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계 황준량의 단양의 폐단을 진달하는 소〔丹陽陳弊疏〕

‘단양진폐소(丹陽陳弊疏)’는 금계 황준량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군민의 실정을 보고한 상소이다. 단양은 본래 원주의 속현인데 적을 잘 막아서 군으로 승격됐으나, 40호 밖에 되지 않으므로 부역과 세금을 경감해줄 것을 청한 내용이다. 
임금에게 올린 글로서 임금과 조정의 고위 공직자들을 감동시켰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금계 선생의 애민정신이 잘 드러난 상소문으로 손꼽힌다. 당시 피폐했던 단양지역에 살던 주민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본지는 지면 관계상 일부를 생략하고 게재한다. 
<편집자 주>

“도토리를 주워 모아야 연명할 수가 있습니다”

<전략>
신이 삼가 살피건대, 단양이라는 고을은 본래 원주(原州)의 조그마한 고을 가운데 하나였는데 적을 섬멸한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지금의 칭호로 올려준 것입니다.
삼면이 산으로 막혀 있고 한쪽은 큰 강이 흐르고 있는데 우거진 잡초와 험한 바위 사이에 있는 마을 집들은 모두 나무껍질로 기와를 대신하고 띠풀을 엮어 벽을 만들었으며 토지는 본래 척박해서 수재와 한재가 제일 먼저 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 일정한 생산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풍년이 들어도 반쯤은 콩을 먹어야 하는 실정이고 흉년이 들면 도토리를 주워 모아야 연명할 수가 있습니다.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이른바 “땅이 척박하고 물이 차가워서 오곡이 풍요롭지 못하다.”라고 한 것은 이곳의 풍토가 본래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극도로 피폐해져서 살아갈 길이 날로 옹색해지는 데다가 부역에 나아갈 수 있는 민호(民戶)가 40호도 되지 않고 산과 들의 경지 면적이 3백 결(結)에도 차지 않으며 창고의 곡식 4천 석 중에는 가라지나 피가 섞여 있는데 그것도 미납된 세금이 반이지만 받아 낼 길이 없습니다. 이름은 비록 군이지만 반이 중간 정도의 살림살이에 미치지 못하니 참으로 가련합니다. 

이와 같은데도 부역의 재촉은 큰 고을보다도 중하고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다른 고을 백성보다 몇 곱절이나 되어 한 집이 1백 호의 부역을 부담하고 한 장정이 1백 사람의 임무를 감당하게 되어 힘껏 밭갈고 재빨리 농사지어도 제 몸을 꾸려나갈 희망조차 없고, 돈을 빌리고 밭을 세내어도 세금과 부역도 감당하지 못하니, 기름 끓는 듯 애를 태우며 목마른 붕어가 모인 듯하여 대궐에 호소할 길이 없어서 애달프게 하늘에 하소연하니 이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이처럼 고통스럽게 합니까? 가난한 자는 이미 곤궁해지고 곤궁한 자는 이미 병들어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땅은 벌써 텅 비었습니다.

<생략>
옛사람들이 백성을 휴양시키고 생식(生息)시키는 데는 반드시 10년의 오랜 세월을 기한으로 하여 왔습니다. 월(越)나라 구천(句踐)이 인구를 늘린 것이나 제갈량(諸葛亮)이 백성들을 규합한 것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10년 만 부역을 면해 주면 1백 년을 보장할 수 있지만 3~5년에 그치면 구제하자마자 도로 폐지되어 원대한 계획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또 이 군의 40호로 수만 호나 되는 이웃 고을에 비교하면 수만 인이 10년 동안의 부역은 바로 40인이 하루에 할 부역입니다. 

지금 비록 10년 동안 안일하게 지낸 적이 있지만 부역은 이미 백 년의 고통을 겪었으니, 다시 10년을 면제해 주어도 이미 부족합니다. 백성들이 이미 수고하였으니 조금 쉬게 하면 어찌 홀로 애쓰고 수고한다는 원망이 있겠습니까. 이는 만물을 다스려 치우침이 없이 고르게 하는 조물주가 염두에 두고 혁신해야 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 땅에 매겨져 있던 조공을 다 면제해 줄 수 없고 조도(調度)가 많아서 10년 동안 늦출 수 없다면 마땅히 군(郡)과 군수(郡守)를 혁파해서 강등시켜 현(縣)으로 만들어 아직 흩어지지 않은 백성을 큰 고을에 들어가게 하여 참혹한 해를 면하게 하는 것이 그 차책(次策)입니다. 

