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와 양반
선비를 내세우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다. 선비를 내세우는 지방자치단체는 영주에 한하지 않는다. 인접한 안동시는 농암 이현보와 퇴계 이황을 비롯 옛 선비들의 유적을 보존하며 선비를 홍보한다. 인접 지자체로 많은 정자가 보존된 봉화군도 선비를 앞세운다. 달성군은 도동서원 문화체험도 실시하며 선비를 말하며, 경남 산청군은 남명 조식의 유적을 가꾸며 선비의 본향이라 한다.
경남 함양군은 남계서원을 비롯, 선비 문화 관련 유적지를 들며 선비를 홍보한다. 전남 장성군은 필암서원을 광주광역시 광산구는 월봉서원을 활용, 선비 정신을 말한다. 충남 논산시는 돈암서원을 활용한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에서 선비를 내세운다. 이외에도 여러 지자체가 우리 역사에서 꽃을 피웠던 선비들을 선양하며 선비 유적을 홍보하고 있다.
왜 선비를 내세우는 지자체가 늘고 있을까?
지자체는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반영하면서도 자랑할 수 있는 주제를 찾는다. 어떤 지자체는 경관을 어떤 지자체는 특산물을 내세우고 있으나 문화를 내세우는 지자체도 있다. 선비를 내세우는 지자체는 문화를 자랑하고 주제로 했다.
지금 시대까지 칭송받고 앞으로도 지향해야 할 인간 모델이 있는 지자체는 그런 분을 자기네 지자체의 대표로 내세우고 싶어 한다. 지자체가 지역의 대표로 내세우고 싶어 하는 분들의 공통점이 선비였다. 바로 세상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선비는 어떤 사람이길래 지자체가 내세우는 모델이 되었을까?
우리 문화에서 선비는 인간 삶 속에서 모델이 되는 사람을 말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존경받는 언행을 하는 사람이 선비였다.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 행동에서 시간과 장소를 넘어 존경받는 사람을 선비라 했다. 그런 선비들은 국민의 삶을 더 높은 단계로 이끈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그 선비들은 존경하고 따라야 할 사람으로 후세에까지 잊지 않기 위해 불천위로 모시는 의식을 한다. 불천위는 살아계시듯 여기고 매년 그분을 기억하고 본받기 위한 다짐의 행사를 제사의 형식으로 받드는 모델 선비라 정의할 수 있다.
선비를 내세우는 영주시와 안동시
선비를 말할 때 함께 떠오르는 용어가 양반이다. 선비와 양반은 쓰임새에 따라 닮기도 하고 닮지 않기도 하다. 영주시는 ‘선비의 고장’이라고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때 안동시는 ‘양반의 고장’이라 했었다. ‘양반’에 민중을 못살게 구는 부정적 의미가 있다고 해서 지금은 ‘정신문화의 수도’란 말로 바꾸었다.
양반이 뭐야?
양반은 문반과 무반의 합친 말이다. 문반과 무반은 공무원의 구분이었다. 공무원 중 무반은 군인을 말한다. 양반은 국가 운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었다. 문반과 무반 둘 다 원칙적으로 시험을 통해 선발되었다. 물론 추천을 통한 임명도 있었다.
닮은 듯, 닮지 않은 듯 양반과 선비
양반과 선비라는 용어는 예부터 이어진 우리 전통적 용어이다. 시대적 유행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가 들어와 생긴 말이 아니다. 양반과 선비는 계급 용어가 아니다. 양반과 선비는 공적인 분야에 관심을 쏟는다. 공적 분야를 자신의 업무로 담당하는 사람이 양반(공무원)이었다. 양반은 시험을 거쳐 공무원으로 활동하는 사람이며 이들은 선비처럼 행동해야 함을 요구받는다.
서양의 귀족처럼 행동을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 서양 귀족은 왕에게만 충성하면 처벌받는 경우가 드물지만, 우리나라 양반은 선비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공무원 직책을 내려 놓거나 처벌받는다. 바로 ‘선비답지 못하다’는 게 포인트이다. 양반이 모두 선비처럼 행동했더라면 지금처럼 부정적 이미지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선비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
영주시는 선비의 고장이라고 한다. 인접 안동시는 양반의 고장이라 했다가 정신문화의 수도로 바꾸었다. ‘선비’와 ‘양반’ 둘 다 기본 개념에 멋진 의미가 있고 대표성이 있어서 채택했었다. 어떤 용어이든 긍정적인 뜻 외에 부정적인 뜻도 갖고 있다. 원래 갖고 있던 개념에 부정적인 뜻이 나중에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원래의 뜻이 가진 내재적 한계로 부정적 이미지가 덧칠되기도 하고 말을 앞세우는 사람들의 부정적 특징에 대한 비난이 원래의 개념을 희석시키기도 한다.
양반이 신분적인 의미가 있고 양반이란 직책을 이용해 국민을 못살게 군 사례들이 있어 부정적인 의미가 생겼다. 양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선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의미 확산이 되기도 했다. 선비에 대한 많은 오해가 여기에서 생겼다.
