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천 (금계종손)

필자는 선비리더십을 강의하며 우리 지역을 비롯해 우리나라를 밝혀 온 선비들의 행적에서 현시대와 미래 시대를 밝힐 수 있는 점들을 찾는다. 더 근원적으로는 선비가 현대적 의미의 리더십 모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기도 한다.

리더를 말할 때 ‘나를 따르라.’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사실 리더십이란 기본적으로 이끈다는 말이다. 리더십 이론은 처음 나올 때 ‘이끔’을 기본 개념으로 해서 형성되었다. 후에 리더십 이론에 리딩(leading/이끔)과는 결이 다른 지원, 후원, 소통, 상황적 특성, 시대 등 다양한 개념의 말을 사용해 리더십을 말하는 학자들도 나왔다. 리더십 이론이 이렇게 복잡하게 변하는 건 리더십이 그만큼 딱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리더십은 집단, 지역, 국가, 세계 등 리더가 활동하는 무대에서 성과를 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성과를 낸 리더에 대한 분석을 하니 기존의 리더십 이론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요소가 있고 그 요소를 부각하면 새로운 리더십 이론이 생긴다.

선비는 이끈다는 말 보다 교화한다는 말을 많이 썼다. 리더와는 결이 다른 느낌이다. 선비는 계층적 용어가 아니다. ‘선비 같다’는 말은 신분이 다르다는 말 보다는 사람의 행동을 중심으로 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선비는 교화하는 사람이었다. ‘나를 따르라’ 식의 접근을 하는 사람이 아님을 말한다. 교화를 통해 더 좋은 결과를 낸 사람은 선비로 칭송을 받았다.

‘교화’란 가르쳐서 바꾼다는 말이다. 교화에는 강제의 의미가 없다.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변화하는 것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에게 달렸다. 교화한다는 말은 알려주어 스스로 알아서 잘한다는 뜻이다. 선비는 알려주되 알려준 대로 대상자가 하지 않으면 대상을 혼내기보다 자신이 교화를 제대로 하지 못했음에 대해 고민했다. 교화를 제대로 하려면 자신이 잘 알아야 했다.

선비는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이상향을 갖고 있다. 공직을 맡고 있던 맡고 있지 않던 그 이상향 실현을 위해 행동한 게 무엇이고 결과로써 업적이 무엇인가가 중요했다. 공직을 맡았다면 어떤 업적이고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논하는 중요성은 더욱 커져야 했다. 선비로 존경받았느냐를 알려면 그의 일대기(행장)를 보면 된다.

선비가 타계하면 그에 대해 행장이 지어진다. 행장(行狀)이란 한 사람의 일대기로 주로 그가 이룬 업적 성과를 중심으로 한다. 행장(行狀)이란 말 자체에서 일대기의 내용이 행동 중심적이고 성과 중심적이었다. 선비의 행장에 나타나는 ‘교화를 잘했다’는 표현은 존경의 표현이다. 선비로 칭송받는 옛 선현들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일중독환자였다. 큰 줄기만 잡아나가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나 실제로는 매우 꼼꼼했다.

퇴계 이황이 말했듯이 금계 황준량처럼 지방관(현감, 군수, 목사)으로 일을 하느라 잠을 거의 자지 않아 건강을 해친 선비도 있었다. 교화란 추상적 한 마디 툭 던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이 잘 진행되는지를 점검해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대는 시민이 주인인 시대이다. 직접 채용(선출)하든 과거시험 같은 시험을 통한 채용(임명직)이든 채용해 놓은 사람(공직자)에게 일을 잘하도록 요구하는 시대이다. 복잡한 시대이고 다들 하는 일이 바쁜지라 공직자들이 일을 잘하는지 밤을 지새우며 점검하기도 현실적으로 힘들다. 공직자들이 잘하지 못해도 알기가 힘든 경우도 많다. 공직자들에게 옛 선비처럼 일하도록 요구하는 정도로 그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시민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간다는 컨센서스가 있으면 시민들이 구체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인구 10만을 밑도는 작은 지역에 수천 명의 시민이 모여 ‘납공장 반대’를 외쳤다. 다른 나라처럼 폭력이 동반되지 않는 어쩌면 흥겨운 분위기도 나는 집단 의견 표현이었다. 시민들의 말 속에서 공직자들이 예전 선비처럼은 못해도 지역을 망치는 걸 어떻게 할 수 있느냐의 분노가 읽힌다. 한편으론 지역을 지키고자 노심초사하는 선비의 모습을 시민들에게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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