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영주人터뷰 [90] 모녀 소리꾼 최희연 씨·김아림 양
딸과 함께 노래한 무대...‘일상이 예술이야’
공연은 단순한 직업 아닌 사람과 사람 잇는 통로
아이는 ‘귀여움’ 넘어 ‘프로’로 진입 중
‘밀양아리랑’, ‘난감하네’ 즐겨부르는 아이
요즘 영주에서 입소문이 나는 아이가 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또렷한 발성과 자신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아이, 바로 국악인 최희연 씨의 딸 김아림(초2) 양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범상치 않은 아림이”라 부른다. 어머니의 소리를 따라가지만, 이미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영주촌년’은 아이의 별명입니다. 무대에는 서고 싶지만, 정식으로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 ‘영주촌년’입니다. 본인도 좋아하죠. 어릴 때부터 영상을 남기며 성장해서인지 끼가 넘칩니다. 유튜브에서 ‘영주촌년 아림이’로 검색 가능합니다”
경기민요를 전공한 국악인 최희연(44) 씨는 딸과 함께 일상 속 무대를 누비며 지역에서 삶을 노래하고 있다.
“아림이는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확실히 동요보다 국악을 더 좋아합니다. 늘 곁에서 듣고 자라서인지, 귀동냥의 힘이 크죠”
‘그냥 놀아라(?)’라며 농촌 작은 학교인 문수초등학교에 보냈다는 그는 영주의 다양한 행사 무대에 오르며 딸과 함께 국악으로 일상을 채우고 있다. 10여 년 전, 영주가 고향인 남편을 만나 정착한 그는 결혼과 육아를 병행하며 새로운 삶의 무대를 만들어갔다. 사랑스러운 딸과의 만남은 그에게 음악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구수한 장단이 흐르는 모녀의 대화는 “삶의 희로애락이 노래”로 이어져 곧 생활이자 예술이었다. ‘모녀 소리꾼’이라는 이름도 직접 지었다. 그는 “공연이 끝나면 페이를 반씩 나누는데 정확히 금액을 알려주고, 즉시 통장으로 이체해준다”며 “아이에게도 책임을 가르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귀여운 시절은 지났습니다. 이제는 무대의 엄정함을 배워야 할 때죠. ‘할 거면 제대로 해라’가 저만의 교육 방식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예술에 대한 신념과 모성의 단단함이 함께 묻어 있었다.
# 어깨너머로 배운 장단, “일상이 곧 수업이 되다”
최 씨는 어린 시절부터 국악의 소리에 매료됐다. 인천에서 성장한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집 근처 국악 학원을 찾았다. 가야금, 사물놀이, 민요, 무용 등을 배우던 중, 대금 선생님의 권유로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보유자 국악인 이춘희 명창을 만나면서 경기민요의 길이 열렸다.
인천의 일반 중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국립전통예술고(당시 서울국악예술고)에 진학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예술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문사(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대학 시절에는 공연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무대 경험을 쌓았고, 한국전통음악인 별신굿·서울굿·이북굿 등의 국악을 접하면서 음악적 폭을 확장했다.
“맑고 깨끗하며 경쾌한 목소리가 특징인 경기민요를 전공했지만, 단순히 소리만 내는 공부는 아니었습니다. 연기, 움직임, 무대 매너까지 모두 예술의 일부였죠”
굿은 단순한 종교적 의례뿐만 아니라 음악, 노래, 춤 등 모두가 결합된 종합예술 형태라 할 수 있다. 한국 전통음악에서는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배우로도 활동했다. ‘내 이름은 조센삐’란 작품에 출연했으며, ‘덴동어미화전놀이’ 마당놀이에 발탁되는 등 기타 활동을 이어오다 결혼을 계기로 영주에 정착했다.
아이를 낳고도 음악은 놓을 수 없었다는 최 씨는 현재 방과후 사물놀이 강의를 맡고 있으며, 선비세상 특강과 지역 공연을 통해 꾸준히 활동 중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늘 엄마와 함께했던 아림이는 자연스레 무대의 공기 속에서 자랐다. 그에게 영주에서의 지난 10년은 ‘아이와 함께 성장한 시간’이자 ‘삶과 예술이 맞닿은 여정’이었다.
“일상이 곧 수업입니다. 아이는 늘 제가 공연하는 모습과 과정을 곁에서 보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예술인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예술이 생활이 되고, 생활이 다시 무대로 이어졌습니다. 행복한 여정이 진행 중입니다”
그는 “부모님 또한 자녀의 재능을 존중해주셨다”며 “언니는 영어를, 나는 소리를 택했듯 각자의 끼를 인정해주는 가정 분위기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회상했다.
