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 (수필가)
물질 만능의 시대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물질은 필수부가결의 요소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는 건 크나큰 행복이자 만족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가졌다는 건 생활의 편리와 동시에 질적인 면에서도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우위에 놓여있음은 사실이다.
인간이 바라는 삶의 진정한 가치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그 기준은 다를 것이다. 물질의 풍요로 살아야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테고, 권력이나 명예를 얻어야 행복을 누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건강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다른 어떤 가치도 필요 없고 오직 건강만이 인생의 목표가 될 테다. 결국 인간이 삶을 지탱하는 궁극적 목적은 내가 바라고 꿈꾸는 일을 하나씩 이루면서 그곳에 깃든 기쁨과 만족을 얻는 일 아니겠는가.
부자로 살아간다는 건 가진 게 많음보다 삶의 만족에서 오는 정신적 기쁨이 더 큰 행복을 안긴다.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의 가치를 정량적 수치로는 나타낼 수 없어도 내면에 흐르는 자기만족이 부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림 그리는 걸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은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어 부자로 살 수 있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름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어 부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추구하는 부유함이란 물질만이 아닌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 그것은 한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이 세운 가치대로 살면서 일궈낸 부유함이기도 하다.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진정한 가치는 물질만이 아닌 그 사람의 품격, 즉 인간 됨됨이에 있음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부유함의 기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 척도에 따라 다양성을 나타낸다. 많이 가졌다는 이유가 행복을 가늠할 기준은 분명 아닐 테다.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품격과 지성으로 삶을 주도했던 앞선 세대는 가진 것이 없어도 참된 인간의 모습으로 시대를 이끌었다. 물질의 풍요보다 정신적 만족에서 오는 가치가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가진 건 부족해도 이웃을 향해 나눔을 실천하는 이를 볼 때면 괜스레 마음이 넉넉해진다. 누가 봐도 본인 챙기는 게 급선무일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어려운 이웃에게 자신이 가진 것 내어줄 수 있는 용기, 진정한 부자가 아니면 행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사람의 부유함은 물질만이 아닌 내적 풍요에서 비롯된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종종 인품이 좋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드러난 배경보다 내면에 흐르는 인간미가 사람을 끌어들이기에 그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언어와 행동 속에는 이미 남들과 차별화된 고급스러운 인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에 직면한 이들을 향해 말없이 손 내밀면서도 생색내지 않는 격조 띤 모습에서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는 걸 보게 된다. 그의 대가성 없는 나눔과 실천에서 인간 본연의 선함과 인간미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작은 일에도 배려가 몸에 밴 사람, 약한 자의 편에 설 줄 아는 사람, 상대의 아픔을 들추지 않는 사람, 교만하지 않은 사람, 이유 없이 헐뜯지 않는 사람, 남을 탓하지 않는 사람, 불평이 배어있지 않은 사람, 뒤돌아섰을 때 뒤끝이 부담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을 만날 때면 늘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인격에 배어든 내적 부유함 때문이다. 그의 언어에는 사람을 품으려는 치유의 말이 담겨 있다. 그가 바로 참다운 부자다. 누군가가 나에게 베풀어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작은 여유와 배려, 나부터 실천할 일이다. 물질로 충족된 부유함보다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부유함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삶의 가치 아니겠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내적 부유함, 지금 우리는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