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삶의 일부입니다”

한두레 무용단
한두레 무용단

예술가에서 교육자, 문화행정가까지

“그의 춤은 늘 지역과 함께였다”

 

무대 위에서 사람을 키우는 예술의 길

지역 문화의 판을 바꾼 ‘지도자의 리더’

무용가 이혜란. 춤을 추는 예술가, 제자를 키우는 교육자, 지역 예술행정을 바꾸는 정책가, 그리고 문화예술단체를 이끄는 단장까지. 그 모든 길 위에서 그는 춤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았고, 사람을 키웠으며, 지역을 살렸다.

이혜란 대표이사
이혜란 대표이사

경북 영주시에서 40년 넘게 문화예술의 현장을 지켜온 이혜란 한두레무용단 단장은 삶 전체를 춤으로 이야기해왔을 정도로 춤과 함께 성장했고, 지역에서 최초로 입시 무용학원을 운영해온 대표이사이다.

중학교 2학년, 영주 동산여중에서 처음 발레를 접한 이후 그는 한 번도 무용과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영주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무용과에 입학했고, 안동대 교육대학원까지 이어지는 긴 배움의 과정에서 무용은 그의 인생을 이끄는 강력한 힘이 됐다.

“무용은 제게 생명과 같죠. 처음 무대를 만난 순간을 잊을 수 없죠. 무의식중에 이끌려가는 느낌이랄까요? 초등학교 시절 예술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체육전공 교사 인솔하에 뭔지도 모르고 나가서 공연했던 기억이 있죠. 기계체조를 처음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초·중·고 스승 덕분에 무용을 지속하게 됐다”는 이 대표는 기초 체력을 쌓기에 충분했던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기계체조와 중학교 때 접했던 무용 그리고 고등학교 때 서울 학원을 오가며 발레를 배웠던 그 모든 과정이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발레는 클래식하며 정형화된 동작이 하나하나 이어져 갈때의 성취감에서 비롯되지만 그 바탕에는 연습만이 길이고 도전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이 무용 분야”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화여대에서 내건 입시 조건은 정형화된 무용이었기에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한국·현대 무용, 발레 세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합격이 됐다. 두 번 도전 끝에 이대를 입학한 그의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다.

# 1985년, 고향 영주에서 무용학원을 시작하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서울이 아닌 고향 영주로 돌아왔다. 지역의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기 시작한 건 1986년부터다. 당시 지역은 무용이라는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혜란 단장은 그런 환경을 아쉬워하기보단,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어 나갔다.

“입시를 위한 학원으로 시작했습니다. 40년간 계속되고 있죠. 하지만 단순히 입시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춤을 통해 삶의 태도를 배우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었죠. 제자들이 늘어나면서 공연할 무대가 필요해졌어요”

지역에는 공연문화가 거의 없던 시기였다. 2000년, 그는 제자들과 함께 ‘한두레무용단’을 창단하고, 그해 6월 처음으로 공연 무대를 열었다. 지역 최초의 무용단 ‘한두레무용단’이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지역의 제자들이 춤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데 앞장섰다. 특히 ‘한두레’의 뜻조차 ‘제자들과 한 가족처럼 서로 돕고 아끼며 공유하고 나누며 지내자’라는 의미가 내포해 있다.

같은 해 6월 한국무용협회 영주지부를 창립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류작업부터 지역의 전공자들을 하나하나 설득하는 과정까지 모든 것을 선후배와 함께 이끌며 해내야 했다. 결국 초대 영주지부장으로 10년간 활동하며, 영주를 지역 무용예술의 중심지로 성장시켰다.

# 예술의 본질은 화려함이 아닌 ‘삶의 변화’다

이혜란 단장이 춤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사람 그리고 지역의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이었다. 그는 화려한 조명이나 기교를 내세우지 않았다. 오로지 중요하게 생각한 건 그들의 변화였다. 그래서 그가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제자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때였다.