# “소리만 잘해선 부족합니다. 무대는 종합예술이에요”
“아무리 소리를 잘해도 ‘그냥 잘한다’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매 무대에서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습니다. 저는 ‘얼씨구♬’가 터지는 순간을 추구합니다”
최 씨는 국악 무대를 ‘소리·연출·매너가 결합된 종합예술’로 본다. 그는 “민요는 ‘아리랑’, 판소리는 ‘이리오너라’로 대표되지만, 지역과 장단에 따라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다”며 “관객에게 기억되려면 노래뿐 아니라 표정과 시선, 자세까지 하나의 예술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연 의상과 머리 장식도 직접 챙긴다. “행사 성격에 따라 머리 가발과 색감을 바꿔 세팅합니다. 무대의 화려함이 단 하루라면, 그 하루를 위한 준비는 매일의 일상 속에서 이뤄져야 하죠”
코로나 시기에는 활동이 줄어든 대신, 유튜브에 일상을 담았다. 처음엔 아이의 성장 기록이었지만, 어느 날 올린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구독자가 3천 명을 넘어섰다.
“이제는 무대뿐 아니라 영상과 노출도 실력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방송 출연을 부담스러워했지만, 지금은 보여주는 것 또한 연습의 한 과정이죠. 요즘 트렌드에 맞쳐 방송을 나와야 ‘잘하는 것’인 세상인 듯 합니다”
# 딸 아림, “귀여움 단계에서 프로 마인드로 성장해야”
아림은 국악 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 대신 엄마의 연습실과 공연장이 그녀의 교실이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 무대를 따라다니며 장단과 노래를 자연스레 익혔어요”
처음엔 객석에서 구경만 하던 아이가, 어느 날 무대 위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아림이를 ‘동행자’로 세웠다.
“신나는 곡은 가사를 뽑아달라고 부탁하고, 스스로 외워서 무대에 서겠다고 해요. 귀동냥의 힘이 참 대단하죠. 이제는 프로로서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태도가 안 되면 함께 설 수 없습니다”
확고한 주관을 내세우는 그의 딸 아림이도 이를 잘 안다. 엄마가 때로는 혼내기도 하지만, 무대에 서면 기분이 좋기에 모녀 소리꾼으로서의 무대에는 언제나 긴장과 웃음, 그리고 진심이 공존한다.
# 국악은 우리 것, K-POP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그는 국악의 본질을 “우리 것이다”로 정의하고 있다. “한복, 해금, 사물놀이 같은 전통 요소가 현대 대중문화 속에도 자연스럽게 스며 있습니다. K-POP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도 그 안에 깔린 우리 고유의 리듬과 정서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선비세상 국악 특강에서도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처음엔 지루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응이 뜨거웠다는 초·중·고 학생들의 민요 수업. 리듬을 타며 즐길 줄 아는 아이들이지만 지역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에게 국악과 예술 교육 환경의 척박함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그는 “2026년을 앞두고 있지만 국악을 배울 기회는 여전히 제한적”이라며 “흥이 넘치는 아이들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여건이 하루빨리 마련되고 선진지 탐방이나 체험 중심 프로그램도 다방면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익숙하지만, 장단을 치며 노래하면 금세 표정이 밝아짐을 볼 수 있다. 몸으로 느끼는 한국 전통음악은 일상에 활력을 주는 가장 순수한 에너지라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 생활과 연습이 맞닿은 영주 10년
모녀 소리꾼은 현재 남편과 함께 휴천동에 거주하며, 일상 속에서 예술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엄마들이 왜 작은 학교를 선택했냐고 묻곤 하지만, 아이가 사람 냄새 나는 곳에서 자라길 바랐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의 하루는 언제나 연습과 공연, 그리고 아이와의 시간으로 가득하다. 도시와 농촌이 어우러진 도시 영주에서 그는 가족과 함께 행복을 누린다.
“아이를 키우기 좋고, 사람도 따뜻한 우리 고장이 조금 더 문화예술을 즐기고, 다양한 세대가 함께 누릴 수 있는 도농형 문화도시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그에게 공연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통로다. 무대를 채우는 일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자, 소리를 나누며 마음을 여는 시간이다.
그는 “가족 모두가 일상에서 힐링하고, 소통하며,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작은 무대부터 큰 공연까지 직접 느끼길 바란다”며 “‘엄마와 딸이 함께 무대에 서는 모녀 소리꾼’을 통해 생활 속 예술의 한 단면을 엿보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 무대는 단순한 가족 공연이 아니다. 전통이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따뜻한 장면이 그곳에서 펼쳐진다. 최희연 국악인은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대에서 노래를 마치고 내려와 아이 손을 잡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그게 우리 가족의 일상이자, 삶의 무대가 주는 가장 큰 보람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