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벌써 17년 전 일이다. 소백산 등산하려고 새벽밥 먹고 3시간을 운전해 온 것이 무리였을까, 희방사도 못 가서 탈이 났다. 등산을 포기하고 평상에 누워 쉬고 나니 쳇기는 사라졌지만, 다시 산을 오르기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곧바로 집에 가려니 아쉬워 무작정 차를 몰아 영주 산천을 구경했다. 시내에서 점심 먹고 충혼탑, 용상리를 지나서 두월리 내성천을 처음 보았다. 구불구불 휘어진 모랫길 위로 맑은 물이 흐르는 모양에 다리 위에 한참 차를 세우고 모래 씻는 물결을 바라보기도 했었다.

나는 여주 남한강 강변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여주 남한강은 내성천과는 수량이 비교가 안 되게 많고 폭이 3km가 넘는 큰 강이다. 아이 때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강에서 놀았다. 서너 살 먹어선 누이들 빨래하러 갈 때 따라가 멱감고 놀았고, 9살 넘어선 송아지 끌고 가 풀밭에 말뚝 꽂아 매 놓고 몰려다니며 조개도 잡고 견지도 하고 자갈밭을 뒤져 낄루기 알을 주우며 놀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소 물 먹여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겨울엔 살얼음 위에서 맑은 강바닥을 뒤져 조개를 잡고, 썰매를 타고, 얼음 위에 모여있는 오리들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었다. 물에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아이 때는 밥 먹으면 강으로 갔다. 약속이 없어도 아이들이 모여서 샛강 모래밭에서 씨름하고 공차며 놀다가 지치면 서리도 해 먹고 야단도 맞으며 강에서 자랐는데, 내 고향 여주 남한강은 굽이쳐 흐르던 물길은 간데없고 고여서 갇힌 수로가 되었다.

처음 내성천을 봤을 때, 나는 어릴 때 놀던 고향이 생각났다. 모래톱도 있고 풀밭도 있었다. 무리 지어 몰려다니는 피라미 떼도 보이고, 모래톱엔 종종종 낄루기가 바쁘게 돌아다니는 정다운 모습이었다. 두월마을에서 하드 사 먹으려고 전방에 들렀다가 막걸리 드시던 어른들과 말 섞은 게 인연이 되어 야산 중턱 산전에 집을 짓고 이사하게 되었다.

집터를 보러 다닐 즈음에 영주에 댐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댐이 들어서면 내성천이 망가지고 사라지게 되니 영주에 땅을 사는 생각은 접어야 했다. 내성천의 갈수기 유량이 초당 4톤에 불과하고 유역의 크기가 충분치 않고 농지 비율이 높고 축산 밀도가 높은 조건을 생각할 때 댐을 지을 수 없는 위치라는 것을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여러 차례 논란에도 송리원댐 계획이 실행되지 못했던 이유였다. 여기에 댐을 지으면 최상류에서 대규모로 녹조를 배양해 낙동강 전체를 오염시키게 될 것이 확실했다. 그래서 나는 내성천에 댐이 지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의 믿음은 무지막지한 폭거에 유리잔 깨지듯 무너졌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논리가 어이없게도 “내성천에 물을 가둬 갈수기 평균 초당 12톤의 물을 방류해 보 건설로 야기될 낙동강 본류의 오염을 희석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상식을 믿은 나는 지금의 터에 집을 짓고 이사했고, 빛나던 내성천에 영주댐이 지어지고 모두가 알고 있었던 상식대로 녹조 배양 저수지가 되었다.

이명박의 4대강 패악질로 찬란했던 강들이 사라졌다. 내 고향 여주 남한강은 곳곳의 기암절벽과 호박돌 밭과 조약돌이 없어졌고 굵고 가는 모래가 나뉘어 물결치던 은빛 모래밭도 얕은 샛강에 고였던 보드라운 뻘밭도 흔적이 없다. 세계인이 놀라던 아름다운 모래강 내성천이 녹조 배양지가 되는 것을 보지 않았나.

영주댐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니다, “어떻게 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할까”로 바꿔 물어야 한다. 영주댐이 지어지는 동안 무력하게 바라보기만 하고, 안타까워 발을 구를 뿐 입 다물고 방관했던 우리들은 책임이 없는 걸까. “영주댐을 어떻게 할까?”는 물음에 나의 답은 이렇다.

영주댐은 홍수조절용으로만 운영한다. 물이 빠진 해발 157m 이내의 수역에 침수에 견디는 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든다. 낙우송이 최적이다. 예전처럼 모래가 흐르고 거대하게 자란 낙우송에 구름다리를 매달고, 시원한 그늘에서 쉬고 놀고 누군가는 사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무가 자라려면 장구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세월처럼 빠른 게 없다.

영주에서는 납공장 가동 절대 안 된다. 다른 곳에서는 되고 내 고장에서는 안 되는 님비 아니냐고? 전기차 말고는 모든 자동차가 납축전지를 사용한다. 폐 배터리에서 나오는 납을 재생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제까지는 이익을 보려는 사기업이 그 일을 했으나 더는 안된다. 소규모 기업이 얼렁뚱땅 적당히 할 일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나서서 특별세를 만들어서라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 해결해야 하는 국가 규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