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사연을 실은 영동선 철길
70년 동안이나 영주를 동서(東西)로 갈라놓으며 시가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던 영동선 철로를 이설(移設)하려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몇 해 전, 중앙선 전철 복선화 과정에서 영주역을 옮기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이웃 동네 안동은 역이 옮겨갔지만 영주는 역을 그 자리에 주저앉히는 선택을 했다. 오랜 숙원이던 영동선 철로 도심 구간의 이설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지금은 시내에서 멀찌감치 물길을 돌린 원당천과 영동선 철도 저쪽 동네를 ‘울릉도’라고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철길 건너 동네들은 도심 발전에서 소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차가 지나는 건널목들에서 사람이 치어 인명사고도 자주 일어나곤 했다. 이제라도 철로를 옮기자는 논의가 오가고 있다니 기대를 가지고 추이를 지켜보자.
영주를 철도가 만든 도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우리가 미국의 서부 영화들에서 보는 황야에 드문드문 세워지기 시작하는 마을들과 보안관, 카우보이들은 19세기 중반 남북전쟁이 끝난 후, 링컨 대통령이 동부와 서부를 잇는 대륙횡단철도를 놓기 시작한 뒤 생겨난 것들이었다.
영주가 도시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도 1942년 청량리와 경주를 잇는 중앙선 철도가 영주를 지나면서부터였다. 영동선은 산업철도로 시작되었다. 해방된 나라의 산업화에는 강원도 지방의 무연탄과 중석(重石) 등의 광물자원과 목재가 필수적이었다. 1950년, 영주와 탄광 지대인 철암을 잇는 영암선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철도 건설도 전쟁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1955년에 완공된 영암선은 철암선과 동해북부선이 연결되면서 1963년, 영주와 강릉을 잇는 영동선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육로(陸路) 교통이 전무하던 시절, 철도는 국토를 잇는 대동맥의 역할을 했다. 사람들과 물산(物産)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1966년 영주와 김천을 잇는 경북선의 시발점이 되면서 영주는 중앙선, 영동선, 경북선 세 철로가 교차하는 철도의 중심도시로서 발돋움하게 된다.
영주역은 보따리를 이고 진 사람들이 떠나고 돌아오던 곳이었고 보따리 같은 사연을 가슴에 안은 사람들이 만나고 이별하던 곳이었다. 청운의 뜻을 품은 젊은이들은 중앙선에 올라 서울로 떠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탄광촌의 어두운 막장이었건만 가난에 내몰린 젊은 가장들은 올망졸망 식솔들을 이끌고 영동선 열차에 지친 몸을 실었다. 1980년대까지 영주의 경제는 영동선에 기댄 바가 컸다. 탄광 지대에서 기차에 실려 오는 무연탄의 하치장이기도 했고 탄광 지대에 필요한 쌀과 생필품, 목재들을 공급하는 전진기지였다.
영주역은 동해에서 잡힌 수산물의 집산지기도 했다. 인용한 사진은 1960년대 초반의 영주역의 모습이다. 그 시절, 역사(驛舍) 왼쪽에는 기차에서 내리는 이들의 짐을 날라주는 지게꾼들이 모여 앉아 손가락이 타들어 가도록 애꿎은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고, 군데군데 수양버들 그늘 아래에는 구두닦이 아이들이 멋쟁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으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오르는 돼지 내장들과 함께 국밥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시절의 역전 풍경들은 세월과 함께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젊은 시절 역 앞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역사(驛舍)에 붙어 있던 ‘영주역’이라는 푸른 네온 불빛에 마음을 뺏겨 무작정 역으로 달려가 밤차에 몸을 싣곤 했었다. 그 밤 기차는 추레한 탄광 지대를 관통하며 한반도의 동북쪽으로 깊게 패인 상처처럼 나 있는 굽이굽이 영동선 철길을 따라 동쪽 바다에 내려주곤 했었다.
'강파른 벼랑 발치를 깨물며/ 유연히 흐르는 검은 산협의 물/ 그 기슭에 추락할 듯 간신히 붙어 선/ 한없이 조용한 시골 역/ 몇 갑의 질 나쁜 담배와 대포를 파는/ 속국(屬國)같이 엎드린 두서너 채의 판잣집/ 연방 기침을 하는/ 어린애를 업은 아낙네의 지친 얼굴/ 총총히 출찰구를 들락거려쌓는/ 고향을 등진 파리한 남녀노소/ 아, 너는 강원도 탄전(炭田) 지대의 첫째 역’ 허만하(1932~)가 바라본 동점역의 모습이다.
영동선 열차에 오르면 지나게 되는, 한때는 고달픈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내리거나 타던 그 탄광 지대의 역에는 몇 해 전부터 기차가 서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