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남 (작가)
올해 7월, 영주시는 만 70세 이상 고령 시민을 대상으로 시내버스 무료 승차 제도를 시행했다. 이 사업은 영주시에 주소를 둔 1955년 8월 31일 이전 출생자를 대상으로 한다. 약 2만 2천 명의 어르신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의미 있는 변화다. 잘 마련된 복지 정책이 시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고 도시의 활력을 높일 수 있다면 칭찬받아 마땅하다. 고령화로 접어든 영주에서 이번 제도는 이동 수단에 불편을 겪어 온 이들에게 더욱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고령자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교통편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병원을 가거나 장을 보는 일, 손주를 돌보는 일상까지 그 이동의 자유가 곧 삶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발급받은 ‘어르신 통합 무임 교통카드’를 손에 쥔 어르신들의 표정은 작은 해방감을 보여 준다. 교통비 부담에서 벗어나 시내로 볼일을 보러 나서는 편안함과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가벼움이 하루의 기분을 바꿔 놓는다.
단산면에 사는 이 씨 어르신도 그중 한 사람이다. 자동차가 없고 홀로 사는 노인에게 버스는 외부로 나가는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대중교통 소외지역 행복택시 지원 제도가 있긴 하지만 횟수가 제한적이고 일정 비용이 있어 마냥 편리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가끔 이웃의 차량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이 역시 심적 부담이 된다. 그래서 가능하면 볼일을 한꺼번에 몰아 푼돈을 아끼며 한 번의 외출이라도 줄이려 애쓴다.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작은 비용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병원에 한 번, 시장에 한 번만 다녀와도 교통비가 적지 않게 들어요. 나이가 들수록 병원 갈 일은 많고, 건강을 챙기려면 많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외곽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교통비가 큰 금액이 아니어도 매번 계산기를 두드리게 되는 일상은 마음을 은근히 조인다. 버스를 탈지 말지를 저울질하고, 필요한 외출을 미루는 일도 생긴다. 그 작은 망설임이 쌓여 하루가 좁아지고 마음의 폭도 함께 줄어든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무료버스 카드를 발급받은 뒤로는 병원 진료나 장보기를 위해 버스를 탈 때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 것이다.
“큰돈이 아니더라도 자주 이용하다 보면 부담이 되거든요. 지금은 생각날 때마다 시내로 나가요.”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마음의 여유를 되찾게 한다.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아직 없지만 앞으로 무료버스 이용률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제도는 어르신 개인의 편리함을 넘어 지역 공동체에도 활력을 불어넣는다. 버스를 타고 시장과 문화센터를 찾는 발길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지역 상권과 문화시설이 살아난다. 정류장에서 이웃을 만나 안부를 묻고, 함께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서는 길목마다 새로운 대화가 싹튼다. 실용적인 정책 하나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통로가 되는 셈이다.
고령화 시대에 도시가 젊은 사람만을 위한 공간으로 남는다면 시내는 점점 텅 비게 될 것이다. 영주의 시내버스는 이제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편리와 사람, 그리고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고 있다. 교통카드를 쥔 어르신들의 걸음마다 도시가 조금 더 따뜻해지고, 조금 더 살아 있는 느낌으로 채워지길 바란다. 정책의 진정한 가치는 통계가 아니라 혜택을 받는 이들의 삶 속에서 체감될 때 더욱 빛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실제로 버스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상은 학생들이다. 이용 비중을 고려해 이들에게도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면 좋겠다. 제주시나 서울 강남구처럼 영주시 학생들이 버스를 무료로 이용한다면 너무 큰 기대일까. 이번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돼 학생들도 이와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아이들이 누릴 것이 많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며, 노인들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도시, 두 세대를 함께 품는 영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무료버스 정책이 마음의 여유와 도시의 온기를 동시에 키워 가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정책이 단순한 혜택을 넘어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도시 문화로 자리 잡을 때 영주는 진정한 ‘모두의 도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