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와 물방울과 감꽃

정권이 바뀌면 으레 전 정권에 관련돤 이들의 의혹이 검찰이나 언론에 의해 파헤쳐 진다. 그것은 때로는 음모론에 머물 수도 있지만 사실로 밝혀져 법의 심판을 받기도 한다. 정권이 바뀌는 순간 오랫동안 스캔들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 부인인 김 아무개 여사만큼 전방위적으로 스캔들의 중심에 서 있는 사례는 드물다 할 것이다. 목걸이 사건도 그중 하나다.

윤 전 대통령의 나토 순방 때 김 여사가 착용했던 목걸이는 그 무슨 법사와 종교단체와 기업의 회장까지 연루되면서 그간의 소문이 저급한 커넥션으로 확인되고 있는 중이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좀 허탈하다.

고대사회에서의 목걸이는 주술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미로 쓰였지만 점차 여인들의 아름다운 목을 빛내주는 장신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김 여사의 반 클리프의 스노우 플레이크(눈송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8천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그런 고가의 목걸이를 사랑하는 여인의 목에 걸어줄 깜냥의 될 수 없는 사람에게 그 목걸이의 이름은 너무나도 생소한 것이어서 좀 알아보았다.

네덜란드 출신의 보석상 반 클리프는 1956년, 모나코의 왕비가 된 할리우드의 스타였던 그레이스 켈리에게 만들어준 목걸이로 유명세를 타면서 ‘왕실의 보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공주로 나온 오드리 햅번의 목을 장식하던 것도 반 클리프의 목걸이었다고 한다.

‘운명은 자주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을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게 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녀의 이름은 마틸드였다.’

프랑스의 작가 모파상의 소설 <목걸이>의 첫 문장이다. 교양이 있고 우아했지만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던 그녀는 문부성의 가난한 하급 관리와 결혼했지만 언젠가는 그녀의 미모와 매력이 자신을 상류사회의 주목을 받게 할 거라는 허영을 버리지 않았다. 그라고 마침내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남편이 상류사회 파티의 초대장을 구해온 것이었다. 그녀는 한껏 들떴다.

빚을 내서 드레스는 장만했지만 목걸이는 장만할 형편이 못 된 그녀는 부자 친구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리기로 한다. 파티에서 그녀는 우아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이어서 그녀와 춤추고 싶어 하는 많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 꿈이 산산조각 나버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파티에서 돌아온 그녀의 목에서 목걸이가 사라진 것이었다.

온갖 빚을 끌어대 4만 프랑을 장만해 목걸이를 마련해 친구에게 돌려주었지만 그 빚을 갚기 위해 집까지 팔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십 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십 년 만에 거리에서 만난 그 부자 친구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보잘것없이 초라해진 그녀에게 친구가 그간의 사정을 듣고 말했다. “오, 가련한 마틸드. 그건 그냥 500프랑짜리 가짜 다이아몬드였어.”

프랑스혁명의 불씨를 집힌 것도 목걸이었다. 루이 15세가 한 보석상에게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주문했지만 값도 치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에게 환심을 사려 하던 로앙의 추기경에게 사기꾼 잔 드 발루아 백작부인이 접근했다. 추기경에게 돈을 받은 백작부인은 앙투와네트에게 목걸이를 전하는 대신 팔아먹고 날라버렸다. 왕비는 영문도 모르는 채로 허영과 사치로 가득한 여인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녀에 대한 적개심이 그 시절 극심한 궁핍에 시달리던 파리 시민들의 분노의 출구(出口)가 되었고 혁명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배우 리차드 버튼은 세기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에게 69캐럿짜리 무려 60억 원을 호가하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했고 다이아몬드처럼 그들의 사랑도 영원할 거라고 천명했지만 결국 그들의 사랑도 이혼으로 끝나고 물방울 다이아몬드만 전설로 남았다. 문득 어린 시절의 감꽃 목걸이가 떠올랐다. 그 시절, 빈한한 집 뒤뜰에도 한 그루의 감나무쯤은 서 있어서 늦은 봄이면 노란 감꽃들이 떨어졌고 그것들을 명주실로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소녀에게 걸어주던 설렘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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