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천 (금계종손)
사대주의(事大主義)는 이제 정치권에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이다. 개인 간에도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 중에 사대주의에 찌들었다는 표현도 있다. 사전에는 사대주의를 ‘작고 약한 나라가 크고 강한 나라를 섬기고 그에 의지하여 자기 나라의 존립을 유지하려는 입장이나 태도’라고 한다. 사대의 사(事)는 일이란 뜻이고 일을 함에는 늘 기준이 있어야 함이니 사(事)는 기준을 말할 수도 있다. 또 일은 누군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섬기다’란 말엔 섬김의 대상이 되는 나라의 이익을 위한다는 뜻도 있다.
미국에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세계는 큰 소용돌이에 휩쓸린듯하다. 미국이 수입하는 물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무기로 강제 투자를 유치한다. 15%라는 높은 관세를 이제 감지덕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은 관세 제로(zero)도 아니고 15%나 되는 관세를 내겠다고 5,500억불이나 미국에 갖다 바쳐야 하는 계약에 서명도 했다. 우리에게도 그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국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새로운 기준이 생기기도 하고 역사적 교훈 속에서 기준을 찾기도 한다. 변화에 맞는 새 기준의 정립은 늘 필요하다. 그 기준을 역사적 교훈 속에서 새 변화에 맞도록 찾고 수정할 때 국민들의 힘을 모으고 변화를 활용하거나 극복하는데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사대주의는 어땠을까? 많은 사람이 조선을 사대의 나라라고 말한다. 국가 조선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크고 강한 나라는 전기에는 명나라였고 후기에는 청나라였다. 명나라와 청나라는 지금의 미국처럼 세계 최강국이었다. 조선은 당시의 세계 최강국 명나라와 청나라를 늘 기준으로 삼고 명나라를 위하고 섬겼을까? 그렇지 않다. 조선은 명나라에 대해 조공을 바쳤다고 하지만 조공은 명분이었다. 상대가 기분 좋게 여기는 용어였다.
실제로 조공은 무역이었다. 갖다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그걸 명나라도 당연히 여겼다. 명나라가 큰 나라이다 보니 모였던 세계의 문물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왜란이 일어났을 땐 명나라 군인의 희생까지 얻을 수 있었다. 청나라와의 관계는 어땠을까? 청나라와의 관계에 사대주의라 이름 붙이기 참 어렵다. 명나라와의 관계처럼 조공이란 이름의 무역으로 더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선비들은 문화적으로 우리가 더 우위라고 여겼다. 청나라를 우습게 여겼다. 청나라가 미개하다고 여겼다. 우리 스스로 소중화(小中華)라 자부했다. 나라 크기는 크지 않지만, 스스로를 세계적으로 문화의 중앙에 위치한 존재라 자위했다는 말이다.
실제 조선은 당시의 세계사적 위치에서 군사력이 약했는지 몰라도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선진국 반열이었다. 사회적으로도 국민을 위해야 한다는 성리학적 관점이 지배적으로 노예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던 서양과 달랐다. 서양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엔 경제력도 상대적으로 좋았다. 타국과의 관계에서도 자연히 타국을 침략해 전리품을 얻는 것 보다는 잘 지내는 걸 선호했다. 왜구가 침입해도 교화로 다스릴 수 있다고 보았다. 선비들의 기록을 보면 교화(敎化)란 말이 참 많이 나온다. 교화란 가르쳐서 바른길을 가게 한다는 말이다.
조선이 외교관계에 있어 청나라를 대국으로 존중하면서도 문화적으로는 자부심을 갖고 우리 스스로를 중심으로 놓고 생각한 것은 정치의 중심에 있던 선비들의 사고가 그랬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제정세는 요동치고 있다. ‘사대주의’란 용어를 사용하며 국내적으로 진영 간에 상호 비방도 있지만 우리 DNA 속에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나라의 이익을 중심에 두되 국제적으로는 상대를 존중하는 결을 추구하는 게 들어있다고 본다.
케데헌이 세계 대중들의 마음에 확 다가가고 있는 지금 우리의 말 하나 행동 하나가 세계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책임감을 갖는 게 우리 문화를 지탱해 왔던 선비의 자세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