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해지려는 사람들

오늘날, 오랫동안 나라들 사이에서 유지돼온 합리성과 심지어 예의까지 밥 말아 먹으며 국제질서의 근본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는 빌런(villain, 악당)이 있다면 아마도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일 것이다. 그의 언행을 보면 그가 권위주의적인 백인 우월주의자이며 비이성적이고 무례한 미치광이 같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세계인들이 다수일 것이다. 미국 내에서 그의 행보를 열렬히 지지하는 이들을 마가(MAGA)라고 부른다. 그가 지난 대선에서 내세운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의 약자로 이루어진 말이다. 위대함이란 누구에게나 매우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말이다. 인간은 위대함에 쉽게 도취되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 <소년 소녀 세계 위인전> 한두 권쯤은 읽어봤을 것이다. 위인들의 발자취를 삶의 지표로 삼기 위해서였다. 과연 그들 모두 위대한 사람들이었을까? 조선에 많은 임금들이 있었지만 유독 세종 임금님은 세종대왕으로 불리듯이 서양에서 공식적으로 대왕으로 불려오고 있는 사람은 알렉산더일 것이다. 그의 이름이 언제나 ‘Alexander the Great(위대한 알렉산더)’로 불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알렉산더는 스무 살에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어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도까지 영토를 넓히며 자신의 위대한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했지만 서른셋에 그 모든 위대함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정복한 영토만큼 그는 위대했을까?

칭기즈칸은 말 위에서 살다가 말 위에서 죽었다. 중국에서부터 아드리아해(海)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거의 점령하는 과정에서 정복당한 부족의 수레바퀴만큼만 키가 큰 사내아이들이 모조리 죽일 만큼 잔인성을 보였다. 전쟁 중 부상으로 죽은 그는 “내 무덤을 찾는 자는 누구든 죽을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죽은 후 자신의 시체가 훼손당할 게 두려웠던 것이다. 사후 800년이 지났지만 그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다. 죽은 자리조차 알리기 두려워했던 삶이 과연 위대한 것이었을까?

시저의 죽음(BC 44년)
시저의 죽음(BC 44년)

‘Beware the Ides of March(3월 15일을 경계하라).’ 유럽에 전해오는 격언이다. 흉한 일을 조심하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이날이 BC 44년 로마의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날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공화정을 폐지하고 스스로 위대한 황제가 되고자 했던 카이사르는 위기를 느끼고 토라(로마 귀족들의 의복) 깃 속에 칼을 숨긴 원로원들에 둘러싸여 최후를 맞는다. 자신이 아들처럼 여기던 부루투스가 마지막 칼을 찌르자 그는 “부루투스, 너마저 이러기냐(You, too, Brutus)? 그렇다면 이 위대한 시저도 죽어야지.”라고 부르짖었다. 스스로 위대해지려고 했던 사내의 최후였다.

19세기 초, 유럽에서 가장 지식인들의 추앙을 받던 인물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그가 스스로를 프랑스 혁명(1789)의 위대한 계승자로 자처했기 때문이다. 저 위대한 모차르트도 그의 추종자 중 하나였다. 그에게 존경을 바치기 위해 교향곡을 쓰고 겉장에 <보나파르트>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자신의 위대함에 취한 그가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하자 분개한 모차르트는 그 겉장을 찢어버렸다. 그의 교향곡 5번에 나폴레옹의 이름이 사라지고 그냥 <영웅(Eroica)>이라고만 불리는 연유이다.

지금 미국 전역에서 ‘왕은 없다(No Kings)’를 구호로 내건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의 제왕적 행보에 분노한 사람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지난번 방한에서 우리 대통령이 선물한 신라금관 모형에 트럼프의 입이 헤벌어졌다. 이 일은 미국의 많은 매체에서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스스로의 위대함에 취한 인물에게 관세 협상에서의 우리의 이익을 챙겼으니 그 정도면 괜찮은 소동일 수도 있겠다.

지난 14일은 소년 전태일이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기계처럼 여겨지던 노동자들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경종을 울린 지 5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는 위대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중퇴의 학력이었고 찢어지게 가난한 부모의 아들이었고 동대문시장의 이름 없는 ‘시다’, 보조 재단사였다. 그러나 그는 몸을 던져 세상을 바꾸었다. 위대해지려고 해서 위대해지는 게 아니다.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때 인간은 위대해진다. ‘위대한 것이 모두 선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선한 것은 위대하다.’ 고대 그리스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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