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에 생각한다

어린 시절. 이맘때쯤이면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게 못내 서운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한 달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느라 머리를 쥐어 짜내며 끙끙거리던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리고 임시 소집일이 다가온다. 광복절 기념행사 때문이다.

뜨거운 땡볕 아래 운동장에 정렬해 교장 선생님의 길고 긴 훈화를 듣고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광복절 노래를 제창하고 ‘대한 독립 만세!’ 삼창을 하노라면 더위 먹어 픽픽 쓰러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린 시절의 광복절은 그렇게 여름방학 끝자락의 꽤나 성가신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그 뜨거운 운동장에 서서 ‘나라’라는 걸 가슴에 새겨보는 날이기도 했다. 이제는 그런 학교 단위의 행사 같은 건 오래전에 사라져버렸지만, 세월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광복 80년이다.

‘빛 光’과 ‘되찾을 復’으로 이루어진 ‘광복(光復)’은 ‘빛을 되찾다’라는 뜻이지만 영어 명칭으로는 ‘National Liberation Day’로 쓴다. ‘해방된 날’이라는 얘기다. 1776년 7월 4일, 아메리카의 13개 식민지 대표들이 모인 필라델피아 대륙회의에서 독립선언문을 공포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했다. 그 선언문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문장이 들어 있었다. ‘All men are created equal’, ‘만인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날을 ‘Fourth of July(7월 4일)’로 부르기도 하지만 공식 명칭은 ‘Independence Day’, 즉 독립기념일이다.

우리는 왜 독립이 아니라 광복이었을까? 1910년의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삼천리 강토가 숨죽인 3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 암울한 침묵의 세월을 깨우는 이들이 있었다. 1913년 풍기, 채기중 선생을 중심으로 의사(義士)들이 모여들어 일제의 강제 병탄(倂呑)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항일 무장 결사 단체를 조직했다. 그 비밀결사의 이름이 ‘풍기 광복단’이었다. 광복이라는 이름이 독립의 다른 이름으로 쓰인 시발점이 된 것이다.

1945. 8. 15
1945. 8. 15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식민지가 하나둘 독립하기 시작했다. 약소국들의 하늘에 무겁게 드리웠던 제국주의의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서의 제국주의(帝國主義)는 황제(皇帝)의 나라와는 그 뜻이 다르다. 약소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억압하고 지배한 세력들을 이르는 말이다.

고대의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 제국과 카이사르의 로마제국이 있었지만 근대의 제국주의는 대항해시대(15~6세기)와 함께 시작했다.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무장한 서구의 강대국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식민지로 만들어갔다. 특히 18세기의 산업혁명은 그들의 생산품을 팔고 원자재를 약탈할 수 있는 약소국들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불을 붙였다.

메이지 유신(1868)으로 근대국가로 발돋움한 일본은 청일전쟁(1894)의 승리를 기점으로 우리나라를 불법으로 병탄하고 제국주의의 야욕을 드러내 아시아 전역을 전화(戰火) 속으로 몰아넣었다. 제국주의는 맹목적이고 광신적이고 호전적인 애국주의를 거름으로 피어난다.

19세기 프랑스에 니꼴라 쇼뱅(Nicholas Chauvin)이라는 병사가 있었다.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가 되자 많은 유럽의 이성적인 지식인들이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지만 나폴레옹을 열렬히 숭배했던 그는 전장에서 17번의 부상을 입으면서도 그에 대한 숭배를 멈추지 않았다. 편협한 애국주의를 뜻하는 말 ‘쇼비니즘(chauvinism)’에 그의 이름이 남았다. 이성(理性) 같은 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야만(野蠻)이 제국주의와 그 피해자를 낳았다.

<논어>에 나이를 일컫는 이름들이 있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육십을 ‘이순(耳順)’으로 부르는 건 귀(耳)가 순해져 생각이 다른 이도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가지라는 뜻일 게다. 칠십은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마음 가는 대로 행해도 거스를 게 없는 경지를 이름이다. 그렇다면 팔십은 무엇일까? <논어>에는 없다. 그 모든 경계를 초월할 나이라는 뜻 아닐까?

조선시대에는 천인도 80세가 되면 면천(免賤)을 해주고 존중해주었다. 그만큼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 엄정(嚴正)해야 할 나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광복 80년에 우리 사회를 생각한다. 내 편 네 편 나누어져 싸움질에다 광신적 애국주의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는 과연 80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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