만일 피폐된 고을을 아무런 죄도 없이 폐지하는 것 또한 큰 일이라 여겨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도 행할 수가 없다면 마땅히 하책(下策)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백성을 병들게 하는 것 가운데 큰 것만을 뽑은 것으로 폐단의 절반도 제거할 수 없는 것이니, 바로 눈앞의 고식적인 급함을 우선 구제하는 것이요 피폐해진 것을 진기시켜 장구히 유지해 나가는 정사가 아닙니다. 그 항목이 열 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재목(材木)에 대한 폐단입니다. 크고 작은 재목을 공납해야할 관사가 각각 선공감(繕工監)과 와서(瓦署), 귀후서(歸厚署)입니다. 서까래와 재목이 4백 개에 이르고 산목(散木 좋지 못한 재목)이 거의 수만 개가 되니 이미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숫자입니다. 
40호에서 수만의 재목을 가지고 험한 산을 넘고 깊은 골짝을 건너 운반하자면 남녀가 모두 기진맥진하고 소와 말도 따라서 죽게 되어 온 고을의 농가에 수십 마리의 가축도 없게 될 것이니, 백성의 고생이 극도에 이를 것입니다. 저택은 구름이 연속할 정도로 호사스러움이 너무 심하며, 기와 이음매가 비늘처럼 즐비하여 조그만 땅도 여유가 없으니, 선공감의 급하지도 않는 재목과 와서(瓦署)의 끝없는 축적이 어찌 한 군이 빠진다고 무슨 손실이 있겠습니까? 귀후서의 넓은 판자는 비록 4치에 그치지만 가릴 무렵에 점검하여 좋지 못한 재목들을 물리치는 까닭으로 방납(防納)하는 값이 쌀 천 말에 이르니 집집마다 1곡(斛)을 내어도 오히려 충당하지 못합니다. 

대체로 왕자(王者)의 정치는 죽음으로써 생명을 손상하지 않는다면 이런 이로움과 해로움은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강을 이용하여 뗏목으로 운반하기 때문에 쉽게 공납할 수가 없는데, 삼사(三司 선공감, 와서, 귀후서)의 공가(貢價)가 거의 1백 필에 이르니, 2년 동안 공납하지 못하여 장구히 독촉을 받게 된 것은 또한 괴이하게 여길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중국 사신을 공궤하는 것도 비록 항공(恒貢)하는 관례가 아니지만 채붕(彩棚)을 만들 때 쓰는 큰 재목과 여기에 관계되는 잡물은 본 군이 감당할 바가 아니므로 내년 지공을 덜어줌은 마땅히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삼사의 공납을 오래도록 면제해 주고 아울러 몇 해 동안 부역도 없애 주며, 중국 사신의 비용을 부담시키지 말고 겸하여 잡물의 폐단도 제거해 주고 산을 따라 어영차하는 메아리가 밭이랑을 갈며 노래하는 소리로 바뀐다면, 백성들이 혹 여기에서 조금 소생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종이의 공납에 대한 폐단입니다. 종이를 만드는 어려움은 다른 부역보다 배나 심한데, 종이를 공납하는 어려움이 유독 이 고을에만 많아서 편호(編戶)의 백성들이 시달리다가 지탱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지가 오래입니다. 

지금 장인(匠人)은 세대를 이어 전수하는 솜씨가 단절되고 외부 사람들은 전수받아 익히는 고통을 싫어하여, 관전(官田)이 오래도록 황폐하여 닥나무가 금덩이같이 귀하고 일상적인 장부와 문서는 미처 때맞추어 올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풍저창(풍儲倉)과 장흥고(長興庫)의 공납은 모두 계목(啓目)에 의해 회계(會稽)에 관계된 물품이기 때문에 독책하지만 예조ㆍ교서관ㆍ관상감과 같은 관사(官司)도 모두 공납하게 되어 있어 도합 2백여 권이나 되는데, 공사(公私)의 저축이 함께 바닥이 나서 마련할 길이 없습니다. 

