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천 (금계종손)
각 지자체 마다 고유 브랜드를 갖고 있다. 지자체 브랜드는 그 지역의 정체성과 가치를 반영한다. 지자체의 브랜드는 외부에 그 지역의 정체성과 가치를 알리는 것을 넘어 지역민의 문화적 자부심 속에 행동 기준이 되고 외지인의 방문과 투자 유치에도 중요하다.
영주시는 ‘선비의 고장’을 지역 브랜드로 한다. 인근 안동시는 ‘양반의 고장’ 브랜드를 거쳐 현재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를 브랜드로 하고 있다. 두 지자체는 ‘선비’ 명칭을 두고 서로 ‘우위 경쟁’을 하기도 한다. ‘선비’를 지역 브랜드로 하지 않은 지자체 중에서도 여러 지자체가 ‘선비’가 들어간 행사를 한다. ‘선비’가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선비’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각기 다를 수 있다. 긍정적 이미지도 있고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지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펴는 사람과의 대화 중에 ‘영주는 선비 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나왔다. 이분 말의 내용에 나오는 선비는 현재가 아니라 ‘옛것’이었고 ‘선비’를 말하는 지자체장을 비롯 지역 정치인들이 실제로는 부패했더라는 말과 함께 ‘선비’는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이란 말도 나왔다.
어떤 사람을 선비라 할까를 생각해 본다. 선비는 어떤 사람일까?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다. 다양한 말이 나온다 해서 그 개념이 불필요한 용어는 아니다. 어떤 용어이든 한마디로 말하라 하면 다양한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선비로 일컫는 사람 중에서도 더 훌륭한 선비를 어떤 호칭으로 부르는지를 기준으로 선비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선비로 칭송받는 사람 중에 특히 존경해야 한다는 평을 받는 사람에 대한 호칭이 무엇일까? ‘선생’이다. ‘선생’은 표의문자(表意文字)로 ‘먼저’라는 뜻을 가진 선(先)과 ‘태어남’ ‘사람’ ‘삶’의 뜻을 가진 생(生)의 합성어이다.
세상 변화가 심하지 않던 예전에는 먼저 태어난/나이가 더 많은 사람 또는 먼저 경험한 사람이 더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질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확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더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인지라 ‘선생’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하나의 지향 모델이 되었다.
흥미롭게도 나이가 적은 사람을 지칭하면서 ‘선생’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요즘 시대가 아니라 예전 시대에 그랬다는 말이다. 요즘 시대엔 교사를 ‘선생’이라 부르는지라 ‘나이 적은 선생’이 이상하지 않지만 예전엔 나이가 적음에도 선생이라 불리는 사람은 선비들 사이에 이미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었다.
‘선생’ 중에서도 특히 더 훌륭하고 지향 모델로 삼을 만한 사람을 지칭할 땐 ‘노선생’이라 불렀다. 퇴계 이황이 ‘노선생’의 대표적 인물이다. 노선생의 ‘노’는 표의문자로 ‘老’이다. ‘노(老)’에는 존경심이 들어있다. 요즘 시대엔 ‘노인’ 표현에 비하의 뜻도 있다 해서 ‘선배 시민’이라고 하자는 의견도 나오지만 우리 문화에서 ‘노인’은 존중 표현이었다. 선비에게 ‘노선생’은 최고의 찬사였다. 최고의 선비를 ‘노선생’으로 호칭하면 그 선비는 펄쩍 뛰며 ‘놀리지 말라’고 했으리라.
우리 문화에서 선생으로 지칭되는 분들은 단순히 ‘정신 수준이 높은 사람’이 아니었다. 선생으로 지칭되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큰 행적을 남긴 사람이어야 했다. 업적을 남긴 사람이어야 선생으로 불렸다. 업적이란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인 실질적 효과가 있어야 했다. 그가 한 말 보다도 그가 한 행동에서 어떤 효과가 있었느냐가 중요했다. 선비가 죽은 뒤에 쓰는 일대기를 행장이라 했다. 행장(行狀)이란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행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세상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그가 한 업적이 핵심이었다.
‘선비 정신 강조’ 수준을 넘어 ‘선비 행동’ ‘효과’ ‘업적’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아 지역이 갖고 있는 유형․무형의 자원과 스토리를 엮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영주에는 가치가 높으나 흙 속에 묻혀 있는 진주가 많다. 묻혀있는 진주를 빛나게 하고 진주들을 씨줄 날줄로 다양하게 엮으면 가치가 몇 배로 뛰는 ‘진주목걸이’가 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