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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선비신문]우리고장 전설-유(儒)의 도(道)로 인(仁)의 술(術)을 펴다천하 명의 이석간 이야기
  • 이원식 기자
  • 승인 2016.05.16 13:06
  • 호수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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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이석간이 명 황제로 부터 하사 받았다는 99칸의 집의 일부, 그리고 이석간의 과거 시험지
▲ 천도복숭아씨로 만든 술잔
▲ 이석간의 묘

명 황제 모후 병 고치고 99칸 집 하사 받아
천하명의로 팔도에 이름 떨친 영주인

지금부터 500년 전 영천군(영주시) 뒷새라는 마을에 이석간이란 의원이 살고 있었다.
그는 학식이 높고 성품이 어진 선비로 널리 인술을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난치병도 그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척척 고쳐 천하명의란 명성을 얻었다.

하루는 젊고 아름다운 부인이 찾아왔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라고 묻자 부인은 “저는 결혼한 지 일 년이 되었는데 남편의 몸이 날이 갈수록 작아지더니 지금은 이와 같습니다”라고 하면서 품속에서 작은 인형 하나를 꺼내 놓았다. 새까만 눈동자가 반짝이고 수염이 난 것으로 봐 어른임에 틀림없었다.

석간은 너무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내가 한 달 동안 치료법을 연구해 보겠으니 가서 기다리시오”라고 했다.
부인은 “꼭 고쳐주십시오.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인형 같은 남편을 다시 품속에 집어넣고 일어섰다.

이석간은 눈앞이 깜깜했다. 의서란 의서는 다 찾아봐도 이런 병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나가고 그 부인이 또 찾아왔다. 더 작아진 남편을 품 안에서 꺼내 놓았다. 석간은 울상이 되었고 한 달만 더 여유를 달라고 했다.
실의에 빠진 석간은 몸져눕게 되자 의원을 그만두고 도망칠 생각을 하게 됐다.

석간은 의관을 차려입고 집을 떠나 소백산 죽령 고개로 망연히 걸어갔다. 그 때 “영차! 영차!”하면서 이상한 사람이 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등이 붙은 두 사람이었다.

“여보시오 선비, 혹시 조선의 명의 이석간을 아십니까?”
“알지요. 그런데 이석간은 병자를 고치지 못해 도망치고 없는 줄 아옵니다만 ……”
“어허! 그럼 명의란 헛소문이었군요. 먼 길 허행할 뻔했군. 우리는 집으로 돌아갑시다” 라며 발길을 돌렸다.
이 때 석간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석간은 그들을 따라가 다급하게 물었다.

“여보시오, 이석간이 못 고친다는 병은 어른이 아이가 되는 병인데 의서에도 없고 보도 듣도 못했던 병이랍니다. 좋은 방도가 없겠습니까?” 그들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어릴 때 젖배를 주린 것이 원인이 되어 나타난 병이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하고 물으니 “첫아이 낳은 1천집 모유를 서 말 세 홉 모아 세 번 목욕시키면 낫습니다.”라고 했다.
이석간은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와 등 붙은 사람이 가르쳐 주는 대로 했더니 그는 정상인으로 돌아와 남편구실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 젊은 부부는 석간을 아버지라 부르며 한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석간의 명성은 멀리 중국에 까지도 퍼졌다. 하루는 중국 사신이 우리나라 조정에 와서 영주 땅에 살고 있는 조선의 명의 이석간을 중국에 보내 달라며 황제의 친서를 내놓았다.
임금님은 이석간을 중국으로 보내라는 어명을 내렸고 석간은 사신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중국 황제 앞에 서게 되었다.

“그대는 못 고치는 병이 없다고 들었소. 황태후가 병이 깊어 중국에 있는 명의란 명의의 약을 다 써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소. 그래서 그대를 불렀으니 꼭 고쳐주기 바라오”라고 했다.
이석간은 황제를 따라 금은보석으로 장식한 방을 지나 황태후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희끗한 모후가 누워 있었는데 얼굴은 떠오르는 달 같고 손은 백옥 같아 아무 병도 없는 것 같았다. 맥박도 정상이었다.

“폐하, 황태후는 아무런 병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니 황제는 황후의 이불을 걷어붙이며 “이것을 보시오”라고 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모후의 하반신이 뱀같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석간은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황제는 “고칠 수 있겠는가?”라고 다그치니 석간은 ‘못고친다 하면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예, 한 달 간의 여유를 주시면 치료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석간은 며칠 간 식음을 전폐하고 연구와 고민을 거듭하다가 문득 죽령 고개에서 만난 등붙은 사람이 생각났다.

석간은 천지신명께 ‘등붙은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더니 한 달이 다 되어가는 날 꿈에 등붙은 사람이 나타나 “나는 소백산 산신령이다. 지난번에는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었는데 이번엔 또 무슨 도움이 필요한가?”

“예, 소백산 신령님. 황태후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처방을 내려 주십시오”
“황후는 오랜 황실생활을 하다 보니 기가 막혀 하반신이 뱀과 같이 변하고 있으니 금침을 배꼽에 꽂아 두면 기가 살아나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석간이 잠에서 깨어보니 금침이 손에 쥐여져 있었다.

석간은 그길로 황제를 알현하고는 당장 모후 치료에 들어갔다. 한 달 꼬박을 시술한 결과 정상 몸으로 회복되었다.
황제는 매우 기뻐하며 석간을 불러 놓고 말하기를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자 석간은 “저는 아무 소원이 없습니다. 다만 집이 없어 곤란을 겪으니 작은 집이나 한 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석간은 6개월 간 중국의 명산대천을 구경하고 전의(典醫)란 벼슬을 받아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 시 황제가 송별연을 베풀어 많은 금은보화와 비단을 하사하였으며, 황제가 드시던 술과 천도복숭아 등 진귀한 음식까지 맛보게 했다. 석간은 난생 처음 먹어 본 천도복숭아가 얼마나 달고 맛이 좋은지 기념으로 그 씨를 도포자락에 넣어 갖고 왔는데, 이 씨앗을 다듬어 술잔을 만드니 후손들이 혼례 때 의례용 잔으로 사용하고 있다.

석간이 영주 집에 오니 자기가 살던 집은 간곳이 없고 그 자리에 99칸 큰 기와집이 있었다. 명나라 황제가 지어 준 집이었다.

이석간(李碩幹, 1509-1574)은 공주이씨 영주 입향조 이진(李畛)의 증손자로 1534년(중종29년) 진사시에 2등 제4인으로 입격하였으며 천하명의로 팔도에 이름을 떨쳤다.

오늘도 영광중학교 서편 뒤 당시 99칸이나 되던 웅장한 그 모습은 찾아 볼 길이 아득하나 인술로 일생을 바친 천하명의 이석간이 살던 유서 깊은 그 집 앞에서 우리는 옳은 일을 위해 정진하는 사람은 그 빛을 잃지 않는다는 신념을 배울 수 있다.
 

이원식 기자  lwss0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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