갑인년(1554, 명종9) 이후로 4년 사이에 침탈과 학대 두 가지가 한꺼번에 이르러, 피폐하지 않아도 고을이 더욱 고통스럽게 됩니다. 지금 비록 없는 데서 있는 것을 내놓으라고 독책(督責)하는 것은 바로 회수(淮水)에서 귤(橘)을 요구하는 것과 같으니, 마침내 어찌 얻을 방법이 있겠습니까. 종이를 취하는 가벼운 일을 소중한 백성들에게 비교한다면, 나라에 바치는 공물 가운데 모자라는 것은 종이가 아닙니다. 수백 권의 종이를 아낄 것이 뭐 있겠습니까. 게다가 종이가 매우 귀해진 것은 서적을 많이 인쇄하기 때문인데, 육경(六經) 이외에 다른 서적은 없습니다. 

제자(諸子)의 설은 다만 헛된 말만 조장한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서가에 꽂아 좀이나 먹는 서적이니 어찌 백성들을 해치면서까지 널리 인쇄하려 하십니까. 삼가 바라건대 오래도록 그 공물을 경감하고 아울러 4년간 부세를 면제하여 주신다면 또한 비용을 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어 나가면 백성들이 이 때문에 혹 조금 소생하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는 보병(步兵)에 대한 폐단입니다. 군졸(軍卒)이란 나라의 손톱이고 어금니이며 방어하는 도구이니 더욱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본 고을에는 보병이 26명이나 되니 많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겨우 13명만 남아 있는데, 그것도 보솔(保率)이 없는 단신(單身)입니다. 그 나머지 13명은 대체할 자가 없이 빈 문서만 걸어놓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급한 일이 생겨 갑자기 군대를 동원할 일이 있게 되면 누가 변경의 진중(陣中)으로 달려갈 것이며 누가 죽령(竹嶺)의 관문을 지키겠습니까. 더구나 보병의 신역에는 으레 가포(價布)가 있으니 현재 남아있는 13명은 모두 이웃과 일족의 힘을 빌리고 있는 상황이고 그 나머지 1백 여의 가포는 어떻게 공납할 수가 없어 민간에게 나누어 배정하였으므로 한번 보병의 가포를 겪고 나면 온 고을이 탕진되어 솥이 남아 있는 집이 몇 안 됩니다. 

대저 군병(軍兵)은 정예롭게 함에 힘을 써야 하니 헛된 명분은 무익합니다.
속포(束布)를 실어 들이는 자들은 반드시 모두가 간성(干城)의 도구가 아님을 안다면, 지금 이처럼 급함은 혹시 조금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헛 액수의 보병을 감하거나 혹은 이정하는 길을 열어놓아 머리를 떨어뜨리고 기운이 꺾인 백성들로 하여금 법 밖의 가포를 징수하는 일이 없게 해주신다면 또한 소생시킬 수 있는 한 가지 방편이 될 것입니다.

일곱째는 기인(其人 아전)의 폐단입니다. 아전 50명 중에서 1명을 정하는 것이 나라의 법입니다.
그런데 본 고을은 늙고 쇠약한 아전이 20명도 못 되는데 기인의 액수는 1명 반이 됩니다. 10여 명의 아전이 80명의 역사에 이바지해야 하는데 대포(代布)의 숫자는 1백 필이 넘으니, 어리석고 잔약한 아전들로서는 한 자의 베도 저축한 것이 없는데 장차 어디서 마련할 수가 있겠습니까. 
재산을 다 기울여도 부족해서 이웃과 일족에게까지 침해가 미치므로 서리와 백성이 모두 곤궁에 시달립니다. 2년 동안 공역을 완전히 폐하였으므로 앉아서 대립(代立)하는 침학을 받는데 형부(刑部)에 이문(移文)하여 매양 관리를 추문하고 있어 해가 더욱 심합니다. 

본사(本司)의 진배(進排)가 비록 경비가 있겠지만 백성들의 고혈이 벌써 고갈되어 길어낼 수 없다면, 변통하는 대책을 세워 급하지 않은 비용을 더는 것을 소홀하게 할 수 없을 듯합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반으로 삭감해서 조금이나마 급박함을 펴이게 해주고 2년 동안 빠뜨린 것을 천천히 보상할 수 있다면 또한 소생시킬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될 것입니다.

여덟째는 피물(皮物)에 대한 폐단입니다. 병영(兵營)의 방물(方物)로 소록(小鹿)과 장피(獐皮)의 공납이 있는데 이를 유신현(惟新縣)과 아울러 배정하였고, 또 대록(大鹿)과 황우(黃牛)의 대가(代價)가 있는데 상공(上供)한다는 명목을 핑계로 그 선택을 최고로 하여 소록은 사슴의 중간치로 하고 장피는 사슴 가운데 작은 것으로 합니다. 다른 도(道)도 모두 그렇게 하여 이미 폐습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10여 가지나 되는 잡색(雜色)의 세금을 모두 백성에게 배정하였으므로 점퇴(點退)와 유연(留連)에 대한 비용은 포함시키지 않아도 내야 할 정목(正木)이 1백여 필에 이르니, 이 또한 큰 폐단입니다. 

