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아영-시를 읽으면서 나를 되돌아본다는 뜻입니다
청포도
-이육사
내 고장 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엄밀한 초대
기다림과 만남으로 연결되는 이 시는, 청결한 “식탁”에서 “먼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힌 청포도를 바라던 사람과 함께 먹는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칠월의 호흡으로, 먼 데서 오는 손님의 무사 귀환을 빌면서 “은쟁반”과 “모시 수건”을 준비합니다.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는 상상만으로도 무더위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겠지요.
이토록 아름다운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했던 상황에서 독립을 염원하면서 쓴 것이기도 합니다. 열일곱 번의 옥살이를 하면서도 느긋한 행복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독립을 향한 강력한 의지 덕분이었을까요? 그렇게 특정한 시대와 역사를 넘어서서 모두의 공감을 얻게 된 시가 탄생합니다. 그 당시 칼날 위를 살았던 시인들 덕분에 해방도 되고 절창도 얻게 되었습니다.
“내 고장 칠월”을 떠 올리면 청포도를, 청포도를 만나면 칠월을 떠올리게 하는 시가 전설처럼 단단하게 익어가는 여름이 향기롭습니다. 좋은 기다림처럼, 깊은 깨달음처럼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는 동안 새롭게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을 듯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