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와 천연염색으로 풀어낸 훈민정음의 예술적 변주
“한글은 잊혀선 안 될 우리의 뿌리” 전시 의미 더해

영주 미술계의 원로 이민자 작가의 초대 개인전 『서촌댁 한글사랑展』이 지난 15일부터 23일까지 영주 갤러리 즈음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수십 년간 천착해 온 ‘한글’과 ‘한지’를 주제로 한 작업을 총망라한 전시로, 30여 점의 작품을 통해 한글의 철학과 전통문화의 미감을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작품은 대부분 천연염색한 한지를 바탕으로, 가위질과 꼬기, 염색 덧칠, 줌치기 등 손을 통한 정성스러운 작업 과정을 거쳤다. ‘사라진 4자와 순경음’, ‘아·설·순·치·후와 모음’, ‘사람이 모여 사는 곳’, ‘가위로 쓴 한글’ 등 주요 작품들은 사라진 한글 자모와 조형적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작가는 특히 한글의 역사적 왜곡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냈다. “해례본이나 언해본, 동국정운 등을 보면 ‘ㆍ’는 ‘아래 아’가 아니라 ‘하늘 아’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어학회를 통해 왜곡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며, “한글날 노래에 나오는 ‘아름다운 스물 넉 자’도 사실과 다르다.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한글을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시 제목인 ‘서촌댁’은 서울 사직동(서촌)에서 태어나 영주로 시집온 이 작가가 지역 어르신들로부터 불리던 애칭이다. 작가는 “그 호칭 속에 내 정체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 전시 이름으로 사용했다”며 “이름만큼이나 한글을 사랑하고, 사라져가는 글자와 소리의 기억을 작품으로 엮고 싶었다”고 말했다.

15일 열린 개막 행사에는 김종한 화백을 비롯해 이진구 전 영남예술대학장, 김원 전 서울시립대 부총장, 김규현 전 안동향교 전교, 손병희 이육사 문학관장, 권기윤 전 안동대 예·체대 학장, 권명자 교남서단 사무국장 등 지역 문화계 인사 60여 명이 참석해 전시를 축하했다.

참석자들은 이 작가의 작업을 두고 “천연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와 민속학적 지식, 예술적 해석력이 결합된 보기 드문 작업”이라며 “단순한 조형 작업이 아닌, 한글과 민속에 대한 일종의 ‘학문적 예술’”이라고 평가했다.

이민자 작가는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한 뒤, 성신여대 대학원과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전공했다. 1977년 영주의 삼여재 김태균 선생과 혼인하면서 영주와 인연을 맺었으며, 1984년부터 2008년까지 경북전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지역 문화와 예술 발전에 기여해 왔다.

작가는 필리핀 아시아아트페스티벌 부스전, 일본 도쿄 AS갤러리 초대전, 세종문화회관 ‘가위로 쓰는 한글’ 전, 대만역사박물관 국제전 등 국내외에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으며, 이번 전시는 작가의 인생과 철학이 오롯이 담긴 회고전 성격의 전시로 의미가 깊다.

전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 가능하며,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즈음’은 영주시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지역문화 공유 공간이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