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IMF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힘들어하던 1998년에 나는 남태평양 섬나라 솔로몬아일랜드 뉴조지아섬 캠프에 있었다. 본사도 인원 감축으로 어려웠지만 해외현장은 더 어려웠다. 생산과 조림을 담당하던 본사 직원을 복귀시키고 중간관리를 맡았던 필리핀인, 중국 조선족 직원들도 모두 복귀시키고 캠프 관리조직을 현지인으로 대체해 운영해야 했었다.
숲에 도로를 내고 다 자란 나무를 베어 수출하고 나면 그곳에 묘목을 심는다. 널려있는 나뭇가지들을 정리하고 묘목을 심는 일은 전문 작업반들이 도급제로 했는데 대부분 다른 섬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조림 담당 책임자가 보고하며 묻기를 ‘작업반 중 하나가 회사에서 빌린 체인소 한 대를 잃어버렸는데 얼마를 변상하도록 하면 되겠냐?’는 것이었다. 누군가 훔쳐 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전에 없었던 사건이라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조림 현장 관리자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온 섬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반드시 찾아내라고 말하고 눈치를 살피니 분위기가 묘했다. 뭔가 아는 것 같은데 말을 하지 않았다. 그곳 사람들은 웬만해선 남의 잘못을 말하지 않는다. 퇴근 전까지 찾을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긴 했지만,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몇 시간이 지나고 사무실 총무 빈센트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그가 내놓은 해결책이란 것이 가관이었다.
보트를 타고 두 시간 걸리는 벨라라벨라 섬에 빅마마가 사는데 기도발이 끝내준다. 예물을 가지고 가서 원하는 것을 편지에 써서 기도를 부탁하면 된단다. 빅마마가 기도를 드리면 부탁한 이가 원하는 대로 된다는 것이다. 죽기도 하고 상어를 만나 다리가 잘리기도 했단다. 그렇게 원한을 푼 이가 한둘이 아니란다. 체인소를 찾을 길이 없으니 훔친 사람이 해를 입게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을 마친 빈센트가 나를 쳐다보며 묘한 미소를 짓더니 내일 아침에 기도를 부탁하는 편지를 써서 보내자며 쌀 한 포대와 큰 생선 두 마리면 예물은 족하다고 말했다. 듣고 있던 내가 한술 더 떴다. 기도하러 보내는 건 하루 늦추고 캠프에 방을 붙이자고 했다. ‘체인소를 가져간 사람을 혼내주라고 빅마마에게 기도하러 갈 건데 혹시 빅마마에게 기도를 부탁할 사람은 편지와 예물을 가져오면 대신 전달해 주겠다.’라고 써서 붙이자고 하며 서로 보고 웃었다.
다음날 캠프 곳곳에 방을 붙였다. 밤에 커다란 물고기를 잡아 오도록 하고 소문도 냈다. 그리고 평소와 같은 일과를 지내고 있었는데 저녁 무렵에 범인이 제 발로 찾아왔다. 한 작업반의 대표가 청년을 데리고 사무실에 와서 진정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다. 처음 데리고 온 친척인데 집에 가져갈 욕심으로 다른 작업반의 체인소를 훔쳤단다.
몰래 가져갈 방법이 없어서 바닷가 절벽에 숨겼다고 자백했고, 가져오라고 사람을 보냈으니 곧 올 거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겁에 질린 청년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도둑이 찾아와 용서를 구하니 캠프 사람들 모두가 안도했다. 나는 빈센트에게 일러 예물로 쓰려던 쌀 한 포를 그들에게 주도록 했다.
빅마마는 연세가 많으신 수녀님이다. 오래전부터 그 섬에 살았는데 사람들이 찾아와 하소연하면 당연히 그를 위해 기도해주셨을 것이고, 그중 원한을 풀 길 없는 이가 찾아오면 그를 위해서도 용서와 화해를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훔쳐다 높은 절벽에 숨겨둔 도둑을 무서워 떨게 했던 것이 빅마마의 기도뿐이었을까.
어릴 적 밭매는 곁에서 벌레 잡고 놀면 어머니는 언제나 “죄로 간다”라고 하셨다. 그의 어머니는 달랐을까. 어릴 때부터 어머니들이 하던 “죄를 지으면 벌 받는다”라고 한 잔소리가 쌓여 평화로운 마을을 이루고 살 수 있었을 것이리라.
6월 3일은 대통령 선거일이다.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침탈한 내란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내란의 수괴가 버젓이 활보하며 수족같이 부리던 한덕수를 후보로 내세워 대통령을 만들려는 속셈이 읽혔다. 일부 법관들과 검사들과 기득권 언론들이 무당들과 뒤엉켜 후보로 세우기만 하면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저들이 믿는 것이 이재명 암살인가? 그것 말고는 악귀들의 준동을 설명할 길이 없다.
대통령은 내란 수괴가 되어 재판 중이고, 시장은 3년이나 시간을 끌다 형 확정으로 날아갔고 의장씩이나 하던 도의원은 뇌물죄로 구속되었다. 영주의 정치를 돌아보면 정말로 맞는 말이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 같지만 시민들이 하는 것이다. 6월 3일은 우리 영주 시민들이 무도한 정치를 바로 세우는 무서운 빅마마가 되는 날이다. 죄를 짓고도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자들에게 벼락같은 투표를 하는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