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가 극심했던 1970년대 초, 농촌에는 연이자 50~100%에 달하는 고리채가 만연했다. 이 고리채의 후신인 마을금고를 흡수·통합한 것이 지금의 단위농협이다.
초라하게 출발했던 단위농협은 조합원들의 희생과 헌신에 힘입어 지금의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투자만 하면 수익이 보장되던 시절, 농협 문전에는 대출을 받으려는 농민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농협은 당시 법으로 금지되지 않았던 ‘꺾기’를 공공연히 자행했다. 예컨대 100만 원을 대출받고자 하는 조합원에게 110만 원을 대출해주며, 그 중 10만 원은 출자금 명목으로 공제하는 식이다. 추곡을 수매하던 가을철에는 10가마당(가마당 54kg) 1가마씩의 나락을 출자금으로 떼기도 했다.
그 시절 쌀은 귀했다. 읍면 사무소 직원들은 다수확을 장려한다며 농지를 돌며 나락 수확량을 측정하고, 다수확왕에게는 명패를 수여했다. 정부 방침이라며 농민들에게 추곡수매 물량을 강제로 배정하고, 수매를 반대하면 ‘빨갱이’로 몰기까지 했다.
시중 쌀값이 정부 수매가보다 1.5배가량 비싸 농민들은 당연히 시중 판매를 원했지만, 어쩔 수 없이 헐값에 나락을 넘기고, 거기다 한 가마를 더 출자금으로 떼였으니 불만은 컸다. 그러나 ‘민주화’란 말조차 꺼내기 힘든 시절이었기에 누구도 행정에 반기를 들 수 없었다.
조합 운영 역시 전문성이 부족했던 탓에, 농민들의 피땀 어린 출자금 상당수가 인건비로 쓰였고, 결국 자본잠식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조합이 어려울 때면 늘 “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라는 말로 책임을 전가했고, 조합원들의 희생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55년이 지난 지금, 농협 문 앞을 메우는 건 농민이 아니라 도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인이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났고, 농촌 인구는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 마을은 울타리 없는 경로당으로 바뀌었다. 조합을 지탱했던 1세대 조합원들은 세상을 떠났거나 노구를 이끌고 여전히 농촌을 지키고 있다.
물론 농협도 변화의 노력을 보이고 있다. 추곡수매 건조비를 지자체와 함께 지원하고, 고령 조합원에게 생일 선물, 영농자재 배달, 보행보조기 등 복지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중계, 드론을 통한 농약 살포, 농기계 임대, 농작업 대행 등 다양한 서비스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조합원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만큼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영주시 산하 3만 농업인의 추곡수매 실태를 보자. 수조 원 자산을 보유한 Y농협과 미곡처리장을 운영하는 A농협은 매년 약 16만 가마(40kg 기준)의 나락을 선수매 후 정산 방식으로 매입하고 있다. 문제는 정산 가격이 시중 정미소보다 가마당 1만 원 가량 낮은 헐값이라는 점이다.
항의하는 조합원에게는 “흑자가 나면 추가 정산하겠다”는 약속이 돌아오지만, 이는 사실상 지켜지지 않는 부도수표에 가깝다. 그나마 Y농협은 ‘쌀 농가 특별장려금’ 명목으로 수십 년째 가마당 1만 원을 보상해오고 있으나, A농협은 사정이 어려워 이에 응하지 못하고 있다.
정미소의 생리를 잠시 살펴보자. 조곡(나락)은 90kg 내외에서 쌀 한 가마 (80kg)가 생산됨에도 조곡 120kg을 쌀 한 가마로 책정하는 것은 도정료를 충분히 포함된 중량이다. 충분한 도정료가 포함됐음에도 원료곡 가격을 후려치는 행위는 구조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그들만의 안전을 위함이다. 판로가 어려워지면 그들은 상습적으로 헐값에 밀어내기를 일삼고 있다.
지금 시중 쌀값은 가마당 20만 원을 넘고 있다. 농협이 매입한 가격은 지난해 10월 기준 가마당 18만3천 원(1등급)이다. 추가 정산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농협은 조합원의 희생 위에 성장해왔다. 그 기반을 지킨 농민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할 시간이다. 이제는 농민을 위한 농협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