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군 버스 무료화 2년, 지역에 무슨 변화 있었나
정책 효과는 입증됐지만…재정 지속성과 구조 개편이 관건
‘무료화’ 논의 불붙은 경북, 핵심은 요금 아닌 운영체계
버스를 타는 데 돈이 들지 않는 사회. 상상만으로도 유쾌하다. 경북 청송군은 이미 그런 상상을 현실로 만든 지역이다. 청송군은 2023년부터 농어촌버스를 모두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주민은 물론 관광객도 요금을 내지 않고 탈 수 있다. 군은 민간운수업체의 운송수입 전액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했다.
▲ 청송군, 버스 공짜로 바꾸자 사람이 움직였다
효과는 뚜렷했다. 2024년 기준 버스 이용객은 25% 늘었다. 20~30대 이용률은 40% 이상 증가했고, 관광객 버스 이용률도 60%로 크게 뛰었다. 주민들의 월 교통비는 평균 5만 원 줄었고, 지역 경제에는 약 30억 원의 파급효과가 발생했다. 정책비용 대비 10배가 넘는 효과다.
특히, 청소년의 읍내 문화시설 이용률이 70% 증가했고, 고령자의 병원·관공서 방문 횟수는 35% 늘었다. 응급실 이용률은 줄었다. 이처럼 교통비 절감은 단순한 경제적 이득을 넘어서 지역의 이동권, 의료 접근성, 문화 참여, 관광 소비까지 넓혔다.
경북연구원이 지난 21일 낸 ‘대중교통 무료화 보고서’는 청송군 사례를 포함해 국내외 다양한 정책을 비교하며 ‘경북형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의 핵심은 ‘무료화 여부’가 아니라 ‘운영권의 주체’에 있다. 대중교통은 공공이 책임지고 운영해야 시민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다.
▲ 돈 안 내도 되는 교통, 세계는 어떻게 하고 있나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서도 대중교통 무료화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200여 개 도시가 이 정책을 시행 중이다. 가장 잘 알려진 곳은 룩셈부르크다. 이 나라는 2020년부터 기차·트램·버스 모두를 전면 무료화했다. 요금 수입 대신 중앙정부가 연간 5억 유로(약 6천900억 원)를 부담한다.
에스토니아 탈린시는 2013년부터 거주민 대상 무료화를 시행했다. 이용률은 14% 늘고, 자동차 이용은 5% 줄었다. 독일은 2023년 ‘도이칠란트 티켓’을 도입했다. 월 49유로로 전국 근거리 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1년 동안 5천200만 장이 팔렸고, 180만 톤의 탄소가 줄었다. 이는 승용차 39만 대가 1년간 멈춘 것과 같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전남 신안군은 2019년부터 시내버스와 여객선을 모두 무료화했고, 이용객은 30%, 관광객은 15% 늘었다. 경기도 화성시는 2022년부터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무료화를 시행해 대상 계층 이용률이 40% 이상 증가했다.
▲ 경북, 공짜보다 ‘공공’이 먼저다
경북은 현재 22개 시·군이 각각 다른 민간업체와 계약해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일부 지역은 1~2개 업체가 독점하는 구조다. 이 상태에서 대중교통을 아무리 무료로 해도 서비스 품질을 담보하기 어렵다. 요금수입이 줄면 차량 교체, 기사 처우, 노선 확충 등 투자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실제 해외에서도 무료화 이후 품질 저하 사례가 보고됐다.
무엇보다 문제는 ‘공공 통제력 부재’다. 지금은 지방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민간의 손실을 메워주지만, 버스 노선, 배차 간격, 서비스 기준을 통제할 수는 없다. 이 구조가 계속되면 무료화는 결국 민간 수익 보전 사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
▲ 경북형 공영제, 4가지 운영 모델 제안
경북연구원은 경북에 맞는 공영제 전환 모델을 네 가지로 제시했다. △도에서 직접 운영하는 ‘직영형’ △산하 공공기관에 맡기는 ‘공공위탁형’ △민간이 운송을 맡는 ‘민간위탁형’ 그리고 △‘광역교통공사 설립형’이다
‘직영형’ 공영제는 도 또는 권역별 행정기관이 직접 운영하는 방식이다. 공공성과 통제력이 가장 크지만, 인력과 전문성 부담이 크다. ‘공공위탁형’ 공영제는 경북도 산하 공공기관에 위탁하는 모델로, 유연성과 책임성의 균형을 꾀할 수 있다. ‘민간위탁형’ 공영제는 공공이 운영권을 갖고, 민간이 운송을 맡는 방식이다. 효율성을 확보하면서도 통제가 가능하다.
‘광역교통공사 설립형’은 전담 공공기관을 세워 운영 전반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가장 지속 가능하지만 설립 비용이 크고 제도적 조율이 필요하다.
이러한 모델은 중복노선 조정, 통합 요금제, 환승체계 도입 등을 통해 운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경북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 소규모 시·군의 한계를 극복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 대중교통 무료화, 제도 바꿔야 정책이 산다
경북연구원은 대중교통 무료화의 논점을 요금 감면이 아니라 제도 전환에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청송군의 사례가 증명하듯 정책 효과는 분명하지만, 그 효과가 지속되려면 운영체계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지금처럼 민간에 운영을 맡긴 채 지방정부가 요금 손실을 메우는 구조로는 공공성도, 지속성도 담보하기 어렵다고 봤다. 요금을 없앤다 해도 책임과 결정권이 민간에 있다면 정책의 방향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경북형 모델은 단순한 ‘공짜 교통’이 아니다. 핵심은 ‘누가 운영하느냐’이며, 이는 교통을 복지로 볼 것인지, 민간 수익사업으로 남겨둘 것인지의 선택 문제다.
경북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무료화가 지속되려면 공공이 운영을 책임질 수 있는 구조부터 먼저 갖춰야 한다”며 “지금 필요한 건 요금 인하가 아니라 체계 개편이다. 대중교통이 정말 공공의 것이라면, 이제는 운영의 주도권을 공공이 갖는 것이 먼저”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