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선만 지나던 도시, 발전소 품으며 에너지 거점으로
권명호·양금희 ‘인연’과 1년간의 물밑 작업 비하인드
25만 가구 전력·분산특구 효과… 기업·데이터센터 유치 기대
우리 고장 영주가 지방 중소도시의 한계를 넘어, 역사상 최대 규모인 1조 2천억 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한국동서발전과 경북도가 손잡고 500MW급 무탄소 청정수소 발전소와 대용량 배터리 저장시설(BESS) 건설을 추진하면서다. 이로써 영주는 경북 북부의 새로운 에너지 허브 도시로 떠오를 전망이다.
영주시는 지난 8일 경북도, 한국동서발전㈜과 함께 1조 2천억 원 규모의 무탄소 전원개발사업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동시에 공개된 수소 발전소 유치 배경에 대해 시민들은 아직 놀랍거나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송전선만 지나가던 도시, 발전소를 품다
유치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입지다. 우리 지역 상공에는 경주·울진 원자력발전소와 예천 양수발전소 전력이 충북 제천으로 향하는 345kV 고압 송전선이 촘촘히 걸쳐 있다.
황성대 영주시 투자유치팀장은 “영주에는 무려 4개의 송전계통이 지나가 주민 불편과 재산권 침해가 막심하다”며 “그럼에도 도시는 그동안 아무런 실질적 혜택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유치는 바로 이 ‘송전망만 지나가는 도시’라는 구조적 한계를 뒤집는 계기로 평가된다. 울진 원전에서 나오는 잔여 수소를 봉화 소천면 양원역까지 육로로, 이후 영주까지 철도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크게 작용했다. 향후 중부내륙 동서횡단철도가 완공되면 공급망은 더욱 안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 권명호·양금희의 ‘인연’과 1년간의 물밑 작업
성과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인연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권명호 한국동서발전 사장과 양금희 경북도 경제부지사는 21대 국회에서 동료 의원으로 함께 의정활동을 한 사이로, 두 사람의 신뢰와 협력이 도내 유치를 위해 1년 넘게 공을 들이는 과정에서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지역사회는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협약 일주일 전에서야 시의회에 보고됐고, 불과 사흘 전에서야 국회의원, 도·시의원, 상공회의소 등이 모인 자리에서 동서발전이 설명회를 열며 구체적인 계획이 알려졌다. 당초 8월 체결 예정이던 MOU가 납폐기물 제련공장 반대 시위로 9월로 미뤄졌다는 뒷얘기도 흘러나왔다.
▲ “탄소 없는 발전소”… 기대와 우려 공존
영주에 들어설 발전소는 국내 기존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와 달리 100% 수소 연료만 사용하는 방식으로, LNG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탄소 배출이 제로(0)다. 500MW 규모는 약 25만 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전력으로, 이는 현재 영주시 전체 세대 수(5만 1천390세대)의 5배에 달한다.
여기에 BESS(대용량 배터리 저장장치)가 결합하면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수요가 급증할 때 공급할 수 있어, ‘수소-전기-저장’ 삼각 체계가 완성된다.
이는 단순한 발전소 건설을 넘어, 영주를 에너지 전환의 전초기지로 도약시키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 다만 주민 수용성은 과제로 남는다. 특히 수소 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수소는 매우 인화성이 강한 기체로, 누출이나 폭발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도 수소 누출로 인한 사고 사례가 간헐적으로 발생했기에, 시설 설계부터 운영까지 고도의 안전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BESS 역시 과열이나 화재에 대한 위험성이 꾸준히 제기돼 온 시설이다. 특히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간 BESS 화재가 잇따르면서, 소방방재 기준과 안전점검 강화가 요구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수소는 폭발 가능성이 철저히 차단된 상태”라며 “기존 화석연료 대비 오히려 더 안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분산특구 지정 기대… 기업·데이터센터 유치 기회
이번 사업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이하 분산특구) 지정 가능성도 열어젖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9월부터 시행하는 분산특구 제도는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직접 거래할 수 있고, 한전 요금보다 저렴한 특례 요금을 적용받을 수 있다.
만약 영주가 분산특구로 지정되면, 인근 첨단베어링 국가산단에 저렴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 기업 유치 경쟁력이 높아진다. 또한 전력 소모가 큰 데이터센터와 같은 신산업 유치 가능성도 크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 경제효과와 향후 과제
경북도와 영주시는 이번 사업으로 직접 고용 250명, 생산유발효과 2조 3천억 원, 지방세수 1천억 원, 주민지원금 174억 원을 기대하고 있다. 건설기간 중 하루 최대 1천 명, 총 1만 명 이상의 고용 유발 효과도 전망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 신뢰 확보다. 계획 초기부터 환경성과 경제성, 주민 동의라는 세 축을 고르게 고려하지 않으면, 오히려 지역 내 갈등과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시는 문수면·적서동 일대를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으며, 조만간 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참여하는 공개 설명회를 열어 최대한 투명한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내년 6월 새로운 수소 발전소 입지를 경쟁 입찰로 확정할 예정이며, 영주시 안이 최종 선정될 경우 2035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