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복 (소백산백년숲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해외여행이 빈번한 요즘도 가보기 어려운 곳이 많다. 파푸아뉴기니도 그런 곳이다. 인도네시아 동편의 큰 섬은 곱슬머리 사람들이 산다는 뜻으로 “파푸아”라 불렀다. 뉴기니라는 이름은 1545년 스페인의 선원, 이니고 오르티스 데 레테스(Yñigo Ortiz de Retez)가 섬의 주민들이 아프리카 기니만 연안의 주민들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인 파푸아섬 동편과 나머지 작은 섬 지역의 뉴기니를 합쳐 파푸아뉴기니가 되었다. 서양의 탐험가들이 닿기 전까지 이 지역 사람들은 석기시대를 살았다. 씨족들이 흩어져 마을을 이루고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곳이었다.
나는 30대 초반에 파푸아뉴기니에 여러 차례 갔었다. 특히 뉴브리튼섬에서 보고 들은 것은 요즈음 우리가 꼭 새겨야 할 것이라 여긴다. 뉴브리튼섬은 남한의 1/3쯤 되는 면적이다. 동서로 누에처럼 길게 누운 모양인데 동쪽의 라바울은 2차대전 때 일본군의 본거지가 있었던 곳이다. 해안지역은 대체로 살기 좋은 곳이다. 바다로 흘러드는 시내가 있고 물고기나 조개를 잡을 수 있고, 산에서는 사냥하고 열매를 딸 수 있는 풍요로운 곳이다. 사람들이 해안에 모여 살게 마련인데 해안에 오래된 마을이 없었다. 요즘도 그곳에서는 산에 사는 사람들과 섬에 사는 사람들 사이가 좋지 않다. 그들은 오랫동안 원수로 지냈다.
처음엔 살기 좋은 해안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그러다 무슨 일인가로 싸움이 벌어져 사람이 죽었다. 죽은 이의 씨족 젊은이들이 밤에 쳐들어가 원수를 죽였다. 그러자 다시 복수의 칼부림이 일어나고 해안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산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작은 섬으로 가서 제각기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서로 떨어져 살면서도 원수로 여기고 서로 죽이는 것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마을의 지도자가 되려면 원수의 목을 가져다 내걸어야 하는 헤드헌팅이 벌어지게 되었다.
외모와 언어가 같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표식을 새겨 구별했고, 혹시라도 우연히 만나면 괴수를 본 듯이 무서워하며 서로 달아났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원수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괴물인지, 추장이 용감하게 원수들의 목을 잘라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살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의 의식 속에는 서로를 인간이 아닌 괴수들로 여기게 되었다. 그렇게 세상에서 피부가 가장 검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이가 벌어지고 그사이를 공포와 적개심이 채워졌다. 그렇게 텅 빈 해안 요지에는 중국인 상점들이 채워졌다. 뉴브리튼섬의 헤드헌팅 같은 이야기는 다른 남태평양 섬이나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도 전해진다. 모두가 문명 이전에 일어났던 일들이다.
공포와 적개심은 평범한 사람들이 의견을 말하는 것을 막는다. 거칠고 흉포한 몇몇이 큰 소리를 내서 무리를 장악하고 나면 대중은 좀비처럼 무력해진다. 나치 치하의 독일이 그랬고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그랬다. 빨갱이를 소탕해야 한다는 사명에 불탔던 서북청년단과 경찰은 제주 인구의 1할을 죽여 파묻었다. 6.25 민족상잔의 전란 속에서 자행된 무참한 학살도 공포와 증오에 휩싸인 사람들이 사소한 이유로도 사람을 무참히 죽이게 되었던 것이리라. 그 참혹한 상잔 끝에 패주하는 북한군을 따라 월북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우리 이웃에도 있다.
누군가를 악마로 몰아 선동하는 사람은 모두 흉악한 괴물이다. 남북이 통일하기 위해 대화해야 한다고 하면 “종북 빨갱이”로 몰아 악마화한다. 그러면 상대는 “수구꼴통”이라며 대화 불가능한 부류로 치부한다. 그렇게 국민을 “친미반중”과 “종북빨갱이”로 갈라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어 사익을 챙기는 사이 나와 내 자식들의 삶이 어둡고 힘겨워지는 것이다.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를 당하고 우리 사이에 아무리 작아도 틈이 있으면 파고드는 사이비 종교와 파시즘을 목도 하였다. 판사들을 드잡이하겠다며 폭도로 돌변해 서부지법에 난입한 젊은이들, 중국 스파이가 선거를 조작했다는 맹랑한 거짓말을 그치지 않는 자들이 들어와 채웠다. 군대를 동원해 국회와 선관위를 침탈하고 야당 국회의원과 언론인 심지어 법관을 체포 살해하려던 자들을 옹위하는 세력이 공공연하게 활개 친다. 우리의 의식이 이토록 저하되고 양심이 몰락하고 용기는 부러졌는가.
나를 옥죄고 있는 두려움과 미움을 걷어내고 오로지 내 삶과 자손들의 미래를 위해 어떤 일을 옳거니 하겠다고 말하고 행할 능력 있는 자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 시간이다. 누가 나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할지, 자손들을 위해 현명한 일을 할 수 있는 자를 정확하게 골라 뽑아야 한다. 무슨 말로 선동해도 근거를 캐묻고 따져서 내가 결정해야 한다. 나와 내 자식의 삶을 결정하는데 어찌 남들의 선동질 따위에 휘둘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