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아영-시를 읽으면서 나를 되돌아본다는 뜻입니다

            투명한 우산

                                       -정병삼

 

관공서 복도에 우산이 줄지어 있다

뼈마디를 감추고 슬픔을 묻을 때까지

문마다 빗발친 민원 등허리가 시리다

 

온몸으로 막기엔 우기가 너무 길다

흥건히 고여있는 비애의 자국에

젖어 든 날갯죽지가 하루를 맞는다

 

얇아진 빗줄기에도 큰 소리 그치지 않아

퇴근 시간 지나서도 펴지지 못한 어깨들

속보인 비닐우산이 누군가를 기다렸다

 

- 내일은 어디쯤에서

분실물 센터에 가장 많이 쌓이게 되는 물건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우산입니다. 비 올 때 들고 나갔던 우산을 비 그치면 깜박하고 잊게 되는 게 다반사잖아요. 필요할 때만 찾아가는 관공서 민원실처럼요.

이 시조는 비 오는 날 줄지어 서 있는 우산을 인격화시킨 공무원의 속마음이 재미있게 표현되었습니다. “빗발친 민원 등허리가 시”린 민원실 공무원들의 고달픔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어요.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보니 오늘도 거기는 우기인 걸까요?

시인은 왜 빨강, 파랑, 노랑 우산들을 제쳐두고 “투명한 우산”을 제목으로 얹혔을까요? 역시 공무원의 기본정신인 투명한 사명감 때문이겠죠. 사명감이란 말 참 무겁잖아요. 거기다 투명함까지 보태졌다면요.

“얇아진 빗줄기에도 큰 소리 그치지 않”고, “퇴근 시간 지나서도 펴지지 못한 어깨들”이 건기의 우산처럼, “젖어 든 날갯죽지” 곧추세워 말릴 기회도 얼마쯤은 있을 테지요. 일 년 365일이 구름 낀 날이거나 장마철은 아닐 테니까요. 그렇게 또 다른 투명이 된 우산이, 내일은 어디쯤에서 새로운 주인들을 만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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