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날의 오후

장마라고 하는 것이 시늉만 하고, 아니 정확히 말해서 시늉도 없이 지나가고 우리는 벌써 여러 날째 폭염 속에 휩싸여 있다. 지구의 수작이 하도 수상하니 ‘열돔 현상’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뜨거운 열기(熱氣)가 마치 돔(dome)처럼 형성돼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꼼짝없이 도가니 속에 갇힌 꼴이란다.

당나라 시인 왕곡이 쓴 <고열행(高熱行)>에 ‘만국여재홍로중(萬國如在紅爐中)’이라는 구절이 있다. ‘온 나라가 벌건 화로에 든 것 같다’라는 뜻이건대 요즘의 한반도가 딱 그 짝인 듯하다.

더위의 절정을 ‘삼복(三伏)’이라고 부르거니와 써늘한 금(金)의 기운이 뜨거운 화(火)의 기운에 눌려 납작 엎드려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여기의 ‘엎드릴 복(伏)’이 사람(人)과 개(犬)를 합쳐놓은 말이다. 묘하게도 서양에서도 여름의 가장 더운 한때를 ‘개의 날들(dog days)’이라고 부른다.

그 시기에는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인 큰개자리 별 시리우스가 해와 함께 떴다가 해와 함께 지는 통에 태양의 열기에 시리우스의 밝기가 더해져 더위가 자심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탓 저런 이유로 저들은 원치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더운 날들과 연루된 개들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 우리 선조들이 여름 음식으로 상용해오던 보신탕과는 별개로 말이다.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1995)'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1995)'

<개 같은 날의 오후 (1995)>라는 영화가 있었다. 찜통같이 푹푹 쪄대는 어느 여름날. 한 서민 아파트에서 남편에게 매 맞는 여자를 둘러싸고 여자들이 벌이는 반란이 산만하고 발랄하면서도 살벌했다. 그 영화에 출연했던 정선경, 송옥숙, 김보연 등의 여배우들이 그 해 각종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을 만큼 수작(秀作)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아마도 영화 전편에 후텁지근히 드리워져 있던 여름날의 권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에도 그 단어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린 시절의 여름을 떠올릴 때면 권태라는 말이 저절로 따라온다. 매미 소리만 찌렁찌렁하던 텅 빈 운동장의 버드나무 그늘을 떠나 뙤약볕이 쏟아붓는 신작로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 집은 동굴 속처럼 비어 있고 마당에는 여름 한낮의 뜨거운 고요와 적막이 담요처럼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옹가지에 받아놓아 뜨거워진 마중물을 한 바가지 부어 길어 올린 펌프 물로 땀을 식히고 툇마루에 앉으면 수돗가의 맨드라미며 백일홍들이 한낮의 더위에 지친 듯 늘어져 있었다. 봄꽃처럼 무리 지어 피지도 않고 한꺼번에 화르르 피어나지도 않는 여름꽃들은 그렇게 권태롭게 시름시름 피고 졌다. 그 까닭 모를 권태로움을 떨쳐보려고나 하듯 툇마루에 걸터앉은 다리를 일부러 덜렁거리며 긴 여름 오후를 보내곤 했다.

우리 문학사의 괴팍한 천재 이상(李箱, 1910 ~1937)은 심해진 폐병으로 지금은 갈 수 없는 북녘의 배천 온천으로 요양을 떠나야 했다. 그 작은 마을에서 긴 여름을 보내며 <권태>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똑같은 초록으로만 되어 있는 벌판’을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이라고 투덜거리며 차라리 빨리 어두워져 버리기라도 했으면 좋을 ‘죽고 싶을 만큼이나 긴 여름날’이라고 권태로움을 토로했다.

‘부조리(不條理) 문학’을 대표하는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소설 <이방인>은 여름날의 권태가 불러온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양로원에서의 어머니의 장례를 마친 남자는 뜨거운 남프랑스의 해변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아랍인을 총으로 쏴 살해하고 법정에서 이유를 묻는 판사에게 짧고 건조하게 대답한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19세기, 유럽의 젊은이들을 페시미즘(pess imism, 염세주의)의 열풍으로 몰아넣은 쇼펜하우어는 권태를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원인으로 규정하며 ‘절망마저 사라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인간존재의 근본적 무의미를 말하는 부조리 문학과 닮아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소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그 마을의 다리를 사진 찍기 위해 온 남자에게 여자는 예이츠의 시를 인용해 ‘흰 나방이 날갯짓할 때’ 자신을 찾아오라는 쪽지를 남긴다. 교양을 갖출 만큼 갖춘 그녀가 그런 낯 뜨거운 유혹의 말을 남긴 것은 오래된 습관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녀 프란체스카에게, 작은 마을의 뜨겁고 눅눅하고 긴 여름날의 권태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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