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날다

‘검은 반도체’라는 말을 들어보셨으리라. 반도체는 세계시장 1위를 점유하는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인데 검은 반도체라니 무슨 소릴까? 바로 김이다. 김의 채취나 식용의 기록은 6세기경의 <삼국유사>에 등장하니 우리나라가 원조인 게 거의 확실하다. 사실 원조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때는 서양에서 검은 종이라는 의미의 ‘black paper’로 불릴 정도로 그냥 한국인들이 먹는 이상한 음식 정도로 여겨지던 김이 귀하신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우리 발음 그대로 ‘Gim’으로 불리거나 ‘Korean seaweed’, 즉 한국의 해초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올해 1분기 김 수출액이 2억 800만 달러(약 4,000억 원)로 지난해보다 21.5% 증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2월 5일을 ‘무역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 기념일의 연원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1월 30일, 우리나라가 최초로 수출 1억 불을 달성해 12월 5일, 당시 시민회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해 성대한 축하 행사를 열었던 것이다. 고작 농수산물이나 광물 등이 수출 품목의 주를 이루었으나 그 시절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에서는 기념할만한 사건이었다.

오늘날 전자, 자동차, 반도체 등을 주력으로 5,090억 달러(2024년)를 수출하는 세계 6위의 수출 강대국으로 발돋움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고작 1억 불 수출에 감격해하던 나라가 올해 김만으로 10억 불의 수출을 달성하리라는 전망이라니 놀랄 일이 아닌가?

김밥, 하면 어린 시절의 소풍날이 떠오른다. 소풍 가는 날은 김밥을 먹는 날이었다. 어머니가 참기름으로 대충 비벼 아이 팔뚝만 하게 싼 김밥을 자르지도 않고 신문지에 둘둘 말아 사이다 한 병과 함께 소풍 길에 나섰었다. 속에 들어가는 고명은 미나리와 단무지가 고작이었는데 점심시간이 돼 나무 그늘에 앉아 김밥을 한입 물면 미나리와 단무지가 다 딸려 나와 두 입째부터는 그야말로 김밥만 먹기가 일쑤였다.

그 시절에는 김밥도 별미였지만 먹을거리가 지천인 요즘에는 그냥 간단하게 한 끼 때우는 대수롭지 않은 음식으로 전락해버린 게 사실이다.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라는 우스개까지 있지 않은가? 그런 김밥이 세계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건 무슨 연유에서일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김밥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김밥

난데없이 김밥 이야기를 꺼낸 것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서 최근에 본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때문이다. 제작사가 우리나라가 아니지만 케이팝 걸그룹이 등장해 그녀들의 노래로 악마들을 물리치는 이야기였다.

그 애니메이션에는 우리 설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까치와 호랑이, 갓을 쓴 저승사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식탁에는 전혀 어색하지 않게 김밥과 라면이 차려져 있다. 그 영화는 OTT 흥행 세계 1위를 찍었다. <오징어 게임> 등에서 이미 겪어온 바라 그다지 놀라지 않는 반응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문화가 세계인들의 보편적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음이다.

때마침 우리나라 걸그룹 블랙핑크가 런던의 웸블리 공연장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웸블리 스타디움이 어디인가? 영화 <보헤미언 랩소디(2018)>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공연했던 곳이기도 하고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 세계 최정상의 아티스트가 아니면 설 수 없는 꿈의 공연장이다.

아시아 뮤지션으로는 우리나라의 BTS와 블랙핑크가 유일하다. 라면의 종주국인 일본을 제치고 우리나라 라면이 지난해 12억 5천만 달러를 수출하면서 라면의 나라가 된 것도 BTS와 <오징어 게임>에서 이정재가 먹었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이 되는 것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대수롭지도 않은 김밥과 라면이 세계인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바로 문화의 힘 때문이다. 막대한 예산을 낭비한 영주시의 여름축제를 보면서 우리가 공들여야 할 문화 브랜드는 과연 무엇일까를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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