여러 고을의 공납이 작지 않은데, 방물(方物)을 바치는 것도 이같이 많습니까. 윗사람에게 진상(進上)하는 물건이라 하면서 반은 은택을 파는 뇌물로 돌아간다면 한 고을을 제외하는 것도 비용에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신현은 큰 고을이므로 반드시 폐읍(弊邑)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으니, 녹호(鹿虎) 가죽 대가인 40필의 포목을 유신현에만 배정하고 폐읍에는 독책하지 않는 것이 또한 약한 자를 부지시키는 정치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병영의 피물을 경감하고 아울러 배정한 우록을 영원히 면제해 줌으로써 가죽이 다하면 털도 없어진다는 폐단을 면하게 해주신다면 이 또한 소생시키는 한 가지 방책이 될 것입니다.

아홉째는 이정(移定)의 폐단입니다.  본 고을의 조공도 오히려 견디기 어려운데 다른 고을의 부세까지 더 이정했으니, 공주(公州)의 사노비(寺奴婢),  해미(海美)의 목탄(木炭), 연풍(延풍)의 서까래와 재목, 영춘(永春)의 봉판(蜂板), 황간(黃澗)의 기인(其人) 등 다섯 종목이 그것입니다. 
당초 이정(移定)한 것 또한 폐단을 구제하기 위한 계책이었습니다. 이제 3백 고을에 이러한 폐단이 없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돌보아 주지 않습니까. 노비의 액수가 빈 문서로 기재는 되어 있지만 현재 복역하는 숫자는 50도 되지 못하는데, 액수 외의 것이라 명명하여 이쪽에서 빼앗아 저쪽에 주는 것은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더구나 학교에 노예가 없는데 저곳에 부역을 나누어 준다면 더욱 넉넉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역이 삼도의 요충에 해당되고 고을에는 1백 호의 취락도 없는데, 사신들의 왕래와 왜인들이 다니는 길목이므로 이들의 공궤에 드는 수요를 모두 이 무리에게 의지하는 것은 물론, 복물(卜物)도 모두 이들에게 지고 나르게 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또 수십 명이 도망하여 아직 돌아와 입역(立役)하지 않고 있으므로 두 번이나 해조(該曹)에 보고하였으나, 관례에 따라 방계(防啓)하였습니다. 아, 이것이 어찌 관례에 따라 하는 일이겠습니까? 이는 바로 원헌(原憲)의 재산을 빼앗아 계씨(季氏)의 부(富)를 보태주는 것과 같으니, 이를 어찌 차마 한단 말입니까. 

공주는 백성이 많은 큰 고을인데 비록 부족한 바가 있다 하더라도 어찌 우리 고을에서 취해다가 채워야 될 형편이겠습니까. 만일 빨리 도모하지 않으면 아마도 군의 구실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공주로 이정한 노비를 도로 본 고을로 돌려주고 다른 고을에서 이정(移定)한 제반 공물도 도로 해당 고을로 돌려주어 한 지방의 공물을 보충할 수 있게 하여 영원토록 이롭게 한다면, 이 또한 소생시키는 한 가지 정사가 될 것입니다.

열 번째는 약재(藥材)에 대한 폐단입니다. 의약에 관한 재료는 공납이 각기 달라 혜민서(惠民署)에 공납하는 것이 13가지이고, 감사(監司)와 도(道)에 봉납하는 것이 80여 품목입니다. 봄, 가을의 공납과 매월 초하루의 명령은 어찌 정해진 수가 그리 많습니까. 약초를 캐는 사람이 다 떠나고 의생(醫生)도 몇 사람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공납하는 일에 겨를을 내지 못하는데, 어떻게 채취(採取)할 여가가 있겠습니까. 

무지한 시골 백성들은 약 이름도 모르는데 없는 물건을 생판으로 마련하여 내게 하므로 포목을 가지고 가서 사게 되니, 하소연할 데 없는 불쌍한 백성들이 감내할 일이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웅담(熊膽)과 사향(麝香), 백급(白급)과 인삼(人蔘), 복령(茯령)과 지황(地黃)입니다. 

