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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영주는 소백산대관록(小白山大觀錄)에 실린 덴동어미 화전가(花煎歌)의 고장으로 수많은 가사문학이 성행했던 선비의 고장이다.덴동어미 화전가는 그 문학성을 인정받아 대학수능평가에도 여러 번 출제됐다. 이는 우리나라 내방가사 중 서술적 특성과 화전가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영주문화유산보존회(회장 김치묵)는 올해 2월 집집마다 전해오는 내방가사들을 모아 ‘영주의 내방가사’ 란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이 기사가 영주시민신문에 보도(2019.2.27자)되자 이 책을 구해보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영주시민신문사로, 느티나무출판사로
선비의 삶과 흔적
영주시민신문
2019.04.2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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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과 안향 선생 조선선비의 큰 스승 칭호국내최초 주자학 연구사회질서 바로 잡을 사상인재 키우고 성리학 체계화▲세계는 유교에 주목하고 있다지난해 독일인 햄메어트 교수가 쓴 ‘타이거 매니지먼트(Tiger Management)’란 경영서적이 발간됐다. 세계적인 불황속에서도 선전하고 있는 한국기업들의 빠른 의사결정과 유연한 대처능력,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호랑이에 비유한 말이라고 한다. 책의 저자는 한국식 경영의 강점에는 전통적인 유교의 덕목을 중시하는 문화와 높은 교육열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지난 3월에는 중국 최고의
선비의 삶과 흔적
영주시민신문
2018.05.0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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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영주 의원서 공부, 21살 영주로 장가들어풍기군수 때 소수서원 사액은 퇴계의 큰 업적▲퇴계와 영주의 인연영주사람들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은 도산 사람이지만 주요 활동무대는 영주였다”고 말한다. 퇴계와 영주의 인연은 청년 때 영주 의원에서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영주 초곡(사일)으로 장가들고 풍기군수로 부임하고, 소수서원을 사액서원으로 만들고 이산서원 건립에 직접 참여하는 등 곳곳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영주 제민루에서 공부퇴계가 공부를 시작한 것은 6세 때 이웃 노인에게 천자문을 배우고,
선비의 삶과 흔적
영주시민신문
2018.05.0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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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진폐소(丹陽陳弊疏)’는 금계 황준량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군민의 실정을 보고한 상소이다. 단양은 본래 원주의 속현인데 적을 잘 막아서 군으로 승격됐으나, 40호 밖에 되지 않으므로 부역과 세금을 경감해줄 것을 청한 내용이다. 임금에게 올린 글로서 임금과 조정의 고위 공직자들을 감동시켰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금계 선생의 애민정신이 잘 드러난 상소문으로 손꼽힌다. 당시 피폐했던 단양지역에 살던 주민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본지는 지면 관계상 일부를 생략하고 게재한다. “도토리를 주워 모아야 연명할 수
선비의 삶과 흔적
영주시민신문
2017.06.1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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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 진개도▲간재 침수진목전도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1541-1596)은 영주가 낳은 인물 가운데 상당히 특이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그것은 바로 퇴계 선생의 학문뿐만 아니라 그의 인품이나 생활까지도 비교적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계산기선록(溪山記善錄)이라는 중요한 자료를 저술한 것이고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에 행재소(行在所)에서 올린 상소문인 상행재소(上行在疏)에서 진계도(陣械圖)와 침수진목전도(沈水眞木箭圖), 귀갑선도(龜甲船圖) 등을 제작해 사용할 것을 진언한 것이다.특히 귀갑선도의 제작방
선비의 삶과 흔적
영주시민신문
2016.05.1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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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간이 명 황제로 부터 하사 받았다는 99칸의 집의 일부, 그리고 이석간의 과거 시험지▲ 천도복숭아씨로 만든 술잔▲ 이석간의 묘명 황제 모후 병 고치고 99칸 집 하사 받아천하명의로 팔도에 이름 떨친 영주인지금부터 500년 전 영천군(영주시) 뒷새라는 마을에 이석간이란 의원이 살고 있었다.그는 학식이 높고 성품이 어진 선비로 널리 인술을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난치병도 그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척척 고쳐 천하명의란 명성을 얻었다.하루는 젊고 아름다운 부인이 찾아왔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라고 묻자 부인은
선비의 삶과 흔적
이원식 기자
2016.05.1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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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제▲삼판서고택▲몽유도원도찬시▲교지▲종택▲ ‘조선의 하늘은 조선에 있다’우리나라 역사상 세종시대 만큼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시대가 있었을까? 세종대왕은 지극한 애민정신과 민본사상에 기초하여 한글을 창제, 반포 하는 등 우리 민족의 르네상스시대를 이루어 놓았다. 특히 한글뿐만 아니라 자주적인 천문학(天文學)도 이때 개척되었다.이 시대 김담(金淡, 1416〜1464)은‘조선의 하늘은 조선에 있다.’는 신념으로 자주적인 조선 천문학을 이끌었다. 그는 600년 전에 이 땅에와서 어린 나이에 출사, 집현전(集
선비의 삶과 흔적
영주시민신문
2016.05.1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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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년 이어온 영주 선비들의 모임 부용계(芙蓉契)영주 부용계(芙蓉契)는 일명 ‘사마계(司馬契)’라고도 하는데 500여년 전 영주 사마소(司馬所)의 사마회(司馬會)에서 연원을 알아볼 수 있다. 영주 사마소(司馬所)는 영주지역 사마시(司馬試 생원, 진사시) 출신의 젊은 학자들이 상호간의 친목과 학문·정치 토론 및 교육활동 등으로 향촌의 교화와 지방행정의 발전을 위해 설립되었다.사마소는 연산군 무렵에 지방 원로들로 구성되었던 지방 자치 기구인 향소(鄕所), 혹은 유향소(留鄕所)에 맞서 조직된 사설 기관으로 그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선비의 삶과 흔적
영주시민신문
2016.05.1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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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비의 혼을 심다안향(安珦 1243-1306) : 본관 순흥. 고려 고종~충렬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초명은 유(裕), 시호는 문성공, 소수서원 제향 인물이다.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를 왕래하며 최초로 성리학(주자학)을 도입하여 실천적 유학을 전파한 우리나라 성리학과 선비정신의 시조이다.그의 사상은 제자인 육군자(권보·우탁·이진·이조년·백이정·신천)를 거쳐 이색·정몽주·이황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도학의 학맥을 형성시켰다.그는 고려 후기 무신집권에 의한 정치적 불안정, 불교의 부패와 무속의 성행, 몽고의 침탈
선비의 삶과 흔적
영주시민신문
2016.05.16 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