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와 패배의 바다
지난달 25일,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수식(進水式)을 하던 5,000톤급의 신형 구축함이 함체(艦體)가 파손되면서 진수에 실패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진수(進水)란 새로 만든 배를 물에 띄우는 작업이었으니 김정은이 격노해 관련자들을 엄중 처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1999년 6월 15일 오전,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 7척이 우리 해군 고속정에 선제사격을 가했고 우리 군은 대응 사격으로 14분간 지속된 이 교전에서 북한의 어뢰정 한 척이 격침되고 경비정 다섯 척이 파손된 채로 북으로 도주했다. 이른바 ‘1차 연평 해전’이다. 이 교전에서 충격을 받은 북한은 해군력 증강에 힘쓰게 되었고 이번의 구축함 사고도 그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바다는 지구 면적의 71%를 차지하고 있다. 대항해시대(15세기) 이전부터 바다를 장악하는 나라가 강대국의 자리에 올랐다. 바다는 교역과 군사 이동의 통로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크고 작은 수많은 해전(海戰)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 가운데 세계 3대, 혹은 4대 해전으로 불려지는 대규모 전투들이 있었다. 기원전 480년, 그리스는 스파르타, 아테네 등 수많은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페르시아는 중동과 근동 지역을 장악한 강력한 제국이었다.
1차 페르시아 전쟁에 패퇴한 6년 뒤, 복수심에 불탄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가 800여 척의 대형 갤리선(船)을 이끌고 바다로 침공해왔다. 대다수의 전쟁은 영웅을 탄생시키는 법이다. 그리스의 테미스토클레스는 370척의 소형 갤리선으로 적선들을 살라미스섬 근처의 작은 해협으로 유인해 300여 척을 침몰시키며 승리를 거둔다.
갤리선은 화포도 없던 시절 돛과 노로만 운용되던 목선이었으니 배끼리 서로 부딪치거나 배에 올라 백병전을 벌이는 전술밖에 없었으므로 수많은 함선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으리라.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 세계 최초의 대규모 해전을 ‘살라미스 해전’으로 이름을 붙였다. ‘칼레 해전’은 1588년 8월, 프랑스 북부의 칼레 앞바다에서 벌어진 영국과 스페인 함대의 전투였다. 그 시절 해양 국가의 선두주자였던 스페인의 함대를 ‘아르마다 인벤시블레(Armada Invencible)’, 즉 ‘무적함대’라고 불렀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해적 출신인 프랜시스 드레이크에게 귀족 작위를 주고 스페인의 펠리페 2세의 무적함대와 맞서게 했다. 바람이 영국을 구했다. 남풍이 부는 시기였지만 갑자기 바람이 방향을 바꾸고 화약과 인화물질을 가득 실은 영국의 상선들이 무적함대를 불태웠다. ‘아르마다의 침몰’이었다. 1805년 10월, 유럽 전역을 제패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스페인 연합함대를 이끌고 영국에 상륙하기 위해 스페인 남서쪽 트라팔가르에 집결했다.
그러나 영국에는 우리의 이순신 장군과 흔히 비견되는 전략가 호레이쇼 넬슨이 있었다. 그는 11자 대형으로 프랑스 함대로 돌진해 전열을 흩트리고 나폴레옹의 함대를 궤멸시켰다. 마지막 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죽음을 맞은 것도 이순신과 같다. 이순신은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했고 넬슨의 마지막 말은 “주여, 감사합니다. 저는 저의 의무를 다했나이다(Thank God, I have done my duty)”였다.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임진왜란 최초의 승리들을 거둬가던 이순신의 함대에 위협을 느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최고의 수군 명장 와카자키 야스하루를 보내 이순신과 맞서게 했다. 세계 4대 해전의 하나인 ‘한산도 해전’은 1592년 8월,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순신은 견내량의 좁은 해협에 진을 친 왜의 수군들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 다음 포위 공격해 적선들을 궤멸시키며 대승을 거둔다.
와키자카는 겨우 도망쳐 인근 무인도에 숨어 미역을 뜯어 연명하다 떠내려온 파선(破船)들의 판자로 뗏목을 만들어 탈출했는데 함께 한 군사들이 200에 못 미쳤다. 지금도 그의 후손들은 그의 제삿날에는 미역만 먹으며 그날의 통분(痛憤)을 함께 한다고 한다. 이 글이 신문에 실릴 때는 21대 대통령이 선출되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험한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배와 같다. 그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이념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는 ‘대한민국호(號)’의 진정한 선장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