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봉화, 하나의 미래를 꿈꾸다 - 지방소멸 위기 속 행정통합 해법을 찾아서
영주와 봉화는 더 이상 따로 설 수 없는 공동운명체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청년 유출은 두 지역 모두를 흔드는 현실이 됐다. 생활은 이미 하나지만 행정은 둘로 나뉘어 중복과 비효율을 낳고 있다. 본지는 7부작 기획보도를 통해 ▲국내외 통합사례 ▲주민 목소리 ▲정체성 과제 ▲정책적 제언을 종합해 영주·봉화 통합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싣는 순서>
[1] 영주와 봉화, 생활은 하나인데 왜 행정은 둘인가
[2] 마창진 통합 15년, 남긴 성과와 남은 과제
[3] 핀란드의 선택, 주민이 만든 통합 도시
[4] 덴마크, 국가가 만든 지방행정의 미래
[5] 주민은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우려하는가
[6] 정체성을 지키는 통합, 가능할까
[7] 영주·봉화 통합, 실행을 위한 제언
인구감소가 부른 통합, ‘지속가능 행정’을 향한 국가의 결단
행정비용 10% 절감, 도로 예산은 복지로… 개혁의 첫 결실
“정치는 멀어졌다”… 통합 뒤에 남은 민주주의의 침묵
“행정은 제도로, 신뢰는 사람으로” — 커트 홀베리의 경고
2007년 1월 1일, 인구 600만 규모 덴마크의 행정지도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271개의 지방자치단체는 98개로, 13개의 카운티(county)는 5개의 광역 지역(region)으로 통합됐다. 이른바 ‘덴마크 지방행정개혁(Local Government Reform)’이다.
덴마크 정부가 주도한 이 대개혁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정교한 행정 실험이었다. 중앙정부는 이를 “효율과 지속가능성의 혁신”이라 불렀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덴마크 사람들은 이렇게 되묻는다.
“행정은 합쳐졌는데, 시민의 마음은 함께였을까?”
■ 인구감소가 불러온 거대한 재편
덴마크의 지방개혁은 단순한 행정 통폐합이 아니었다. 국가의 사회복지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한 시도였다.
VIVE(덴마크 사회과학연구센터) 정치학자 커트 홀베리(Kurt Houlberg) 교수는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2000년대 초, 작은 지자체들은 인구가 줄고 전문인력이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장애인 케어나 사회복지, 보건의료 등에서 행정 역량이 점점 약해졌죠.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중앙정부가 개입한 것입니다”
개혁은 철저히 중앙정부 주도였다. 정부는 인구 2만 명을 지방정부 존속의 최소 기준으로 정하고, 그 기준에 미달한 지자체는 스스로 통합 상대를 선택하게 했다.
거부한 곳에는 6개 지자체엔 중앙정부가 ‘전문시장(special mayor)’을 파견했고, 남은 한 곳은 결국 강제 통합됐다. ‘선택적 자율’이 아니라 ‘전제된 명령’이었다.
■ 반대는 미약했고, 권력은 달콤했다
통합을 반대한 목소리는 컸지만, 제도는 이미 굴러가기 시작했다. 당시 여당이 대통령·국회의원·시장까지 장악한 상황에서 통합은 정치적 저항보다는 “더 큰 권한”으로 포장됐다.
커트 홀베리 교수는 “통합에 반대할 수는 없었고 다만 ‘누구와 합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며 “대신 통합 후 시장의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지방의 반발을 잠재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소규모 지자체 시장들은 ‘권한 강화’와 ‘예산 증가’라는 회유책에 따라 통합을 받아들였고, 중앙정부는 이를 빠르게 법제화했다. 행정구조의 단순화는 완벽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의견은 절차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주민의 동의 과정이 없었다는 점에서 ‘합의 없는 개혁’이란 비판도 남았다.
■ 통합 이후, 효율성은 눈에 띄었다
행정개편은 단기적으로 분명한 성과를 냈다. 행정비용이 약 10% 가량 줄었고, 부서장과 공무원 수도 자연감소 형태로 점진적으로 감소했다. 절감된 예산은 복지와 보건 부문에 재투자됐다.
홀베리 교수는 “절약한 예산을 실업·장애아동 복지로 돌렸다”며 “경제적 지속가능성 면에서 개혁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VIVE의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행정비용 절감 외에도 도로 유지관리와 환경정책 효율이 개선됐으며 공공기관 간 중복업무가 대폭 줄었다.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 또한 안정적으로 상승했다. 보고서는 또 “도로관리나 환경행정에서 얻은 효율이 결국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예산으로 재분배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진단했다.
■ 그러나, 민주주의의 체감은 냉랭했다
하지만 효율의 이면에는 ‘정치적 거리감’이 자리했다. VIVE 연구팀은 2001년부터 2021년까지 20년간 덴마크 전역에서 주민 6만여 명을 대상으로 ‘통합 전후 지방민주주의 인식 변화’를 장기 추적 조사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선거참여율은 71%(2005) → 68%(2009) 로 떨어졌고, 지방의원 신뢰도는 6.8점 → 5.4점으로 급락했다. 주민들의 지방민주주의 만족도 또한 6.9점 → 5.8점으로 하락했다.
행정통합 이후 첫 5년간, 주민들은 정치와의 거리를 더 느꼈다. “우리 목소리가 더 이상 시청에 닿지 않는다”는 응답이 늘어난 것이다.
커트 홀베리 교수는 “지방정부의 규모가 커질수록 시민은 ‘정치가 멀어졌다’고 느낀다”며 “효율의 대가로, 민주주의의 숨결은 크게 약해졌다”고 말했다.