SNS상의 선비에 대한 비난
선비에 대해 오해는 여러 가지가 있다. SNS에서 찾아본 선비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은 선비는 ‘동적이기보다 정적인 사람’, ‘적극적이기보다 소극적인 사람’, ‘혼자 말도 타지 못하는 사람’, ‘세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보다 신경을 끊고 조용히 사는 사람’, ‘세상사에 대한 일보다 책이나 읽는 사람’,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사람’, ‘남을 씹기만(비난만) 하는 사람’ 등이다. ‘씹선비’란 신조어는 남을 비난하기만 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는 선비의 본래 뜻과 정반대이다.
왜 선비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은 선비를 선비의 본래 뜻과 정반대의 사람으로 볼까?
선비에 대한 오해는 선비를 말하는 사람들이 선비답지 않은 행동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비 관련 행사에 얼굴을 비추는 공무원이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면 그 공무원에 오버랩된 선비가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된다. 선비답지 못하다고 그 공무원을 나무라는 사람도 있지만 선비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생긴다.
우리 전통보다는 선진국에서 통찰을 얻고자 하는 사람 중 일부는 우리 전통을 일단 부정적으로 본다. 망한 나라 조선의 롤 모델이 선비였으면 선비를 배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전통에서 이어야 할 걸 찾고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차원에서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양반은 선비 정신을 가진 사람이어야 했지만, 공무원시험(과거)으로 완벽히 가려내기에 한계가 있었다.
양반은 선비 중에서 뽑는다는 걸 전제로 한다. 양반은 선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양반은 선비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모든 양반은 선비였을까? 아니다 선비처럼 행동하지 못한 사람이 임용되기도 했다. 선비 중에서 시험을 통해 공무원을 선발했다고 해서 그 시험이 늘 제대로 된 시험이었으면 좋으련만 시험은 늘 한계를 갖는다. 선비들이 소수서원을 필두로 서원 창건 운동을 벌인 것과도 관련 있다. 선비들은 시험 통과 중심의 공부를 지양하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내세워 서원을 창건했다.
모든 선비는 양반 직책(공무원)을 맡기 위해 시험(과거)에 응시했을까?
선비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실천을 하는 사람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방법 중 공무원 직책이 가장 각광을 받았다. 선비들이 자기 개인의 영달만을 위해 시험에 응시한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많은 선비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 공무원이 되고자 했다. 모든 선비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을까? 그렇지 않다. 어떤 선비는 공무원 직에 뜻이 없고 다른 방법으로 선비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공무원시험(과거)을 보지 않고 평생을 살기도 한다.
선비가 아니라서 비난받는 양반에는 누가 있을까?
누구든 공무원이 되면 선비 이미지로 치장하려 한다. 어떤 이는 정말 선비처럼 행동하지만 자신을 선비라 내세우면서도 행동은 정반대로 하는 사람도 있다. 역사책에 나오는 고부군수 조병갑처럼 행동하면 양반이라도 선비가 아니다.
선비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모델 개념으로 양반(공무원)은 선비처럼 행동해야 한다.
양반은 원래 뜻이 공무원 시험을 거치거나 능력이 있어 추천을 통해 공무원으로 임용된 사람이다. 공무원은 선비는 공무원이든 아니든 국민의 삶의 개선을 위해 공부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여중군자’란 말로 여성이 선비로 추앙되기도 하고 신분은 낮더라도 선비로 추앙되고 서원에 배향된 사람도 있다.
특징 중심으로 본 선비
✅선비는 더 나은 세상을 열고 사람들이 더 좋은 길을 가도록 치열하게 노력한 사람이다.
✅선비에 대한 최고의 칭송은 “죽어서야 멈췄다”이다. 죽을 때까지 ‘나는 아직 부족해’였다. 세상과 이별할 때까지 자신의 비전 실현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사람이 선비다.
✅선비를 기리는 날은 출생일보다 사망일이다. 사망일은 치열한 비전 추구가 끝난 날이다.
✅선비에 대한 존칭은 ‘선생’이었다. ‘선생’은 도를 깨달은 자, 덕업이 있는 자, 성현의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 주며 의혹을 풀어 주는 자, 국왕을 자문할 수 있는 학식을 가진 사람이다. 옛날에는 선생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소수였다. ‘선생’이 많아진 시기는 일제 강점기 교사를 모두 선생으로 호칭하면서이다.
✅국가 또는 사회 차원에서 추대된 불천위(不遷位)는 선비의 모델이었기 때문에 불천위로 추대됐다. 불천위는 단순히 한 집안의 시조가 아니다. 나라를 위해 사회를 위해 큰 업적을 쌓았기 때문이다. 불천위 종가가 오랫동안 존중된 건 불천위로 추대된 조상을 대를 이어 존경하고 그분의 뜻이 계속 이어지도록 노력한 주체였기 때문이다.
✅선비는 소통을 잘하며 나이와 직급을 따지지 않았다. 반대의 생각을 말할 때도 상대를 존중했다.
✅선비에 대한 평가는 그들이 했던 말보다도 그들이 이룩한 성과가 중요했다.
황재천 프리랜서 기자(금계종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