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열 살 먹을 무렵, 마을에 생선 장수가 이사 왔다. 인천에서 오는 기차로 생선을 떼어다 자전거에 싣고 마을을 찾아다니며 팔았다. 마을에 들어서면 자전거를 세우고 “아지나 꽁치, 갈치와 고등어”하며 외쳤다. 나도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아지나 꽁치” 소리를 흉내 내고 다녔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은 “꽁치 집”이라고 부르고 생선 장수를 “반찬 장사”라고 불렀다.
황해도 연백은 물산이 넉넉한 고장이다. 기름진 연백평야가 있고 개펄에서 조개가 풍성하게 났다. 연백만 조기 파시로 흥청거리던 곳이다. 연백서 피난 온 사람들이 개척한 마을이라고 개척단이라 불렀다. 산을 개간해 조와 고구마를 심어 먹으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연백 살 때 습성은 그대로였다. 황해도 말씨와 노린잿내 나는 고수와 밴댕이젖을 듬뿍 넣은 김장을 했다.
여름에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저녁을 먹었는데 집집이 울타리가 없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밥상에 놓인 것들이 다 보였다. 어머니가 “밥 먹고 가”하고 인사하면 “반찬도 업쓰민 뭔 밥을 먹으래!”하고 사양한다. 연백 사람들이 말하는 반찬은 등뼈가 반듯한 조기나 갈치를 말한다. 짠지나 나물들은 그냥 ‘건거니’다. 아지나 꽁치, 갈치와 고등어를 싣고 다니며 파는 이를 반찬장사라 부른 것은 지극히 연백 사람다운 말본새였다.
개척단 사람들은 고수를 필수로 심었다. 여름내 부루쌈 먹을 때도 먹었고 가을 김장 소에는 고수를 꼭 넣어야 했다. 고수는 향이 강하고 노린재 냄새가 난다. 그런데 익숙해지면 싱그럽고 고소한 향이 느껴진다. 고수는 지중해 지역이 원산지다. 이집트 파라오의 미라에서 발견되기도 했다는 오래된 채소다.
동남아시아나 중국을 통해 들어왔을 것으로 보이는 고수는 남한에서는 먹지 않던 향채였다. 고수가 듬뿍 들어간 김치는 개척단 사람과 본주민을 가르는 넘기 힘든 선이었고 시집온 며느리들 시집살이 거리였다. 요즘엔 동남아 출신 이주민들이 많아져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노린재를 씹는 듯한 첫맛을 참아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김치밥은 연백 음식이다. 6.25때 연백 사람들이 흩어지며 간혹 해 먹는 집들도 있지만 김치밥의 기원은 연백이다. 연백 사람들은 김치를 ‘짠지’라 불렀다. 장아찌를 부르는 ‘짠짠지’는 말하는 이나 듣는 이를 웃게도 한다. 아궁이 밥솥에 짠지를 깔고 쏭쏭 썬 돼지고기를 얹고 씻은 쌀을 덮어 안치고 밥하듯 불 때 뜸을 들이면 되는 간단한 요리다. 뜸이 들면 바로 김치와 돼지고기가 잘 섞이도록 섞고 푸면 된다. 식구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들기름 장을 비벼 먹는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집에서 돼지를 길렀는데, 개척단에서는 대게 마을에서 잡아먹었다. 여섯 명이 제비뽑아서 네 다리와 갈비 두 짝을 갈라가고 머리와 내장을 삶아 나눠 먹었다. 초가집 서까래에 걸린 갈고리 중에 매달아 두고 먹었다. 돼지를 집에서 잡으면 뒤처리가 곤란하다. 제대로 씻어내지 않으면 똥 냄새, 피 냄새가 오래가고 파리가 끓게 된다. 돼지를 잡고 바로 비가 오면 뒤처리가 말끔하다. 그래서 그랬나, 여름철 흐린 날이면 동네 어디선가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났다. 형제가 모이면 형님은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리면 고기를 먹을 생각에 입에 웃음이 났다”는 얘기를 요즘도 매번 하신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 중에 으뜸은 짠지밥이었다. 애들하고 놀다 집에 들어올 때 짭쪼름한 짠지밥 웃김 내가 나면 그냥 웃음이 났다. 들기름에 짠지밥을 비벼 먹을 생각에 기쁘고 어느 손님이 오셨나 궁금하기도 했었다. 짠지밥은 식구들뿐만 아니라 개척단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었지만 돼지고기가 없으면 못 만드는 음식이었다. 서울에서 이모나 사촌이라도 와야 해주는 귀한 음식이었다.
짠지밥은 안칠 때 물 잡기가 까다로운 음식이다. 고기와 짠지가 들어가 부피가 늘어난다. 습관대로 밥을 안치면 죽이 되기 일쑤다. 고기와 짠지가 없을 때의 쌀 양에 맞는 물 만큼만 넣어야 한다. 요즘은 압력밥솥을 쓰는데, 압력으로 김치가 물러지면 제맛이 안 난다. 압력 없이 지어야 아삭하게 씹히는 김치맛을 낼 수 있다. 찰지게 반짝이는 밥알과 담백하게 씹히는 돼지고기와 어울리는 아삭한 김치. 무쇠솥에서 퍼담아 어깨가 닿도록 둘러앉아 들기름 장 발라 먹어야 제맛이다. 두고 온 아버지의 고향 연백의 맛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