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의 변화를 이끈 영웅 “함께하면 역사를 바꿀 수 있다”
채소 도매상에서 전통시장 회장까지
봉사와 헌신으로 일군 30년의 기록
1996년, 권용락 상인회장은 가족과 함께 채소 도매상 ‘송림상회’를 시작했다. 당시 자본금 500만 원으로 장인·장모가 운영하던 일을 이어받은 것이다. 매일 새벽을 여는 고단한 삶이었지만, 시장은 그에게 단순한 생계 터전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였다. 아내가 매일같이 가게를 지켰고, 권 회장은 그 덕분에 아침에 잠시 일손을 돕고는 영주시와 경북도 곳곳을 누비며 전통시장 행사와 상인회 일을 챙길 수 있었다.
함께해온 직원들 역시 어느덧 10년 넘게 상회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족 같은 직원들과 상인들의 신뢰 속에 권 회장은 365시장 내 선비골전통시장의 상인회장을 9년째 맡고 있다. 그는 “내 돈과 내 시간을 쓰며 회장 일을 하지만 돌아오는 건 욕과 눈물뿐”이라고 토로하면서도, 여전히 발 빠르게 뛰며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2023년 5월 4일, 권 회장은 제7대 영주시상인연합회 신임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얼떨결에 하게 됐다”며 웃으며 “봉사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영주시상인연합회는 공설시장, 선비골전통시장, 골목시장, 문화의거리, 신영주번개시장, 소백쇼핑몰, 풍기인삼시장, 풍기인삼홍삼센터, 풍기토종인삼시장, 선비골인삼시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 전통시장의 매력을 아니껴
선비골전통시장은 한때 영주 구도심의 중심지였다. 예전에는 원 도매시장이 있어 제천, 태백, 예천에서 상인들이 몰려왔고, 새벽 4시면 문이 열렸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형마트와 식자재 마트, 온라인 유통의 확산으로 점포 수가 100여 곳에서 80곳으로 줄었고, 인근 골목시장도 70곳으로 감소하는 등 상황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여기에 상인들의 고령화 문제도 겹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 회장은 시장의 활기를 되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노력해왔다. 2017년부터 문화관광사업을 도입해 ‘365시장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코레일과 연계해 관광객 3만 명을 유치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그는 “전통시장이 정부와 시의 관심이 없었다면 솔직히 자생하기 힘들다”며 “대형버스 주차 공간과 교통 문제만 해결돼도 체류 시간이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영주 반띵관광택시에 전통시장이 포함되지 않은 점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시장 내 자체 방송 시스템을 활용해 상인들과의 소통을 자주 이어갔다. 주 3회 영주시 소식을 전하는 동시에 음악을 틀고, 상인과 손님들을 위해 운동·건강 정보 등을 송출하며 작은 방송국 역할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방송과 각종 행사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권 회장은 “막상 전통시장과 연계해 실행되는 관광 사업은 없다”며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면 먹거리 좋은 골목시장과 각종 신선한 농수산물을 제공하는 전통시장의 매력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봉사와 교육, “상인들의 변화를 이끌다”
권 회장이 시장을 이끌어온 또 다른 힘은 교육과 봉사이다. 그는 영주1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공동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으며, 법무부 법사랑위원 영주지구협의회에도 소속돼 청소년 돌봄 봉사에 나서고 있다. 해마다 300만 원의 장학금을 10년 넘게 영주사랑상품권으로 지원하며 “아이들을 아껴야 지역이 산다”는 신념을 실천해왔고, 이는 일반 시민과 상인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었다.
권 회장은 “부끄럽다”는 겸손한 말과 함께 상인들의 서비스 마인드를 바꾸는 데 힘썼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잡으려면 우리부터 달라져야 한다”며 2017~2018년에는 2년간 주 1회씩 CS(고객 서비스) 교육을 진행했다. “예, 무엇을 드릴까요?”,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라는 친절한 인사 없이는 대형마트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실제로 교육 이후 상인들의 고객 응대 방식은 크게 달라졌고, 이는 곧 고객의 신뢰로 이어졌다.