1백 필의 포목을 가지고도 이 약재 한 가지를 준비하기가 어려운 데다가 거기에는 모두 인정물(人情物)까지 있으니,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아울러 배정된 우황(牛黃)은 백성들이 내게 되니 이는 전적으로 제천(堤川)에만 맡겨서 이 백성들에게 은택을 내리는 것이 불가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팔도의 공물은 모두 내의원(內醫院)에서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한 고을을 제외시킨다고 약재의 수요가 부족한 것은 아니니, 토산물이 아닌 것을 책임지우고 긴급하지 않은 곳에 베풀어 산 사람의 목숨을 해치니, 환자의 몸을 치료하는 것이 비록 생명을 구제하는 정사이기는 하지만 백성을 은혜롭게 하는 인정(仁政)에 어긋날까 두렵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한 고을을 버리지 마시고 갖추기 어려운 약재를 특별히 삭감하여 조금이나마 은혜를 입게 함으로써 태평성대를 함께 누리게 하여 주시면 모든 병폐가 저절로 없어져 하늘과 땅에 화기가 감돌 것이니 이 또한 소생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상 열 가지 폐단은 가장 해가 심한 것으로 전체의 숫자로 계산하여 본다면 겨우 10분의 1쯤 됩니다. 흩어진 백성을 되돌아오게 하려면 마땅히 모든 역사를 감해 주어야 하는데 이 10분의 1에 대해 하나라도 어렵게 여기는 것이 있어서 다 개혁하지 못한다면 소생시키려는 계책은 어긋나고 말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계책은 속임수가 아니겠습니까. 때에 따라 줄이고 늘임은 성왕(聖王)의 할 일이니 정사를 함에 시행하지 않아 반드시 새로 교화를 펴는 데에 이르게 되면 한 지역의 견해를 지키다가 한 고을을 버리게 되는 격이니, 또한 지혜롭다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취한다고 꼭 나라에 이로운 것은 아니고 덜어주면 백성에게 덕이 될 수 있는 것은 임금들이 하고자 하는 것이니, 이 열 가지 폐단에 대해 어렵게 여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생략>
만약 지위도 낮고 말도 경망하여 일일이 들어 줄 수 없다 하여 지난해처럼 관례대로 긴급하지 않은 공물이나 감면해 주고 만다면 비록 감면해 주었다는 말은 있어도 실상은 소생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나아갔던 사람들도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고 아직 모이지 않은 사람은 주위를 돌아보며 모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조정에서 그런 실정을 통찰하였는데도 본 고을이 은혜를 입지 못한다면, 이는 하늘이 버린 것이지 수령의 죄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신도 무슨 체면으로 5말 피곡을 훔쳐 한 군의 수령으로 공허한 지역을 지키고, 공납하는 예법을 궐하며 위로는 고을을 맡겨 함께 다스리는 명을 어기고, 아래로는 평생의 뜻을 저버리겠습니까. 가서 장차 관직(官職)을 피하여 능력있는 사람에게 돌리고 무거운 부담을 풀어 농사지으러 돌아감도 분수에 마땅하다고 하겠습니다.

<생략>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한 지방을 보아 각 도(道)를 미루어 살피시고 한 사물을 들어 만 가지를 통찰하소서. 임금 노릇하기가 쉽지 않고 백성 보호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서 어진 정사를 베풀어 백성의 고통을 보살피고 부세를 박하게 하여 민생을 후하게 해주고 사치를 고쳐 백성의 재물을 아끼고 공사(工事)를 감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무거운 부세를 감면해 주고 포흠낸 백성을 독책하지 말고 정사를 좀먹고 백성을 해치는 자를 통쾌히 소탕하라는 전지를 내리시고 이로움을 일으키고 해로움을 제거하는 계책을 극진히 강구하여 국가의 운명을 편안하게 해서 와해되는 걱정이 없게 하여 나라의 근본이 공고하고 반석같이 튼튼하게 한다면 어찌 한 고을과 한 나라의 경사일 뿐이겠습니까. 실로 만세토록 이어갈 종사(宗社)의 무궁한 복인 것입니다.

신은 지극히 어리석고 미천한 몸으로 아둔한 소견을 두서없이 외람되게 올렸으니, 그 죄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은 소원하다고 해서 다른 것이 아니니, 한 고을의 폐단을 우선으로 삼아 세 모서리를 헤아리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신의 어리석음을 가엾게 여기시어 참람됨을 용서하여 주소서. 신은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소를 받들어 올립니다.

김상환 역(한국국학진흥원/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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