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철쭉제가 열릴 무렵에 희방사 길을 걸으면 하얀 꽃을 피운 쪽동백나무를 만나게 된다. 키가 10m에 달하는 훤칠한 쪽동백나무 그늘 밑을 지날 때면 꽃향기에 휘감겨 들려 올려진 듯 몽환적인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희방사 계곡에는 이야깃거리가 될만한 나무와 꽃들이 많은데 오늘은 쪽동백나무의 명칭에 관해 살펴보겠다.
전에 같은 칼럼을 통해 동백이 머릿기름이며 동백이 열리는 나무를 모두 동백나무라 불렀고 생강나무, 때죽나무가 본래 이름이 동백이었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또 ‘동백’과 일본말 ‘쯔바키(椿)’가 같은 어원을 가졌을 것이며 제정일치 시대의 제사장(椿府丈)과도 연결된다고 했었다.
쪽동백나무에서 쪽은 갈라졌다는 뜻이다. 쪽진머리는 앞머리 중간에 반듯하게 가르마를 타고 묶은 머리다. 밤송이 속에는 밤알 세 쪽이 들어있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 ‘쪽’은 갈라진 모양을 말한다. 동백나무와 비교해 갈라지는 특징이 있어서 쪽동백나무라 부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동백나무는 때죽나무다. 쪽동백나무나 때죽나무는 모두 때죽나무과에 속한다. 때죽나무는 산야에 비교적 흔하다.
그러나 쪽동백나무는 큰 산 계곡에서 자란다. 쪽동백나무는 잎이 넓고 키가 크다. 꽃은 아까시나무 꽃처럼 뭉쳐서 피는데 꽃 하나의 모양과 열매 모양은 같으나 쪽동백나무의 열매가 더 크다. 열매 안에 대개는 씨가 두 개 들어있다. 밤송이처럼 쪽지어 있는 씨앗의 차이를 따서 쪽동백나무라 구별했다. 쪽동백나무는 씨앗이 갈라진 동백나무다.
우리나라의 식물명칭을 체계적으로 정리 기록한 것은 1937년에 발행된 조선식물향명집(朝鮮植物鄕名集)이 최초다. 국가가 표준으로 삼는 명칭을 국명(國名)이라 하고 민간에서 달리 불리는 것들을 이명(異名)이라 하는데 일제강점기하에서 국명은 일본어 명칭이었기에 향명이라고 규정해 정리한 것이다. 같은 식물에 여러 이름이 있는 경우에는 표준이 될만한 것을 국명으로 삼고 나머지를 이명으로 삼으면 되지만 여러 다른 식물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 불가피하게 중복되지 않게 정해야 한다.
동백이 그 예다. 각지의 환경에 따라 머릿기름을 얻을 수 있는 식물을 동백이라 불렀으니 그 식물의 이명을 찾아 국명으로 쓰거나 새로 지어야 했다. 그러나 중복되지 않는 변이종이나 관련 종의 명칭은 그대로 기록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 알싸한 향이 나는 노란 동백꽃은 오늘날 생강나무라 부르는 나무다. 생강나무는 학자들이 작명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생강나무를 “우콘바(鬱金花)”라 하는데 꽃이 울금의 노란색과 같다는 의미다. 이것을 가져왔으나 울금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었기에 잘 알려져 있던 생강으로 바꾸어 생강나무라 한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향이나 맛이 생강과 비슷한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다. 익은 열매의 색깔이 희다는 뜻의 “백동백”은 그대로 수록했다. 때죽나무는 이명을 국명으로 채용한 사례로 보인다. 어색하고 작위적인 명칭이다. 같은 속의 쪽동백나무와 속(屬)이 다른 나래쪽동백은 중복되지 않으므로 그대로 수록한 것이다.
오늘날 동백나무라 부르는 나무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당나라에서는 해홍화(海紅花)라 불렀다. 여기서 해海는 신라를 뜻한다. 신라에서 온 붉은 꽃이라는 뜻이다. 송나라 때는 산다화(山茶花)라 했다. 산에서 나는 차나무라는 뜻이다. 가치 중립적인 명칭이다. 고려시대 어느 문인이 해홍화라 하지 말고 산다화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산다화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당나라의 수도가 서안(西安)으로 내륙에 있던 것을 고려하더라도 중국 남부와 한국 남부 및 일본에 널리 퍼져있는 동백나무를 해홍화 즉, 해 신라의 꽃나무라 한 것은 신라의 강역에 대해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긴다. 어떤 이가 책에 쓰고 유튜브에 올렸는데, 쪽동백나무는 동백나무에 비해 열매가 작다는 의미로 ‘쪽’ 자를 붙여 쪽동백나무라고 했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쪽-문, 쪽-마루 등의 용례를 들어 ‘쪽’을 작다는 뜻으로 보고 동백나무보다 열매가 작아서 쪽동백나무라 했다는 것이다. 민간에서 이름이 지어지는 이치를 고려하지 못한 발상이며 통찰이 부족한 소치로 보았다. 그러나 조회수가 많고 댓글이 적지 않았다. 그만큼 오류로 인한 폐해가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여기 적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