시장 안전에도 앞장섰다. 영주에서 유일하게 선비골전통시장 내에서 소방안전 교육을 실시했고, 40~50대 상인들을 주축으로 소방조직을 꾸려 자율방범대를 운영하며 화재 예방에도 힘썼다. 그는 “전통시장은 소방에 취약하다”며 “안전이 곧 시장의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철학은 언제나 공동체에 있다. “혼자 하면 영웅이지만, 함께 하면 역사가 된다”는 말처럼, 그는 상인 조직을 하나로 묶는 데 주력했다. 처음에는 무관심했던 상인들도 그의 발걸음을 지켜보며 점차 변화했고, “가만히 있으면 주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에는 청년 상인들이 창업에 나서며 새로운 바람도 불고 있다. 순대골목을 중심으로 20명 규모의 단체가 결성됐고, 청년 창업 점포 두 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경북도와 식품진흥원의 지원사업으로 2천만 원을 확보하는 성과도 내며 미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권 회장은 여전히 매일 시장을 돌며 상인들과 대화를 나눈다. 때로는 배달을 직접 하고, 때로는 소소한 민원을 챙기며 “시장은 내 집과 같다”고 말한다. 그는 “시장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며 “영주시와 시의회가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 “혼자 하면 영웅, 함께 하면 역사”
‘영주365시장’은 2016년에 공동브랜드로 탄생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현 시장의 로고가 바뀌었는지조차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 영주동 내 골목시장, 선비골전통시장, 문화의 거리를 하나로 묶어 전통시장을 브랜드화하고, ‘건강한 시장’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사람의 온기가 가득한 시장을 만들고자 했다. 한때는 구 영주역을 중심으로 관광 명소 역할도 했다. 시대 흐름에 맞춰 SNS 홍보 마케팅을 펼치며 전통시장만의 강점을 내세워 명맥을 이어가기도 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전국 우수 문화관광형 시장 반열에 오르며 365시장만의 차별성을 인정받아 전국 유명 방송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하지만 브랜드 선포식에서 등장했던 문어대감과 황돌이 캐릭터들이 이제는 외롭게 서 있는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아이들의 발길이 뜸해진 것도 전통시장의 현실이다. 편리하고 새로운 것에만 익숙한 아이들을 위해 전통시장이 어떤 변화를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당시 영주의 문어와 한우를 상징해 탄생한 전통시장의 마스코트는 젊은 상인들이 직접 이름을 지으며 변화를 시도했다. 약 30여 년간 시장을 지켜온 권 회장의 발걸음은 단순한 장사꾼의 길이 아니었다. 그는 상인들을 이끌며 봉사와 교육, 문화관광사업을 통해 시장의 활력을 되살리려 애썼다. 때로는 지치지만, 여전히 웃으며 시장 골목을 걸어왔다.
그는 말한다. “상인회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면 무엇이라도 얻는다” 그의 말처럼 선비골전통시장은 여전히 상인들의 손길 속에서 다시 살아날 희망을 품고 있다. “선비골전통시장에는 비가림 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자동개폐 시스템으로 영주에서는 유일하죠. 노래방기기도 준비돼 있습니다. 먹거리를 구입한 고객들에게 자리와 휴식을 내어주는 365시장 내 선비골전통시장입니다.
지난 18일에는 한가위를 맞아 푸짐한 동행축제와 행복 어울림 마당 ‘장보자’ 행사를 열었습니다. 2~3일간의 행사로 천연가습기 만들기, 나무놀이터 10종 체험을 진행했고, 황금 골드바 1돈과 자체 상품권을 경품으로 지급하는 이벤트도 펼쳤습니다”
2년 전 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하며 그는 “시장 공동체 협업으로 효율과 성과를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화합과 단결의 장으로 3년을 계획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럼에도 10개의 상인회가 함께하기에 전통시장에 대한 열의와 봉사정신은 여전하다.
결국 전통시장은 상인들의 힘으로 365시장 내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약 10여 년 전 그가 언급했던 “혼자 하면 영웅이지만, 함께 하면 역사다”라는 말처럼 지금은 새로운 역사를 또다시 써 내려가야 할 시점이다. 365일 늘 고객과 함께하는 영주365시장이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꾸준한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