이후 10년이 지나며 수치는 회복세를 보였지만, 비통합 지역(Not amalgamated)보다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행정 효율은 회복됐지만, 신뢰의 균열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
■ 주민의 만족은 ‘행정엔 긍정, 정치엔 무감각’
2021년 조사에서 주민들은 행정문제 해결 능력에는 만족했지만, 지방정치에 대한 흥미와 참여 의지는 크게 줄었다. “행정은 빨라졌지만, 정치는 멀어졌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었다.
이는 곧 지방자치의 양극화, 즉 ‘행정 중심의 자치’로 변질된 신호였다. 홀베리 교수는 이를 “제도의 성공과 민주주의의 침묵”이라 정의했다.
“행정개혁은 효율을 증명했지만, 시민의 감정과 참여는 회복하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행정적 효율성을 가져왔지만, ‘균형발전’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불균형을 낳은 것이다.
■ 변화한 사회구조, 사라지는 교외
행정개편은 지역의 풍경까지 바꿔놓았다. 작은 학교들이 폐교되고, 대형 학교로 통합됐으며 교외의 보육시설이나 의료기관은 축소됐다. 복지 서비스의 민간 위탁이 증가했고 도시 집중화로 교외지역의 인구감소와 고령화는 가속화됐다.
VIVE는 이를 “도시 집중화의 부작용”으로 분석한다. 중앙정부는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얻었지만, 지방은 “생활의 지속가능성”을 잃었다. 특히 외곽 농촌의 공동화 현상은 통합 이후 더 뚜렷해졌다.
■ VIVE, 덴마크 사회를 비추는 거울
덴마크 사회과학연구센터(VIVE)는 내무부와 보건부 산하에서 운영되는 독립적인 연구 분석 센터로, 정부 지원 30%, 민간후원 70%로 운영된다. 약 200명의 연구자가 근무하며, 교육·사회복지·행정 분야의 연구와 정책평가를 수행한다.
지방정부의 예산 효율성, 복지의 질, 행정의 민주성 등을 장기 추적·분석하는 공공 싱크탱크(think tank)로, 행정개편 이후 15년 동안 덴마크 지방정책의 객관적 척도로 기능해왔다.
홀베리 교수는 “VIVE의 역할은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정치의 거울이자 시민의 대변자”라며 “국가의 효율이 시민의 삶을 침해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 영주·봉화 통합이 덴마크에서 배워야 할 점
덴마크의 개혁은 행정 효율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시민 없는 통합’의 그림자도 존재한다. 행정비용은 줄었지만, 주민의 신뢰는 느리게 회복됐다. 정체성의 상처는 시간이 해결했지만, 그 과정에는 수많은 소통과 조정이 필요했다.
커트 홀베리 교수는 “한국의 영주·봉화처럼 농촌 중심의 통합 논의라면 무엇보다 주민이 이해하고 참여해야 한다”며 “행정은 하루 만에 합칠 수 있지만, 시민의 마음은 세대가 걸려야 합쳐진다”고 강조했다.
서현제 발행인/ 오공환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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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커트 홀베리 VIVE 교수(덴마크 사회과학연구센터)
덴마크 사회과학연구센터(VIVE)의 커트 홀베리 교수는 2007년 지방행정개편의 설계와 사후평가를 담당한 전문가다.
그는 이번 개혁을 “행정은 성공했지만, 민주주의는 부상 중”이라 표현한다. 코펜하겐에서 만난 홀베리 교수는 덴마크의 경험을 통해 한국의 영주·봉화 통합 논의에 진심 어린 조언을 남겼다.
Q. 덴마크 지방개편의 정책적 배경은 무엇이었습니까?
“지방의 인구감소와 복지부담이 원인이었습니다. 작은 지자체들은 전문인력이 없었고, 장애인·노인 케어 역량이 떨어졌습니다. 중앙정부는 최소 2만 명을 기준으로 정하고 통합을 추진했죠. 통합을 거부한 곳에는 ‘전문시장’을 파견해 문제를 해결했고, 한 곳은 결국 강제 통합했습니다”
Q. 당시 주민 반응은 어땠나요?
“실질적으로 반대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통합의 선택권은 ‘어느 지역과 합칠 것인가’ 뿐이었죠.
통합 시 시장의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이 있었기에 정치적 저항은 크지 않았습니다”
Q. 행정효율은 실제로 향상됐습니까?
“예. 통합 3~4년 후 분석해보니 행정비용이 약 10% 줄었습니다. 부서장과 공무원 수도 자연스럽게 감소했고, 절약된 예산은 실업과 장애아동 복지로 돌렸습니다. 행정의 전문성은 강화됐고 재정의 투명성도 높아졌습니다”
Q. 주민의 체감도는 어땠나요?
“처음 2~3년은 만족도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6년 뒤 조사에서도 별 차이가 없었죠. 행정은 통합됐지만, 시민의 마음은 통합되지 않았습니다. 10년쯤 지나면서 새로운 세대가 유입되고, 행사와 주민모임을 통해 정체성이 서서히 회복됐습니다”
Q. 한국의 영주·봉화 통합 논의에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통합은 위에서 명령하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 합의해야 합니다. 정치인이 직업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주민이 불안을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변화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각오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만, 행정 효율보다 ‘왜 통합하는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민을 설득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덴마크는 행정은 하루에 합쳤지만, 시민의 마음을 합치는 데는 10년이 걸렸습니다. 행정은 제도이지만, 통합은 관계입니다. 진짜 개혁은 시민이 공감할 때 완성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