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선비정신, 창작 마당놀이 ‘죽계선비뎐’으로 부활
풍자와 해학, 노래와 춤으로 풀어낸 ‘참된 경(敬)’의 의미
문체부 지역대표 예술단체 지원사업 선정…선비세상 상설공연 추진

“세상엔 오로지 나만 존귀하다!”

소수서원 앞 죽계천 바위 위에서 선비 우기만이 외친 순간, 하늘은 번쩍 벼락을 내리쳤다. 술에 취해 ‘경(敬)’자 바위를 밟던 그는 결국 발을 헛디뎌 하인 경쇠와 함께 물에 빠진다. 그때 벌어진 기적 같은 사건― 선비와 머슴의 몸이 뒤바뀌는 순간이다.

올해 영주 무대에 오르는 창작 마당놀이 <죽계선비뎐>은 이런 극적인 반전으로 시작한다. 권력과 향락에만 몰두하던 젊은 선비가 민초의 삶을 체험하며 ‘참된 선비’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 문체부 공모, 지역대표 예술단체 지원사업 선정

이 작품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지역대표 예술단체 지원사업’에 선정돼 본격 추진된다. 이 사업은 서울 이외 지역의 공연예술단체를 육성하고 지역 간 문화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마련됐다.

사업기간은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이며, 단체당 최소 2억 원에서 최대 20억 원까지 지원된다. 창작부터 공연 제작, 마케팅까지 포괄적으로 지원된다. 영주에서는 사단법인 한문화아트비전(대표 이혜란)이 선정돼 <죽계선비뎐>을 제작했다.

영주 지역 예술인 100여 명이 모여 2022년 설립된 (사)한문화아트비전은 영주의 전통문화와 지역 유산을 바탕으로 한 공연예술 창작에 주력해왔다. ‘안향선생 영정 봉안례’ 재연과 선비세상 개장 개막공연 등을 성공적으로 선보이며 지역 문화예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번에 선보일 작품은 영주를 넘어 울진, 봉화, 예천, 서울까지 무대를 확장하며 16회의 공연을 이어간다. 영주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셈이다.

▲ 풍자와 해학, 노래로 풀어낸 선비정신

극의 초반은 웃음이 가득하다. 기생과 술자리에 빠진 우기만은 기생들의 놀림을 받는다. 기생들이 부르는 ‘잘난 타령’은 “잘나 잘나 잘났어, 앙!” 하고 후렴구를 외치며 관객도 웃게 만든다.

우기만은 머슴이 된 뒤 처음에는 억울함만 토로한다. 하지만 힘없는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목격하면서 점차 변해간다. 덕봉할아범이 부르는 ‘씨앗 눈물가’는 “배고픈 자를 외면 말며, 죽어가는 자를 외면 말라”는 가사로, 선비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일깨운다.

극의 클라이맥스는 주세붕 선생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우기만은 주세붕 선생으로부터 자신의 생이 뒤바뀐 이유를 듣고 큰 깨달음을 얻는다. 이어 다시 천둥 번개가 칠 때 두 사람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러나 우기만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그는 민초의 눈물 속에서 진정한 ‘경(敬)’의 의미를 깨닫고 참된 선비로 거듭난다.

▲ 선비세상 상설공연, 지역이 함께 만든 무대

‘죽계선비뎐’은 세계유산 소수서원과 죽계천, ‘敬(경)’자 바위를 배경으로 한 창작극이다. 앞으로 선비의 고장 영주를 대표할 선비 주제 콘텐츠로서 한국문화테마파크 ‘선비세상’ 전용무대의 상설공연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소품 제작에는 고구맘, 정도너츠, 만수주조 같은 지역 기업이 참여해 공연을 뒷받침한다. 영주시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와 문화단체도 홍보에 힘을 보탠다. 공연이 단순한 무대를 넘어 지역 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문화 브랜드로 확장되는 셈이다.

이혜란 대표(한문화아트비전)는 “영주라는 지역적 뿌리를 기반으로 전통과 현대를 결합한 무대를 통해 선비정신과 지역 정체성을 예술로 풀어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창작 공연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지역 예술인들에게는 창작 기회와 일자리를, 시민들에게는 문화 향유의 장을 제공하는 계기”라며 “이를 통해 영주가 지향하는 ‘문화도시’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 지역과 서울을 잇는 공연 일정

이번 공연은 영주를 시작으로 경북 여러 지역과 서울까지 이어진다. 첫 무대는 오는 9월 17일 저녁 영주문화예술회관 까치홀에서 열린다. 이어 20일 낮에는 영주 선비촌 죽계루 앞에서 야외공연이 펼쳐지고, 23일 울진연호문화센터, 25일 봉화청소년센터, 27일 예천문화예술회관으로 무대가 옮겨진다.

10월에는 선비세상 한음악당에서 집중 상설공연이 이어진다. 3일과 4일, 5일, 11일과 12일, 18일과 19일, 25일, 26일에 오전과 오후 회차로 공연이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11월 15일 저녁 서울 중랑구민회관에서 수도권 관객과 만난다.

▲ 무대를 빛내는 배우들

주인공인 선비 우기만 역의 추현종은 중앙대 전통예술학부를 졸업하고 국립극장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춘향이 온다> 등에 출연한 젊은 연희꾼이다. 머슴 경쇠 역의 장우용은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출신으로 <춘향이가 살아있다>, <아이러브유> 등 뮤지컬과 음악극 무대를 오가며 활약했다.

덕봉할아범과 주세붕 역을 맡은 김종엽 배우는 윤문식·김성녀 씨와 함께 ‘마당놀이 스타 3인방’으로도 불린다. 마당놀이가 처음 선을 보인 4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국내는 물론, 일본과 미국 등 해외 순회공연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무대에 오른 베테랑이다.

기생 섬월과 미금네 역의 이미정은 2015 대한민국연극제 연기상을 받은 실력파 배우로 뮤지컬 <정도전>, 연극 <산불> 등에 출연했다. 교씨부인과 달래 역의 임연희는 뮤지컬 <만천명월 격쟁을 허하라>에 출연했고, 기생 초선 역의 강아영은 국립국악원과 창작악극 무대를 거친 신예다.

사또 역의 최용욱은 DIMF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두루 경험했고, 기생 매향 역의 이애림은 정광수제 판소리경연대회 최우수상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무용수 허희숙‧신가희·이유정·이예림·고태연·강남주, 연주자 이준우·박용철·임성빈·송인호·이덕희·이다인 등 젊은 예술인들도 합류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다.

▲ 무대를 완성하는 스태프

예술감독 이혜란은 경북문화상·경북예술대상 수상자로 100여 편 이상의 작품을 안무·감독한 지역 예술계의 중추다. 연출 최규철은 <금계야 날아라>, <부석사 산사음악회> 등을 연출했고, 극본을 맡은 사성구는 <내 이름은 사방지>, <까막눈의 왕> 등을 집필한 극작가다.

작곡 여승용은 평창올림픽 테마공연 <천년향>을 맡았고, 안무감독 고내현은 뮤지컬 <김담, 조선의 하늘을 날다> 등에서 안무를 맡았다. 제작PD 김영탁은 2022 세계유산축전 경북(안동·영주) 영주PD를 맡았던 인물이다.

▲ 오늘의 선비정신은 무엇인가

머슴의 몸으로 세상을 다시 본 우기만은 결국 깨닫는다. 선비의 길은 입신양명이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는 삶에 있다는 것을. 작품은 관객에게 묻는다.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참된 선비정신은 무엇인가?”

웃음과 풍자 속에서 던져진 이 물음은 지금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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