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납폐기물제련공장 논란, 시민사회 내부 ‘파열음(?)’
대책위, 전·현직 정치인 실명 공개 “시민 생명 위협” 주장
다른 시민단체 “낙인 전략은 시민운동의 본질 훼손” 반박
영주 납폐기물제련공장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특정 정치인과 공무원을 실명으로 지목하며 ‘을사오적’, ‘멍징(멍석말이 징벌)’, ‘멍규(멍석말이 규탄)’로 규정한 영주납폐기물제련공장반대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내성천보존회의 발표에 대해 또 다른 시민단체들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대책위와 내성천보존회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영주 납공장 역적(을사오적)’ 명단은 전·현직 시장과 국회의원, 시의원, 공무원 등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을사오적’, ‘멍석말이 징벌 대상자(8명)’, ‘멍석말이 규탄 대상자(22명)’로 분류해 공개함으로써 지역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대책위는 “납폐기물제련공장 허가 과정에서 정치인과 공무원이 방조·비호하거나 고의 패소를 기획했다”며 강도 높은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어 “전국 미세먼지 1위 지역에 1급 중금속 배출 공장을 허용한 것은 시민 생명을 내다 판 악행”이라며 “10만 시민의 분노와 원성을 담아 공표문을 발표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무원과 정치인의 실명을 거론한 이번 발표를 두고 명예훼손 논란과 함께 시민 여론은 둘로 갈라졌다. 일부는 “너무 과하다”고 우려했고, 또 다른 일부는 “징벌은 불가피하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납 공장 반대 시민연대, 민본 사상 실천 시민 연대, 한국노총 북부 지부는 18일 공동 성명을 통해 “실명 지명과 낙인은 논의의 초점을 왜곡시키고 공론장을 막말과 저격의 장으로 전락시킨다”며 “정작 점검되어야 할 허가 과정의 적법성, 배출 예측의 타당성, 사후 감시 체계 같은 본질적 쟁점은 뒤로 밀려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은 낙인 전략이 연대의 기반을 허무는 결과를 낳는다고 강조했다. 성명은 “시민운동의 힘은 다수 시민과 단체의 참여에서 나오는데, ‘을사5적’식 호명은 중도층과 잠재적 동맹을 침묵하게 만들고 상대 진영의 피해자 프레임만 키운다”며 “환경과 안전이라는 보편적 의제를 정파적 논란으로 축소시킨다”고 비판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소환하는 언어의 위험성도 지적됐다. 성명은 “‘을사오적’이라는 낙인은 사실과 의견을 뒤섞어 검증의 장을 흐릿하게 만든다”며 “이런 방식은 정치적 마녀사냥으로 쉽게 번지고, 나아가 명예훼손과 선거법 위반 리스크까지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단체들은 “환경·보건 문제는 데이터와 과학, 정당한 절차로 설득해야 한다”며, 특정 단체의 공로 독점 주장 역시 연대의 힘을 약화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2천6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소통 공간에서 활동가들을 ‘특정 세력 분자’로 규정해 배제한 사례는 시민의 기억 속에 남아 부정적 유산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성명은 “이번 사안의 성과와 진전은 전체 시민과 다양한 주체의 합작이지 어느 한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시민운동은 낙인과 호명이 아니라 증거와 절차, 제도적 대안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영주시는 지난 7월 9일, 대다수 시민의 반대 의견을 반영해 ㈜바이원의 납폐기물제련공장 설립 신청을 불허한 바 있다. 시는 “시민의 안전과 건강, 쾌적한 생활환경이 최우선 가치”라고 불승인 사유를 밝혔다. 이의신청 마감일인 10월 10일을 앞두고 ㈜바이원 측은 아직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으나, 소송 가능성도 제기되는 만큼 지역사회의 꾸준한 관심과 협력이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