역학증거와 충분한 동물실험증거’가 있는 경우다. 납 화합물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룹2B’는 ‘제한된 인체역학증거와 동물실험증거의 충분 정도가 낮은 경우로 ’그룹2A‘보다 발암증거가 낮은 경우들이다. 납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룹3’은 발암물질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물질, ‘그룹4’는 발암물질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물질을 일컫는다.

‘그룹2B’로 분류된 납은 발암가능성의 과학적 증거가 ‘그룹2A’에 비해 낮다는 말이지 발암 물질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룹을 나누는 기준은 얼마나 지독한 물질인가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이 발암물질이라고 볼 근거가 얼마나 확실한 것인가를 보는 것이다. 즉 ‘1급 발암물질’이라는 표현 때문에 ‘2급 발암물질’이 덜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1급 발암물질이 2급에 비해 더 확실한 증거가 있다는 차이일 뿐이기 때문에 납이 발암물질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다른 취급 물질인 코크스는 ‘그룹1’에 분류돼 있는 발암물질이다. 코크스는 석탄 덩어리에서 기체 성분이 빠져나가므로 작은 구멍이 많은 다공성 덩어리로, 석탄이 탈 때 녹은 성분들이 서로 엉켜 뭉쳐진 덩어리로 단단하고 회색을 띠는 검은색 고체다. 단단하여 불붙는 온도가 높아 태우기 어려우므로 가정용 연료로는 부적합하고, 주로 철광석을 제련하여 철을 얻을 때 철광석을 녹이기 위해 사용된다.

대책위는 이 공장에서 처리하는 원료와 연료인 납과 코크스(석유계열의 석탄) 모두 1급 발암물질이라고 주장한다. 용융과정에서도 황산 및 질산 계열 가스, 일산화탄소 등 매연이 발생해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낙동강 상류 수질도 오염시킨다는 것이다.

반면 사업주 측은 “국제 암연구소에서 발표한 원문에는 ‘COKES PRODUCTION’으로 표기해 ‘코크스생산공정’이라고 정확히 명시돼 있다”며 “PRODUCTION은 빼고 COKES만 강조해 코크스가 1급 발암물질이라고 둔갑시킨 것이다. 정확히 다시 말하자면 코크스 자체는 발암물질이 아니고 코크스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가스가 발암물질인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코크스에 대해서도 ‘석유코크스’가 아니라 석탄 코크스를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양측 모두 납과 코크스에 대해 주장의 정도가 차이가 있지만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또 다른 논란 ‘주민 기만’

사업계획서 최종 승인시 부여조건으로 받아야 하는 주민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주민 기만행위가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공장부지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공장 관계자도 아닌 사람이 개별로 주민들을 방문해 배터리 해체공장을 설립하는데 주민 생활에는 불편이 전혀 없다”며 “공장허가에 따른 동의를 부탁했고 동의서를 받아갔다”고 말했다. 이들 주민들은 또 “납 폐기물 제련 공장이었다면 절대 동의해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동의서는 공장 설립 예정 부지 인근 주민 17명이 서명했지만 지난달 이를 다시 철회했다. 이후 주민들은 매주 주말 반대집회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본지가 입수한 이 동의서엔 ‘배터리 소재부품인 연제련 관련 사업’이라고 적어놓고 주민들의 동의를 구했다. 지역 내에서 SK머티리얼즈 배터리 소재부품공장 상주 투자 논란이 크게 일어난 뒤여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다 명백히 ‘납 폐기물 제련 공장’임에도 ‘배터리 소재부품’이라고 문구를 적어놓아 주민들을 기만한 것이다.

한 변호사는 “주민들을 속여 동의서를 구했다면 업주의 공무집행방해죄 성립을 검토해 볼 여지가 있고 주민들에게 거짓말한 행위와 땅을 산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면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 허가부서가 사업자에게 발송한 폐기물처리(최종재활용)업 사업계획서 적정통보시 적합통보 부여조건에 ‘동 사업시행으로 발생 될 수 있는 주민생활 불편 또는 피해 등의 민원 및 환경오염 등이 발생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민원 등이 발생하면 사업자의 책임으로 해결해야 한다’라고 적시했지만 주민동의가 허위일 가능성이 커지면서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8대 시의회는 “위 조건을 이행하지 않거나 폐기물관리법 및 환경관계 법규를 위반할 경우 사업계획서 적합 통보를 취소할 수 있는 만큼 영주시는 민원 해결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향후 전망

반대 대책위는 대시민 반대 서명운동도 함께 매주 주말 저녁 촛불문화제ㄹ를열고 반대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페이스북 등 SNS반대 여론전에도 동참하고 있다.

허가 관청인 시는 공장설립 승인, 폐기물 최종 재활용 허가, 건축물 사용승인, 공장등록 등 행정절차가 남아 있는 만큼 시민들과 환경단체에서 우려하고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 환경기준 등 관련 법령을 면밀히 검토해 진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행정당국의 허가나 허가취소 시 모두 법적 대응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대책위 측은 “행정 절차상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100억원 짜리 공장에 대한 허가를 취소할만한 ‘법익이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예상돼 허가 취소는 사실상 쉽지 않다”며 “이 방면에 유능한 전문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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