“처음에는 무용하는 게 어색하고 낯설어하던 아이들이 무대를 경험하고 자신감을 갖게 되는 걸 볼 때가 가장 기뻤어요. 잘 추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죠. 무대 위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어요”

무용계는 선후배들이 이끌어주며 끈끈한 연을 이어가며 상호 간에 도움을 주는 문화가 자리잡아 있었다. 제자 중엔 해외에서 한국의 무용을 알리는 무용가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고, 전국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는 후배들도 많다. 그들이 가끔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할 때, 그는 예술을 하면서 겪었던 힘든 일들을 모두 잊게 된다.

“지금도 제자들이 해외 공연하거나 대학 교수가 됐다고 연락이 오면 제 일처럼 기뻐요. 제 인생의 가장 큰 성취죠. 저 또한 배우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가르치는 것도 재미있었던 시절입니다. 국위선양을 하는 것 같아 뿌듯했죠. 이처럼 무용은 혼자 완성할 수 있지 않아요. 무대 위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고, 누구나 소중한 역할이 있습니다“

# 시민과 함께하는 축제를 만들다

그의 활동 영역은 교육과 공연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역 문화예술 행정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2016년에 영주예총 지회장과 2년 뒤 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지역의 문화예술을 위한 정책적 기반을 닦았다. 시민참여형 생활예술제를 통해 그는 시민들이 직접 예술의 주체가 되는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생활예술제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였어요. 각 분야에 동호인 30여 개의 단체가 모여 축제를 이뤘죠. 시민들이 예술을 더 가까이 느끼게 했죠. 현 시민회관 앞 광장에서 소백예술제 전시와 공연을 같이 하면서 축제다운 축제를 했습니다”

예술과 행정의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는 문화정책가로서 문화행정과 현장의 예술가 사이를 연결했다. “행정과 예술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는 역할이 중요해요. 두 영역이 손을 잡을 때 비로소 지역 예술이 살아납니다”

지난 6월 죽계선비뎐 제작발표회
지난 6월 죽계선비뎐 제작발표회

# 한문화아트비전(KOCAV), 예술의 미래를 향한 도전

2022년 1월, 그는 지역 예술가들과 뜻을 모아 비영리단체인 한문화아트비전(KOCAV:코카비)을 창립했다. 100여 명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한 이 단체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창작 콘텐츠를 개발해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협력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했다. 즉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는 문화 콘텐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아울러, 지역에 남고 싶은 예술가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목표다.

“문화예술은 지역에서 지속 가능해야 합니다. 한문화아트비전은 지역 문화예술의 생태계를 만드는 일입니다. 지역에서도 충분히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습니다”

한문화아트비전은 이미 지역 정체성을 담은 창작 마당극 등을 제작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예총회장으로 역임 당시 120회 이상의 마당놀이 ‘덴동어미 화전놀이’가 바로 지역의 역사와 공동체 정신을 담아낸 상징적인 공연이라고 인정받고 있다.

그의 무대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젊은 청년들이 다시 지역으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뿐만 아니라, 또 다른 작품 ‘죽계선비뎐’으로 지역과 코카비를 널리 알리고자 한국문화예술과 유산의 계승 발전에 창의적 활동으로 이바지하고 있다. 또, 예술의 영역을 넓히고 지역이 가진 자원을 적극 활용해 문화예술 도시로서의 영주를 만들어가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진혼무(2025.6.6 현충일)
진혼무(2025.6.6 현충일)
태평무
태평무

# 40년의 춤 인생, 이제 다시 무대로

그는 최근 다시 무대에 오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제 무대가 줄어들었어요. 행정과 기획 일에 집중하면서 제 자신이 무대를 그리워하는 걸 느꼈죠. 요즘 다시 춤을 추니 다시 젊어지는 기분이에요. 정말 행복합니다”

이 대표는 “단원들의 칭찬과 격려가 큰 힘이 된다”며 “무대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순간은 언제나 짜릿하다”고 말한 뒤, 그는 여전히 춤을 통해 삶을 표현하고 지역시민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저는 여전히 춤으로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할 것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춤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술은 다양한 장르에 작품이 하나의 공연으로 표현됩니다. 지역예술인 또한 자부심을 갖고 함께 지역을 이끌어가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40년을 한결같이 춤과 예술로 함께 살아온 그는 앞으로도 계속 무대를 통해 지역을 변화시키는 일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